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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문규 Dec 06. 2020

프라하 궁성 말고 다른 궁

프라하 관광을 하게 되면 빼놓지 않고 가보게 되는 곳이 비투스 성당이 있는 프라하 궁성이다. 프라하 궁성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나 보헤미아의 왕들이 거주했던 곳으로 프라하의 랜드마크이기는 하지만, 프라하에는 그 말고도 귀족들이 거주했던 궁전이 상당히 많이 있다. 지금 돌이켜 보면 프라하 체류 당시 그러한 궁전들을 좀 더 가봤으면 좋았을 걸 하는 후회도 있으나, 어찌 보면 서울의 몇 개 안 되는 궁궐도 작정하고 가본 적이 없는 주제에 크게 후회할 일도 아니다.  

 

서울에는 궁궐이 다섯 개 정도 있는데 그나마 경희궁은 없어진 것이나 다름없으니 실제론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정도가 가보게 되는 궁이다. 덕수궁은 고등학교 때 고향인 인천서 일부러 상경을 해가며 까지 가봤다. 그때도 궁궐이 목적이 아니라 겉멋이 들어 그곳서 개최됐던 국전 수상작 전시회를 구경하기 위해서였다. 이후 고등학교 교편을 잡았을 때는 학생들 데리고 백일장 행사 차 창경궁을 가본 것이 궁궐 순례의 모두이다. 우연히 둘러본 종묘를 궁이라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유럽 궁궐에서는 볼 수 없는 참 독특한 곳이기는 했다.  


프라하에서 프라하 궁성 말고 가봤던 궁은 딱 두 군데인데, 하나는 발트슈타인 궁 또 하나는 트로이 궁이다. 발트슈타인 궁은 프라하 성 밑에 있어 프라하 성을 오르내리다 두를 수 있는 곳이다. 궁 안에 상원의회 건물이 있어 얼핏 보면 이곳이 궁인지 아닌지도 잘 모른다. 게다가 프라하 자체가 모두 고색창연한 건물들로 이뤄져 이곳이 궁인지는, 일단 안으로 들어가서 분수가 있는 아름다운 이태리식 정원을 보고서야 알아차리게 된다.


발트슈타인 궁, 뒤로 프라항 궁성이 보인다.

 

대체 어떤 게 이태리식 정원이냐고 묻는다면 제대로 답은 못 하겠지만, 유럽서 보고 다니다 보면 대충 그 느낌은 온다. 장미 등 남국의 예쁜 꽃들, 그리고 이태리식 돌기둥과 아치에 정원 귀퉁이마다 조각상들이 놓인 것을 보면 대충 그런 게 아닌가 싶은데 결국은 안내문을 보고 확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닌 게 아니라, 이 궁의 정원은 이태리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에서 일한 건축 장인 집안의 한 사람이 설계에 관여했다고 한다.


발트슈타인 궁은 프라하에 지어진 최대의 바로크 궁전으로, 주인인 발트슈타인 백작은 이 궁을 지으면서 프라하 왕궁에 버금가는 것으로 짓고자 했다. 그러나 주인은 이 궁에서 불행히도 딱 일 년밖에 못 살고 죽는다. 장군이기도 했던 발트슈타인은 17세기 초 종교전쟁 당시 보헤미아 황제의 기사단을 이끌고 신교도 군대를 맞아 싸워 전공을 세웠고 이를 계기로 권력을 장악해 왕이 되길 꿈꾸었다. 그러나 당시 황제였던 페르디난드 2세에 의해 암살되는(1634년) 비운을 맞는다.

 

체코 와서 안 사실이지만 당시 체코 보헤미아 지역은 유럽 전체를 뒤흔든 종교전쟁 즉 30년 전쟁의 시발점이 되는 곳이다. 독일의 루터에도 영향을 미치고 보헤미아 지역의 종교개혁운동을 이끈 얀 후스가 화형을 당한(1415년) 이후 체코는 신구교 간의 갈등이 극심했다. 결국  30년 전쟁 때 가톨릭 군대가 승리하면서, 합스부르크의 영향 아래 있던 체코는 이웃나라인 독일과 달리 완전히 가톨릭 지역이 된다.  


