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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모 호수에서의 이태리 조식

by 양문규

스위스와 이탈리아는 알프스 남단을 따라 서로 손가락 깍지 끼우듯 꽉 맞물려 있다. 밀라노의 북쪽에서 알프스까지, 호수 지방이라 불리는 이 일대는 북이탈리아 제일의 휴양지로, 그중에서도 코모 호수는 대도시 밀라노에서 40km 정도 떨어져 기차로 쉽게 이동할 수 있다.


코모 호수는 스위스 어디서나 구경할 수 있는 그러한 빙하호 중의 하나다. 호수 멀리로 눈 덮인 알프스의 연봉이 펼쳐지는 것은 여느 스위스 호수들의 풍경과 크게 다를 바 없다. 단 이곳 코모 호수에서는 아열대 식물이 자라는 온화한 지중해성 기후가 펼쳐지고 있어, 호수의 마을들은 사철 푸르른 나무들과 색색의 꽃들을 안고 있다. 알프스 남쪽의 풍경은 그 북쪽과 또 달라, 코모 호수는 이름 하여 ‘알프스의 발코니’이다.


우리는 코모 호숫가 한 편에 위치한 바레나 역으로 도착해서, 다시 밀라노로 쉽게 돌아가기 위해 인근에 숙소를 마련했다. 호숫가 선착장이 있는 곳에서 계단이 층층이 놓인 언덕의 골목길로 올라가노라면 남방의 꽃과 화분들로 장식된 집 또는 예쁜 빌라의 정겨운 마을들을 만나게 된다. 이곳 마을 사람들을 만나면 ‘본조르노’ 또는 ‘부오나세라’의 쾌활한 인사가 절로 튀어나온다.


코모 전면.jpg 코모 호수


코모 호수 여행의 절정은 우리 숙소가 있는 바레나의 선착장에서 유람선을 타고 호수의 중심지인 벨라지오 마을로 가는 것이다. 우리가 갔던 시기는 여행 비수기인 12월 초순이라서 가게 문들도 많이 닫았고 마스트 돛을 내린 요트들이 선착장에 쓸쓸하게 정박해있었다. 그러나 물오리가 호수를 가르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나름의 호젓한 매력도 있었다.


벨라지오로 가는 호수의 유람선 멀리로 알프스의 만년설 봉우리들은 너울대는 긴 구름 띠를 두르고 있었고, 호수의 수면 빛깔은 만년설이 녹아 흘러내려 지중해의 빛깔과 같이 푸르다. 호숫가 주변 마을은 로마네스크 양식의 종탑을 중심으로 파스텔 톤의 노란색 삼층집들이 이어지고 있어 과연 여기는 이태리로구나 하는 생각을 절로 들게 했다. 남국적 풍광 속에서 저 멀리 이뤄질 수 없는 사랑처럼 놓인 알프스가 어떤 점에서는 스위스 안의 알프스보다 더 매력적이었다.


괴테가 <이탈리아 여행기>에서 유럽 북부에서 알프스를 넘어 이태리를 들어서는 순간 왜 가슴 벅차 했는지 익히 상상이 갔다. 우리도 이곳이 비록 태양 강렬한 이탈리아 남부의 지역은 아닐지라도 이태리의 분위기를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단 이러한 이태리의 낭만을 영 무색하게 할 일도 없지 않아 있었다.


벨라지오 원경3.jpg 벨라지오 항


우리가 머문 숙소는 개인 주택을 개조해 만든 역시 예쁜 동화와도 같은 집이었다. 숙소 내부 아기자기한 벽지나 침대 머리의 조명, 레이스 커튼 등 모두가 귀엽고 예뻤다. 아내는 아주 사랑스러운 곳이라 예찬했다. 그러나 밤이 되면서, 겨울철엔 관광객들이 찾지를 않아서인지 난방이 시원치 않게 돌아가 덜덜 떨면서 자야 했다. 그러다 보니 그런 멋 부린 것들이 다 부질없어 보였다.


