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렐 차페크(1890~1938)는 ‘로봇’이란 말을 만든 체코의 유명한 극작가이자 소설가이다. 그의 유명한 연극이나 소설들은, 지금 식으로 얘기하자면 SF의 방식을 빌려 기계가 지배하는 중앙 집중적 성격의 20세기 사회의 문제를 비판한다. 차페크는 몇 번이나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프라하의 블타바 강변에 그의 기념관이 정식으로 있지만, 안식년 당시 체코 문학 연구자인 김규진 교수가 프라하를 방문했기에 그와 함께 차페크가 그의 형 요제프와 같이 살았던 프라하 시내의 저택을 찾아갔다.
마침 가을이라 단풍이 든 담쟁이로 덮인 3층 차페크의 집은 방문자의 가슴을 설레게 했으나,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그의 집 건물 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했다. 내부 수리 중이라는 말을 전해 들었지만, 실은 현재의 집주인이 이 집을 팔 요량으로 내놓아 체코 문화부와 협상 중이라, 집 내부를 쉽사리 공개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 그냥 헛물을 켜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차페크는 최근 들어서 체코 문학 연구자들에 의해 활발히 연구되고 있으나, 그가 활동하던 시기인 1920년대 식민지 조선에 진즉 소개되었다.
차페크를 한국에 최초로 소개한 이는 우리나라의 신극을 개척하고 본인 스스로 희곡을 쓰고 연극 평론도 했던 김우진(1897~1926)이다. 김우진은 체코문화와 함께 체코 연극의 역사를 간략히 기술하고, ‘로봇’을 다룬 차페크의 가장 유명한 희곡 <인조인간>을 분석 소개한다. 그리고 실제 일본 극단에서 공연된 <인조인간>을 관람한 후, 그 연출기법 등의 자세한 감상평도 썼다. 김우진의 차페크 소개가 일본을 매개로 이뤄진 것이기는 하나, 그가 일찍 죽지만 않았어도 한국 연극 문학의 발전에 더 큰 공헌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김우진은 알다시피 대지주 집안의 장자로 진작 결혼해 일남 일녀를 뒀지만, 30세 나이에 그와 동갑인 우리나라 최초의 소프라노 가수 윤심덕과 함께 현해탄에서 동반자살했다. 김우진은 조강지처가 있었고, 그녀와는 이혼할 수 없었기에 결국 자살을 선택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알타이어 연구로 유명한 언어학자이자 서울대 교수였던, 그의 아들 김방한은 태어나 돌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아버지가 죽었으니 비극적이다.
김우진의 얘기는 각설하고, 각각의 나라에서 각각으로 연구가 돼왔던 김우진과 차페크를 비교문학적 방식으로 함께 묶어 최초로 연구한 이가 체코의 한국학자 즈덴카 크뢰슬로바(Zdenka Klöslová, 1935~)다. 그의 논문은 원래 체코어로 쓰였지만, 영어로 번역된 그의 논문이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에서 발행하는 영문 계간지 <Korea Journal> 1992년 봄 호에 게재되면서 우리들에게 어렵사리 다가올 수 있었다.
국내에서 처음 그 논문을 봤을 때 신기하긴 했어도 무심히 지나쳤었다. 안식년 당시 프라하 동양학 연구소에서 그 필자를 만나게 됐을 때 놀란 것은, 그가 우리 어머니보다 불과 네 살 아래의 할머니였고, 그럼에도 아직도 한국문학과 역사에 대한 연구를 놓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서다.
요즘 국력의 신장과 함께 한국문학의 세계화란 말이 더 실감 난다. 이를 위해 한국문학번역원은 한국문학을 세계 여러 나라의 언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지원해왔는데, 실제 해당 나라에 가보면 그 나라 말로 된 우리 문학을 읽는 독자층은 그다지 두텁지 않다.
나는 크뢰슬로바 선생의 작업을 보며 진정한 한국문학의 세계화란, 한국문화 또는 체코문화가 만나는 지점을 주의 깊게 살펴 양국이 공감대를 형성하고 이를 학문적으로 담론화 시킬 때 비롯된다 생각한다. 물론 이는 지난하고 더딘 길이기는 하나,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보온병에 담아온 차를 마시며 허리를 곧추 세우고 한국의 자료들을 면밀히 톺아보는 크뢰슬로바 선생의 작업 같은 것들이 차곡차곡 쌓일 때 가능할 것으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