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서 독일 드레스덴으로 놀러 갈 때, 더러 작센 스위스를 둘러 가기도 한다. 독일 쪽엔 작센 스위스가 있지만 체코 쪽으로는 보헤미안 스위스가 있어, 이들 산과 계곡이 독일과 체코의 국경을 가른다. 체코서 독일 국경으로 넘어갈 때 깜빡 잠이 들었다 깨더라도 밖을 보면 지나가는 곳이 독일인지 체코인지 단박에 알 수 있다.
체코의 농가는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폐가의 느낌이 나고, 농지는 제대로 경작되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궁색해 보인다. 이에 반해 독일 농지는 빈틈없이 구획, 정리돼있고 어느 농가에나 트랙터 또는 자가용들이 몇 대씩 주차돼있다. 그것도 마치 자와 측량 기계를 사용해서 세워 둔 것처럼 반듯반듯하게 말이다.
내가 고등학교 다니던 1970년대 초반만 해도 독일이라는 나라는 어떤 점에서는 미국보다 더 큰 선망의 대상이었다. 당시 우리 학년은 전체 열개 반이었는데 독어반이 여덟, 불어반이 둘이었다. 서울대 공대에서는 고교생들을 대상으로 독일어 경시대회를 열 정도로, 공학하면 독일이었다.
산업적 측면에서만 아니라, 문과생이었던 나는 독일어 선생님이 칠판에 써준 괴테의 문장을 여학생들에게 써먹으려 외어놓았던 것을 여태껏 기억한다. “Die erste liebe ist das schönste, was ein herz empfiden kann”(첫사랑은 인간의 심장이 느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여대생들은,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나, 이를 번역했던 뮌헨 유학생 전혜린의 책을 끼고 다닐 정도로 독일은 동경의 나라였다.
다시 여행 얘기로 돌아가자면 우리가 갔던 작센 스위스는, 스위스라는 별칭이 붙어 약간의 기대를 가질 법도 하나 평평한 지형이 대부분인 독일이나 체코에서 볼 때야 높은 산들이겠지만, 스위스를 연상시키면 오산이다. 그럼에도 천 개나 된다는 뾰족한 바위 봉우리들, 봉우리 위에 남아있는 여러 성 터들, 스페인의 론다 마을 같이 협곡 양쪽의 절벽과 절벽을 잇는 다리들과 그 산 밑을 흘러가는 엘베 강 등이 나름의 볼거리들이다.
독일의 낭만주의 국민음악가 베버의 유명한 오페라 <마탄의 사수>는 이곳 작센 스위스를 무대로 한다. 독일의 민속 문학에는 울창한 숲 등이 무대로 빈번히 나오는데 민간설화를 소재로 한 이 오페라도 작센 스위스의 산 숲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고등학생 때 교육청서 주관하는 합창대회를 나간 적이 있는데, 당시 우리가 부른 노래가 바로 <마탄의 사수>에 나오는 <사냥꾼의 합창>이다. 낭만적이고 쾌활한 멜로디에 마치 ‘독일병정’과도 같은 씩씩하고 보무당당한 리듬의 곡인지라, 슈베르트의 <들장미>나 <송어> 같은 고운 곡을 부른 여학생들 앞에서 뽐내며 불렀던 기억이 난다.
작센 스위스를 구경하고 드레스덴 시로 가보니, 그 도시의 젬퍼 오페라 극장 앞에는 그곳에서 활동했던 베버의 동상이 서있었다. 이렇게 아주 옛날 고등학교 시절부터 먼 나라 독일의 문화가 우리의 일상 속에 들어와 앉아 있었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독일에 대한 선망과 환상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것 아닌가 생각한다.
요즈음 KTX를 타고 강릉서 서울을 왔다 갔다 하노라면, 강원도 산골의 농가도 이제는 독일에서 본 농가와 같이 반듯하고, 또 농가마다 각종의 농기계, 픽업트럭, SUV 등의 차량들이 주차돼있는 것을 보게 된다. 오히려 평원이 전개되는 독일과 달리 산골짝마다 고랭지 배추밭이 펼쳐 있는 것을 보면 농지를 보다 효율적으로 최선을 다해 활용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인제는 내가 고등학교 다니던 때같이 독일을 턱없이 선망하던 시절은 지나간 것 같다. 유럽의 나라들과 비교해서 자신감을 갖고 살아도 되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건 내면의 자신감일 것이다. 자기 비하도 아니고 우쭐하는 것도 아닌 우리 그대로를 보여줄 수 있는 자신감 말이다. 중국을 백안시할 필요도 없거니와, 일본이나 미국 같은 나라에도 떳떳이 당당하게 처신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