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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 랭 사인’이 함께 한 글래스고 기행

by 양문규

스코틀랜드 관광을 위해 런던 스탠스태드 공항을 출발해 비행기로 1시간 15분 만에 글래스고 공항에 도착했다. 런던서 글래스고까지의 거리는 부산과 평양 사이의 거리 정도라는데 기차로는 5~6 시간 걸린다. 철도가 생기기 전 역마차가 육로의 여객 운송수단이었을 때는 런던서 글래스고 바로 옆인 에든버러까지 한 사흘 정도 걸려갔다고 한다.


조선 후기의 실학파 연암 박지원은, 지금은 비행기로 2시간이면 가는 서울서 북경을 두 달 열흘에 걸쳐 가는 중 『열하일기』라는 기행문을 썼다. 그렇게 오랜 시간 걸려갔기에 그런 걸작의 기행문도 나왔던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비행기로 런던서 스코틀랜드로의 이동은 아주 편했지만 그 사이 영국의 다른 곳들을 그냥 지나쳐 와 버린 것은 아직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글래스고를 갔던 시기는 7월 하순이라 한창 더울 때였는데 반팔을 입고 다니는 행인도 있는가 하면 모피 코트를 입고 다니는 여인도 있을 정도로 날씨가 춥고 변덕스러웠다. 아닌 게 아니라 스코틀랜드의 날씨는 하루 중에 사계절이 다 있다고 한다. 그리고 하루 안에서도 흐렸다, 비가 왔다, 개였다 하는 일들이 수도 없이 반복되는데, 그날도 숙소에 짐을 풀고 시내로 나오니 비가 흩뿌리기 시작했다.


글래스고 대학 입구(좌), 건물


글래스고는 에든버러에 비하면 딱히 내세울만한 관광거리는 없어 보였다. 비가 와 시내를 돌아다니기도 어려웠던 차, 마침 정류장에서 글래스고 대학을 가는 버스를 발견했다. 이걸 일종의 직업의식이라고 말하긴 뭐 하지만, 난 일단 여행을 하는 도시에서 도서관, 대학이 눈에 띄면 갑자기 그곳이 여행지 1순위가 된다.


글래스고 대학은 영국의 대학 중 옥스퍼드, 케임브리지에 이어 네 번째로 오래된 대학이다. 스코틀랜드 안에서는 세인트 앤드루스 대학에 이어 두 번째다. 1451년에 대학이 시작됐다 하니 그 자체만으로도 감동이다.


대학 잔디.JPG 글래스고 대학 교정


비가 오락가락하는 가운데, 스코틀랜드 특유의 검정 또는 회색빛 박공지붕과 색 바랜 주황색 벽돌의 고색창연한 건물, 그리고 큰 아름드리의 나무들과 교정 잔디에 드리워진 건물의 짙은 그림자들 – 그런 건 시간이 아니면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들이다. 미국 나름의 유서 깊은 대학 건물들조차 영국의 이런 대학들에 비하면 짝퉁과도 같아 보였다.


기념관.JPG 아담 스미스 기념관 입구


수도사가 걸어가고 있을 법한 중세의 아치 식 회랑이 있는 건물로 가니, 그곳은 『국부론』 저자인 아담 스미스의 기념관이었다. 아담 스미스는 이곳에서 공부도 하고 도덕론과 논리학 과목을 강의한 교수로 재직했었다. 비록 『국부론』을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그가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유명한 이론으로 자본주의 경제와 시장이 무엇인지를 사람들에게 인상 깊게 보여준 학자임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스미스와 와트.jpg 글래스고 대학의 아담 스미스 동상(좌), 시내의 제임스 와트 동상


대학 본관의 헌터리언 박물관에는 글래스고 대학에서 실험기구 수리장으로 일한 제임스 와트의 발명품이 전시돼 있었다. 어린 시절 주전자 물이 끓으면 뚜껑이 들썩거리는 걸 보고 증기기관을 발명했다는 와트의 전기를 읽으면서 한때 과학자의 꿈을 키우지 않았던가!


와트는 소형의 증기기관들을 여러 작업 기계에 접목시켜 그것들을 지속적으로 가동케 해 영국 산업혁명을 승리로 이끄는 토대를 마련한다. 토인비는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과 와트의 증기기관이 인류로 하여금 구세계를 마감하고 신세계로 나아가게 했다고 보는데, 이 두 사람이 모두 글래스고 도시와 인연을 맺고 있는 셈이다.


