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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크 하면 떠오르는 노르웨이의 하늘과 구름

by 양문규

어느 나라 또는 어느 도시를 관광하게 되면, 그곳이 낳은 유명 예술가나 역사적 인물들과 만나게 된다. 에드바르 뭉크가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화가라는 사실은 알고 갔음에도 막상 그곳에 가보니 그의 명성이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다. 노르웨이에서 뭉크는, <인형의 집>을 쓴 극작가 입센, 그리고 <솔베이지의 노래>로 유명한 작곡가 그리그의 명성 위였다.


수도 오슬로에서는, 그곳 시청에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김대중 대통령이 기증한 거북선 모형이 있다 해서 원래 그걸 구경하러 갔는데, 공공 관청임에도 시청사 안에 ‘뭉크 전시실’이 따로 있을 정도였다. 처음에는 그럴 수도 있다 싶었다.


오슬로 대학을 가보니 그날 그곳서 뭉크 전시회가 열렸는데 이미 아침 행사가 끝나서 볼 수는 없었다. 이게 아쉬워 대학 바로 옆에 마침 국립미술관이 있어 일부러 입장료를 내고 들어갔다. 반 다이크부터 마티스, 브라크에 이르기까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시대 별로 유명한 화가의 작품들이 다수 전시돼 있었다. 석유로 ‘북쪽의 두바이’가 된 부자 나라 노르웨이를 실감케 했다.


그런데 국립 미술관 안에는 이런 유명 화가들 틈에 끼여 별도로 뭉크를 위한 전시 홀이 따로 마련돼 있었다. 단 이곳에서는 사진 촬영이 금지됐다. 몇 번의 도난 사건이 있었던 뭉크의 색채로 된 원작 <절규>는 철통 같은 보안 속에 유리 상자 안에 전시돼있었다. ‘절규’ 소리는 밖으로 튀어나오지 못한 채 상자 안에 갇혀 맴돌고 있었다.


그날 늦은 오후, 오슬로 시에 아예 독자적인 뭉크 박물관이 있다고 해서 찾아가 봤더니, 이미 문이 닫혔다. 단 입구에는 뭉크와 고호의 기획 전시회를 선전하는 두 화가의 동명의 작품 <별이 빛나는 밤>의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뭉크는 고흐 등의 후기 인상파와 야수파, 그리고 20세기 초 독일 표현주의 미술과 영향을 주고받은 것으로 얘기된다.


stary.jpg 뭉크와 고호, 두 화가의 동명의 작품 <별이 빛나는 밤>의 전시 안내 포스터가 붙은 뭉크 박물관.


이렇게 해서 뭉크의 그림을 보는 일정은 오슬로에서 끝나는 것으로 알았다. 그런데 노르웨이 제2의 도시인 베르겐을 가니, KODE라는 미술관에 최고의 뭉크 컬렉터가 기획한 뭉크 전시관이 또 있었다. 사람들 말로는 이곳이 오히려 뭉크 작품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곳이라고도 한다. 이곳에서는 사진 촬영까지 허용돼 뭉크의 그림들을 실컷 보고 사진에 담아 올 수 있었다.


뭉크 그림 속의 인물들을 보면 대부분 들창코 거나 이목구비 중 어디 하나가 빠져 있다. 그래서 어찌 보면 코믹해 보이기도 한다. <절규>에서도 바람 빠진 풍선 모양 얼굴의 사나이가 비명을 지르고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그의 그림에 나타난 인물들은 대개가 우울하거나 공포에 떨거나 또는 불안한 얼굴들이다.


불안은 인간 경험에서 가장 확실한 것으로,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인간을 따라다니는 가장 확실한 동반자다. 불안은 인간이 죽어야만 사라진다.


