최근 코로나 때문에 지역 중심으로 중고 상품을 직거래하는 이른바 ‘당근 마켓’이 더욱 인기라고 한다. ‘당근’은 ‘당신의 근처’를 줄인 말이라는데, 아내는 이에 무척 관심과 흥미를 갖고 이용한다. 심지어는 이를 주제로 논문까지 하나 쓰고 싶을 정도라고 한다.
중고 상품들에 관심을 갖고 거래를 하다 보면 시기마다 또는 지역마다의 소비 트렌드도 살펴볼 수 있고, 또 내놓은 물건들을 보면서 한 사람의 생활 또는 삶의 스토리도 가늠해볼 수 있어 흥미롭다고 한다. 그리고 물건을 사 오는 즐거움도 있지만, 간혹 무료로 내놓은 물건을 고마워하며 가져가는 이들을 보면서 나눔의 희열까지 느낀다고 한다.
아내는 2001년 미국으로 안식년 갔을 때도 여행 다니는 것 이상으로 이런 중고 물건을 보러 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내가 갔던 곳은 유타 주 솔트레이크 아래 프로보라고 하는 10만 안쪽의 조그만 도시였다. 미국 딴 데도 그렇지만 그곳에서도 주말이면 야드 세일(yard sale), 무빙 세일(moving sale), 차고 세일(garage sale)이니 해서 자신의 집 마당이나 차고 앞에다 쓰던 물건을 내다 놓고 팔았다.
같은 도시 안에도 산 위쪽으로 부자 동네가 있는가 하면 그 밑으로 덜 부자인 동네가 있어 가는 동네마다 내놓는 물건이 다양하고 달랐다. 아내는 싼 값에 물건을 사는 재미도 있었지만, 이를 통해 미국의 문화도 엿보고 미국 집에서는 이런 인테리어를 해놓고 살고, 저런 그릇을 쓰는구나 하면서 여행하는 이상의 즐거움을 가졌다고 한다.
프로보는 모르몬교의 신앙촌 같은 도시이기도 한데, 디아이(Deseret Industries)라는 중고 물품을 사고파는 대형의 상설매장도 있었다. ‘데세렛(Deseret)’은, 모르몬들이 유타 정착 당시 자신들이 세운 종교적 왕국을 가리키는 말인데, 현재 우리나라의 사회적 기업 <아름다운 가게>가 이 디아이의 운영방식을 모방한 것이 아닌가 싶다. 디아이는 중고매장임에도 시내에 위치해있고 월마트 매장보다도 더 컸는데, 구호‧자선사업 등 사회적 선교에 관심이 많은 모르몬 종교의 성향을 잘 보여주는 것 같다.
2014년 프라하를 가보니 이곳에도 주말마다 노천에서 큰 벼룩시장이 열렸다. 처음 프라하를 도착했을 때 이에 대한 정보를 알 턱이 없건만, 한인교회를 가니 목사 사모님이 아내에게 이곳을 프라하의 그 어디보다도 가봐야 되는 중요한 관광지의 하나인 양 추천을 해줬다.
이 시장은 시내에서 크게 멀지 않은 콜베노바 지하철 역 근처에 있는데, 우리가 아침 10시쯤 역에서 내리면, 이미 장을 보고 물건들을 바리바리 싸들고 돌아오는 사람들로 시장에서 지하철역까지 긴 줄이 이어진다. 어떤 체코 아가씨들은 어찌나 기운이 센지 그곳에서 구입한 식탁이나 책상 따위를 등에이고 가는 것도 봤다.
아침 7시가 개장 시간이라니 좀 늦어 오전 11시 넘어가면 이미 파장 분위기가 짙다. 비록 노천시장이지만 출입구는 엄연히 있어서 그곳 돈으로 20 코루나 그러니까 한 천 원 정도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간다.
잡다한 물건이 태반이지만 아내가 관심을 가졌던 것들은, ‘즈비벨무스터’라는 체코 자기 또는 보헤미안 크리스털 등이다. ‘스와로브스키’가 바로 이 보헤미아 지방의 크리스털 원석으로 가공된 것이라 한다. 아내는 시내의 앤티크 가게 또는 갤러리에서 이런 물건들을 황홀하게 구경했기에 중고 시장서 혹여 횡재를 할까 싶어 돌아다녔지만 여기서도 이것만큼은 가격이 엄두가 나지를 않았다.
다음은 서양 할머니들이 손수 자수를 놓은 커튼, 시트, 식탁보 등의 제품들이다. 아내는 고등학교 다닐 때 자수 반원이었다. 자수 제품은 가격 흥정도 될 법하기에 몇 번 가봤지만, 자수품을 파는 작은 체구에 암상궂게 생긴 체코 할머니는 가격을 깎을라치면 그런 영어는 어디서 배웠는지 “Go home!”하고 쏴 부쳤다. 자수 제품들도 가격은 만만치 않아 정작 사 온 것은 없었다.
나는 무소유의 이념을 실천하고 사는 위인은 아니지만, 아내와 달리 물건 사는 것에 크게 흥미가 없다. 옛날에 은사 벌 되는 선배 교수와 파리를 같이 여행한 적이 있다. 그때도 그곳의 벼룩시장을 찾았다. 그 선배는 민속 가면에 관심이 많아 내가 보기엔 모조품일 듯싶은 아프리카 가면들을 그렇게 사 모았다. 가면이 커서 가방에 들어가지도 않거니와 본인이 다 들고 다닐 수도 없어, 물건을 전혀 사지 않아 짐이 없는 내가 ‘가방 모치’가 돼 들고 다녔다. 동양인이 그로테스크한 아프리카 가면을 들고 지하철을 타면 파리지앵들이 질겁했던 것이 생각난다.
물건 사는데 젬병인 나이지만 그래도 콜베노바 시장에 나온 체코 화가들의 그림은 비교적 관심을 갖고 둘러봤다. 그러나 결국 그림에도 별 안목은 없는지라 액자가 이국적이거나 고풍스러운 것들 중 싼 걸로 몇 개 사봤는데, 그림보다는 액자 보는 맛으로 집에 걸어 놨다.
최근 한국서 어느 부잣집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거실의 장식장 안에는 해외여행을 다녀와서 사놓은 듯한 도자기와 크리스털이 번쩍이고 벽에 큰 그림들이 걸려있는데 주인이 그런 물건들에 대한 안목도 있는 것 같거니와 그 크기들도 대단해, 우리가 콜베노바 중고 시장에 가서 사 온 조잡한 것들과 아주 대조가 됐다. 당장 우리 집으로 돌아가서 여행지에서 사 온 마그넷이니 기념품 종이니 하는 것들과 함께 모두 치워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아내는 콜베노바 시장에서 엄청난 ‘밀당’의 흥정을 해가며 사 왔던 추억의 물건들을 꽤 대견해하고 사랑스러워하는 눈치다. 브랜드 도자기는 아니지만, 요즘도 콜베노바서 사온 체코 아르누보 풍의 찻주전자로 차를 내리면서 그 시절 그리움을 새록새록 지펴 올린다. 아 참, 콜베노바 것 중 어떤 건 당근 마켓에 내놓아 인기리에 팔려나가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