영국 국토는 우리와 비슷하게 토끼 모양의 형상을 하고 있다. 그 토끼의 목덜미에 해당하는 부분에 스코틀랜드의 양대 도시 글래스고와 에든버러가 나란히 있다. 두 도시 사이 거리는 버스로 1시간 30분 정도다. 에든버러가 왕궁이 있는 스코틀랜드의 중심 도시임에도, 바로 옆에 그와 버금가는 큰 도시인 글래스고가 붙어 있는 형국이다.


단 에든버러는 동쪽으로 북해를 향해 있고 글래스고는 서쪽으로 대서양을 향해 있다. 글래스고가 번성했던 것은 그곳이 대서양 건너 신대륙 아메리카로 가는 전진기지이면서 영국의 산업혁명을 추동했던 경제도시였기 때문이다.


켈빈그로브 미술관 및 박물관


이 말고도 글래스고 대학을 찾아가기를 백번 잘한 것은, 대학 캠퍼스를 나오자 넓은 잔디의 공원이 펼쳐지는데, 그 공원에는 스페인 바로크 풍의 붉은 벽돌 건물로 된 켈빈그로브 미술관과 박물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켈빈은 절대온도 K의 그 켈빈이란다. 미술관에는 고호를 포함해 상당히 많은 프랑스 인상파 화가들의 컬렉션이 갖춰져 있어 눈 호강을 실컷 했다. 영국의 모든 공립 박물관, 미술관 등은 일체의 입장료를 받지 않아 돈을 아끼는 나 같은 여행객들은 특히나 반갑다.


대신 입구에는 기부금을 받는 박스가 있다. 나야 이게 ‘웬 떡이야’며 기부금은 본 체 만 체 했지만, 영국의 가족 관람객들은 일부러 애들을 시켜 기부한다. 글래스고 곳곳에 걸린 “People Make Glasgow”라는 캐치 프레이즈가 그냥 얘기는 아닌 것 같다.


켈빈 입구와 파이프.jpg 켈빈그로브 입구(좌), 그 안의 파이프 오르간


켈빈그로브 박물관서는 점심때가 지나자 콘서트홀 같이 꾸민 로비의 2층 회랑에 설치된 파이프오르간에서 연주가 시작됐다. 파이프 오르간은 ‘소리의 건물’이라고도 하듯이, 어디에 세워지든지 그 외관은 장소와 잘 들어맞아야 한다.


켈빈그로브의 오르간은 궁전과도 같은 콘서트홀과 어우러져 화려하고 우아했다. 각종의 악기가 담긴 다성 악기로 ‘악기 중의 왕’이라 불리는 파이프오르간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 랭 사인’이 울려 퍼져 감동의 눈물이 핑 돌았다.


올드 랭 사인은 졸업식 때를 생각나게 하고, 일제 치하 독립운동 시절의 비장한 애국가도 떠올리게 한다. 영화 <애수>에서 워털루 다리를 걸어가던 깜찍하고 귀여우나 비극의 여인 ‘비비안 리’도 생각나게 하는데, 이 곡을 이곳에서 들으니 남다른 감회가 일었다.


올드 랭 사인 말고도 스코틀랜드 민요는 어린 시절부터 우리에게 익숙했다. ‘귀뚜라미가 또르르 우는 달밤’은 ‘국민학교’ 때 담임 선생님과 동무들을 생각나게 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교회 성도들이 부른 ‘하늘 가는 밝은 길’의 ‘애니 로리’ 곡조를 들으면 콧등이 시큰해진다.


스코틀랜드 민요가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것은 개화기 당시부터 선교사들이 갖고 들어온 찬송가 때문이기도 하지만, 애수나 향수 가득한 이 나라 민요의 곡조 자체가 우리의 정서에도 맞고 심금을 울리기 때문이지 않은가 싶다.


스코틀랜드의 글래스고라는 도시는 나에게 근대와 자본주의, 산업혁명을 각인시킨 도시였으면서, 캘빈그로브 박물관의 파이프 오르간서 울려 퍼진 올드 랭 사인은 스코틀랜드라는 곳을 또 하나의 영원한 추억으로 남아 있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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