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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문규 Apr 18. 2021

발트 삼국, 어머니의 호박(琥珀)을 찾아

아내와 프라하에서 안식년을 보내기 7년 전, 이미 다른 사람들과 함께 체코로 패키지여행을 갔다 온 적이 있다. 여행서 돌아갈 때 아내에게 선물이라도 하나 사들고 가야 할 텐데, 나는 그런 일에 아주 젬병이다. 특히 여자들이 좋아한다는 보석의 경우 아는 지식도 없거니와 값도 만만치 않아 아예 엄두조차 내지를 못했다. 


그런데 프라하에서 시계탑 광장을 관광한 후, 가이드가 광장 주변에 있는 고급스러운 보석가게로 안내했다. 그 가게는 안식년 갔을 때 가보니 그 자리에 그저 있었다. 그때 가이드를 따라 영혼 없이 그곳을 쫓아 들어갔는데 체코 사람이 아닌 한국인 아가씨가 현란한 말솜씨로 물건을 판매하고 있었다. 체코의 특산물 보석이라며 석류 빛의 가넷 목걸이를 강력 추천했다. 나는 방학 숙제 해치우는 기분으로 덜컥 샀다. 


잠시 후 찰스 교 노점상에서 비슷한 것을 훨씬 싼 값에 파는 걸 발견하고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그러나 보석이란 진짜도 있고 가짜도 있는 것이니 그냥 좋은 것을 산 것이려니 치부하기로 했다. 아내는 가넷이 예쁘다면서 어떻게 이런 걸 다 사 올 줄 아냐면서 칭찬을 해줬다. 


그 일이 있은 얼마 후 아내가 여분의 금(金) 줄이 생겼다며 거기에 가넷을 달아야겠다고 보석 가게를 찾았다. 그런데 가게 주인은 아내에게 그 가넷은 소위 ‘이미테이션’이라 부르는 모조품으로 굳이 금줄에 달 값어치가 없는 것이라 일러줬단다. 아내가 돌아와 나에게 그 얘기를 해주는데, 나는 굳이 내 앞에서 그 얘기를 다시 할 필요가 있냐면서 성질을 냈었다. 나도 꽤 속 좁은 인간이다. 


프라하의 시계탑을 바라보는 관광객들, 1시 방향에 가넷을 구입했던 ERPET 크리스털 가게가 보인다.


그런데 발트 삼국을 아내와 같이 여행하면서는, 이번에는 아내가 시어머니, 즉 나의 어머니에게 여행 선물로 뭘 갖다 드려야 하나로 전전긍긍하며 다녔다. 어머니는 우리 가족이 여행을 떠난다고 하니 촌지까지 건네주셨다. 


발트 삼국 여행은 가장 위에 있는 나라 에스토니아에서 출발하여 라트비아를 거쳐 리투아니아에서 끝나는데, 에스토니아를 갔을 때 그 나라의 특산품 보석이 호박(琥珀)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호박 전문 가게는 물론이요 여느 선물 가게를 들어가도 각종의 호박이 즐비했다. 


호박은 인간과 가장 오랜 세월을 함께 해온 보석이라고 한다. 개중 호박 속에 징그럽게 벌레가 들어 있기도 하는데 그런 건 굉장히 비쌌다. 호박은 체코의 가넷과 달리 일단 사이즈가 크고 적갈색의 투명한 빛깔이 나는 것이 여인들의 장신구로 대단히 인기가 있을 법했다.


우리가 발트 삼국 오기 직전 둘렀던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예카테리나 여름궁전의 한 방은 바로 이 호박으로 꾸며진 이른바 앰버(amber)방이다. 우리가 관광한 곳은 페테르 대제의 여름궁전이라 앰버 방을 구경할 기회는 없었다.  


호박 중에서도 발트해 연안에서 나는 호박의 색과 광택이 특별히 아름다워 에스토니아의 호박이 유명하다고 한다. 아마 상트페테르부르크 앰버 궁전의 호박도 여기 걸로 갖다 쓴 것이리라. 아내는 관광하는 중 틈나는 대로 호박을 보고 다녔어도 이를 쉽게 사지는 못했다. 