단 나이가 좀 있어 보이는 주인장 부부가 다음 날 조식을 할 장소와 시간을 상냥하게 일러줘 기대에 부풀었다. 우리가 생각해낼 수 있는 이태리 음식이 고작 피자나 파스타 등에 불과한 것일지라도 이태리의 가정식 조찬은 과연 어떠할 것인지 은근히 기대를 했다. 아내는 식탐이 있는 사람은 결코 아니지만, 유럽 여행에서는 특히나 조식이 제공되는 숙소를 좋아했고 그런 데서는 평소와 달리 아침 식사도 많이 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부엌에서 음식을 조리하는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우리가 시장기를 느끼며 식당으로 갔을 때 막상 여주인은 자신도 민망한 듯이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먹을 것을 가리켰다. 우유와 시리얼과 비스킷이었다. 추운 밤을 지내고 아침부터 그런 것들을 먹자니 곤혹스러웠다. 하다못해 조식으로 팬케이크라도 제공했던 여느 유스호스텔만도 못했다.


벨라지오 원경.jpg 원경의 벨라지오

이태리를 여행하면서, 모든 숙소의 조식이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음식의 나라라는 명성에 걸맞지 않게 항상 기대하는 바에 크게 못 미쳤다. 어디선가는 빵과 함께 엄청나게 단 초콜릿 크림인 ‘누텔라’를 차려놓은 곳도 있었다. 이태리 숙박업소의 조식 수준을 함부로 일반화해 얘기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비슷한 가격대의 독일 숙소와 비교하면 형편없음은 분명하다.


내세울 음식이 없는 나라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독일의 경우는 어떤 종류의 숙소를 가도 일단 조식이 제공되는 곳에서는 여행을 떠나는 아침 손님들에게 화려할 것까진 없어도 든든한 식사를 제공해줬다. 갓 구운 다양한 빵과 소시지, 따끈한 커피, 그리고 싱싱한 야채와 과일들. 반면 이태리 조식은, 잘 먹으려면 근사한 레스토랑으로 가야지 어차피 조식에서 뭘 기대하냐는 식으로 차려준다.


벨라지오 항구.jpg 벨라지오 부두, 왼쪽으로 알프스의 연봉이 보인다.


괴테가 이태리 여행을 하며 쓴 여행기를 읽어보면, 독일 사람들은 이태리 사람에 비해 늘 장래를 대비하지 않을 수 없게끔 험악한 자연의 강요를 받아 왔다고 말한다. 가령 독일 사람들은 아름다운 날과 시간을 즐거움에 바치지 못하고 노동에 헌신해야 한다.


독일 사람들은 일 년 중 많은 달을 폭풍과 비와 눈과 추위를 피해 집 안에 머물러야 한다. 계절이 끊임없이 바뀌니, 몰락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살림꾼이 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아무도 뭔가가 없어서는 안 되고, 그렇게 살려고 할 수도 없다. 자연은 인간을 강요해서 일하고 준비하게 만든다. 이런 자연의 작용이 수천 년에 걸쳐 계속되면서, 독일인들의 성격을 결정했다.


이에 반해 독일인들 눈으로 볼 땐 이태리에서는 비참하게 보이는 가난한 사람일지라도 살아가며 긴급한 욕구들을 충족시킬 수 있을 뿐 아니라 세계를 가장 아름답게 즐길 수가 있다. 한마디로 ‘카르페 디엠’이다. 이른바 나폴리의 거지는 노르웨이의 부왕 자리도 쉽사리 물리치고 업신여길 수도 있으며, 만일 러시아 왕후나 시베리아 총독 자리가 주어진다면 그런 명예를 거절할지도 모른다고 얘기한다. 이태리 사람들은 단순히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즐기기 위해서 일하며, 심지어는 삶의 노동에서도 즐거움을 얻으려 한다.


독일도 물론 이태리 못지않게 아름다운 나라다. 그러나 날씨에 있어서는 괴테의 말처럼 여름에도 흐리거나 비바람이 잦아 을씨년스러울 때가 많고 겨울에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반면 이태리는 독일과 달리 지중해 바다와 ‘오 솔레미오’의 빛나는 태양이 늘 그곳의 풍광을 돋보이게 한다. 에머슨은, 태양은 최고의 예술가로 태양이 아름답게 비춰주지 못할 만큼 추한 존재는 없다고 하지 않았는가!


열악한 기후, 환경 조건에서 독일 사람들은 늘 긴장하고 때로는 강박적일 정도로 규격을 맞추고 근실한 생활 자세를 가질 수밖에 없다. 독일 숙박업소의 조식도 그러한 독일인들의 준비성과 성실함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 같다.


이에 반해 이태리는 기후가 좋고 물산이 풍부하니 화려한 성찬이 있을지언정 그까짓 조식이야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떻겠느냐는 식인 것 같다. 독일은 독일대로 이태리는 이태리대로 다 좋지만 이태리 조식은 확실히 기대 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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