발트슈타인 궁 전경


발트슈타인 궁의 정원은 아주 그럴싸해서 프라하 성을 구경하다 지친 관광객들이 여기서 한숨 돌렸다 가기에 안성맞춤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여기 위치를 정확히 몰라 프라하 시내의 붐비는 인파를 피할 수 있는 적소이기도 하다.


프라하의 봄이라는 말도 있듯이 역시 이 궁도 목련이 흐드러지게 피는 봄이 가장 아름답다. 정원에는 새장도 있어 공작들을 풀어놓는데 보석처럼 아름답고 거대한 공작 수컷이 깃을 펼치고, 가끔은 목련 나무 위에 올라앉아 있기도 해, 이것이 오히려 유럽 궁궐의 화려하고 우아한 모습을 돋보이게 한다.


발트슈타인 궁의 공작새, 목련 위의 공작(우)


트로이 궁은, 트로이 전쟁과 관련된 궁은 아니고 옛날 이 지역 이름이 트로이라는 데서 유래한다. 이 궁은 체코 도심으로부터 좀 떨어져 있어 일부러 가봐야 하는 곳이다. 바로 옆에 동물원이 있는데 여기서 보트 놀이를 떠나는 블타바 강의 선착장이 있나 보다. 이 궁은 도심에서 상대적으로 멀리 있다 보니 내가 갔을 때 궁을 거니는 사람들은 손꼽아 셀 정도였다. 


이 궁은 붉은색의 특이한 건물인데, 궁이라기보다는 옛날 로마 근처의 빌라 건물을 갖다 놓았다는 생각이 든다. 궁 건물 자체보다는 궁에서 내려오는 계단에 도열된 그리고 분수대에 놓인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의 조각상들이 아주 바로크적이다. ‘바로크’가 ‘찌그러진 진주’라는 말에서 왔듯이, 조각상들은 역동적이고 기괴할 정도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데, 비록 그 규모는 작지만 프라하의 옆 도시인 드레스덴에서 본 바로크 궁전의 조각들과 많이 비슷하다. 


트로이 궁



트로이 궁 계단과 분수의 조각상


유럽을 다녀온 이들은 이러한 유럽 궁궐의 화려함과 웅장함을 예찬하면서 유럽 문화의 우수성을 얘기하고 아울러 이러한 문명을 가진 유럽인들이 결국은 세계를 지배할 수밖에 없지 않겠냐고 생각하는 게 통념이다. 오죽하면 우리의 경우 유럽의 문명을 선망한 나머지 놀이동산이나 예식장, 음식점, 교회, 대학, 심지어 러브호텔까지 중세 유럽의 성이나 궁전에서 그 이미지를 가져왔을까? 


반면 한국을 방문했던 체코 교수의 말은 또 그게 아니다. 그이는 서울의 궁궐이 그렇게 아름답다며, 멀리로는 북한산과 가까이로는 북악산을 배경으로 한 조선 시대의 궁궐들을 보노라면 궁궐의 경관이 어찌 자연과 그리 잘 어우러졌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게다가 나로선 사진으로나 봤기에 할 말은 없지만 외국인들이 격찬하는 창덕궁 비원은 더 말할 나위 없지 않은가? 프라하의 궁들은 궁 안의 장식과 조경은 대단히 화려할지언정 그 궁들이 주위의 자연경관을 크게 고려하지는 않는 것 같다. 시내의 궁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교외에 위치한 트로이 궁도, 주변에 포도원 산비탈이 있는데 그것과 궁의 경관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  


백번 양보해서 유럽 궁궐의 웅대한 스케일과 럭셔리한 내부 장식들을 보면서 유럽 문명의 우수성에 감탄할지라도, 유럽 문명 자체가 원래 우월해서 아메리카나 인도 등을 지배했다기보다는, 유럽이 아시아나 아프리카 등을 먼저 침략하고 식민 지배하면서 식민지의 희생을 바탕으로 이렇게 우월한 위치에 놓이게 된 것은 아닐까라고 바꿔 생각해볼 필요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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