아내는 스스로도 인정하듯이 약간의 ‘선택 장애’(?)가 있고, 한국에서도 물건을 정작 사고 나서도 반품하러 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결국 사는 것을 포기하면서 우리 어머니는 호박과는 인연이 멀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런데 아내는 어디서 그런 힘이 솟는지 숙소에 돌아온 후 저녁을 먹고 나더니 밤에 혼자 다시 나가서 기어이 호박을 사들고 왔다.  


그리고 에스토니아의 다음 나라인 라트비아로 넘어갔다. 어럽쇼! 우리는 호박이 에스토니아에서만 살 수 있는 특산품인 줄 알았는데 이곳 역시 호박 천지였다. 오히려 발트 삼국 중 아래쪽 나라로 내려갈수록 호박 값이 점점 더 싸지는데, 호박 가격이 떨어지는 것은 관광객 숫자가 점점 줄어드는 것과 비례했다. 


에스토니아에서는 한국인 관광객을 더러 봤는데, 라트비아로 가니 거의 사라지고, 리투아니아에서는 한 명도 볼 수 없었다. 리투아니아에서는 몇 명의 불량 청소년들이 우리 앞에 나타나 “고질라!”라고 고함을 지르고 가는 경우까지 있을 정도였다. 낯선 동양인들을 보고 깔보며 놀리는 행위였다.  


하여간 아내는 라트비아에서 에스토니아보다 훨씬 싼 가격의 호박을 보더니 약이 오르기도 하고 욕심도 나기 시작했나 보다. 이번에는 시어머니가 아니라 친정엄마 것까지도 사겠다고 덤볐다. 어머니 것을 살 때는 인내심을 갖고 기다렸는데, 그렇다고 장모님 것을 산다는데 뭐라고 할 수는 없었다. 


바쁜 여행길에서 1시간 너머 가게에서 흥정을 하고 나오는 아내에게 싫은 소리 좀 하려고 했는데, 에스토니아에서 산 것과 비슷한 가격으로 라트비아에서 훨씬 좋은 호박을 샀다면서, 그건 어머니 드리고 에스토니아에서 이미 산 건 장모에게 드린단다. 어떻게 화를 내랴!


마지막으로 리투아니아를 갔는데 여기도 호박 가게가 즐비했고, 심지어 호박 박물관과 갤러리까지 있었다. 호박으로 가공된 다양한 인테리어 소품에 호박으로 만든 고급 체스 판과 말도 눈에 띄었다. 


리투아니아에서는 더 이상 호박 가격을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발트 삼국 중 가장 싼 것 같았다. 리투아니아 옆 나라인 폴란드에 갔을 때도 호박 가게가 많았던 걸 보면 이 동네 일대는 호박 가게로 죄들 밥을 먹고사는 것 같다.


에스토니아의 호박 가게

 

어머니는 여행 선물로 사 온 풍뎅이 만한 호박 반지를 자랑스럽게 끼고 다니셨다. 어머니 말씀으로는 이 반지와 목걸이를 하고 교회를 가면 사람들 눈에 잘 뜨이는지, “권사님, 그거 어디서 난 거냐?”라고 모두들 묻는다면서 의기양양해하셨다. 내가 아내에게 가넷을 사 왔을 때와 달리, 아내는 수고한 보람이 있었다. 


참, 체코 가넷으로 수모(?)를 당하기는 했지만, 덕분에 아내는 나와 함께 안식년으로 체코에 갔을 때, 일 년 지내는 동안 프라하 시내의 가넷 소매상과 도매상 등을 두루 다니며 충분히 시장 조사를 한 후 떠나기 직전 각기 5만 원 내외의 가넷 보석을 구입해 시댁이고 친정이고 여자라는 사람들에겐 죄 여행 선물로 돌렸다. 


5만 원에 상당하는 걸 나는 훨씬 오래전에 20만 원 주고 사 왔으니 (이 액수는 지금까지도 아내에게 비밀로 하고 있는데, 아내는 내가 브런치에 이런 글들을 쓰고 있는 줄도 모른다.) 오래된 일이라 속이 쓰리고 자시고 할 건 없지만 그저 나 자신이 한심스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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