우울, 여름밤 해변의 Inger, 임종, 칼 요한 거리의 저녁(위 좌측부터 시계 방향)


불안 얘기가 나오니 한국문학 선생인 나로서는 작가 ‘이상’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연작시 「오감도」의 ‘일인의 아해, 이인의 아해 어쩌고’하는 시구들은 마치 정신병자들이 혼자서 아무 의미가 없는 말들을 반복적으로 중얼거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정신과 의사들은 이러한 중얼거림을 ‘음송증’이라 부르며 이를 불안에 대한 일종의 방어기제로 간주한다. 그리고 이상 문학의 불안은 그의 유아기 때의 정신적 외상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뭉크의 그림에 나타난 불안과 우울, 공포 역시 어린 시절 그의 불행한 가족사와 연결시키는데, 그 자신 스스로도 심한 우울증을 앓았다고 한다. 이상이 연작시 「오감도」를 신문에 연재 발표하다가 독자들의 항의로 도중하차했듯이, 뭉크도 <절규>가 처음 전시된 뒤 그림에 대한 분노 섞인 혹평이 쏟아지고 심지어 작가가 미쳤다는 의혹까지 제기돼 작가 스스로도 많은 상처를 받았다고 한다.


마돈나와 작품명 미상.jpg 마돈나 석판화(좌), 제목 미상의 작품


그럼에도 이들 작품에서 시종 강하게 표현되는 불안은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어떤 공감을 주면서 위로를 가져다준다고 본다. 즉 불안한 현대인들이, 그들 작품을 접하면서 자신들 스스로의 불안을 쓰다듬고 정화시킨다는 것이다. 이들 작품은 마치 불안에 대한 백신 주사를 맞는 것처럼 실제 현실의 불안을 이겨낼 수 있는 면역력을 갖게 한다는 것이다.


판화 작품의 절규(좌), 이별


코데 미술관에서 본 노르웨이 화가들의 풍경화에는 유독 그곳의 구름과 하늘이 많이 등장하는데, 뭉크의 회오리 같은 붓질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노르웨이의 하늘과 구름을 닮았다. 노르웨이가 석유와 연어 양식으로 부자 나라가 되고, 깊고 차가운 바다 피오르드만 유람으로 관광객들이 많이 드나드는 국가가 됐지만, 이러한 것들 한 꺼풀을 벗기면 대단히 황량한 자연을 가진 나라임을 알 수 있다.


구름과 하늘.jpg 코데 미술관에 전시된 노르웨이 화가의 하늘과 구름 풍경화


노르웨이를 갔을 당시 7월 하순이었는데 거의 매일 바닷바람과 비바람이 몰아붙여 날씨가 춥고 풍경은 을씨년스러웠다. 심지어 베르겐에서는 다음 날 눈이 내린다는 기상예보도 있었는데 그것이 이상스럽지 않을 정도였다. 지금은 관광 페리 선박이 다니지만 노르웨이 전체가 거의 산과 바다라는 거대한 물리적 장벽에 가로막혀 있고 조금만 더 북쪽으로 가면 사람들은 산과 바다 그리고 금방이라도 얼어붙을 것 같은 추운 섬들에 흩어져 산다.

하늘과 섬.jpg 비행기에서 본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베르겐으로 이동하면서 스타방게르라는 작은 도시를 둘렀는데, 새벽 비행기를 타야 했기에 공항 인근 변두리에 숙소를 잡았다. 그곳의 하늘과 구름, 언덕의 집, 숲과 나무, 바다의 풍경은 그대로 뭉크 그림을 연상케 했다.


항구의 구름.jpg 스타방게르 항구


하늘의 구름이 만들어내는 변화무쌍한 형상들이며, 때로 햇빛을 받아 잠시 빛나다가도 거센 바닷바람으로 어두운 그늘이 드리워져 우울하게 엉켜서 성내는 구름들은 뭉크의 불안한 마음 상태와도 같았다. 뭉크가 유럽의 남쪽 따듯한 나라에서만 태어났어도 그런 그림들을 그리지는 않았을 것 같다.


베르겐의 고독남.jpg 베르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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