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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초콜릿 ‘린도 볼’ 해프닝

by 양문규

요즘은 국내에서도 손쉽게 전 세계 여러 나라의 초콜릿을 사 먹을 수 있다. 그러나 역시 초콜릿의 본산은 유럽이라 하겠다. 1년 간 머물던 체코를 비롯해 유럽 여행을 하다 보면 다양한 초콜릿 문화와 만나게 된다.


소설가 쿤데라는 프라하를 “세상에서 가장 에로틱한 도시”라고 말했는데, 그곳 어느 초콜릿 가게를 가니 남자 성기와 여자 유방 모양을 한 초콜릿을 팔기도 했다. 벨기에 브뤼셀 공항을 도착하면 오줌싸개 소년과 함께 초콜릿을 홍보하는 대형 광고판이 걸려있다. 벨기에의 맥주 중에는 초콜릿 맛을 느끼게 하는 맥주가 다 있을 정도다.


KakaoTalk_20160229_205300104.jpg 브뤼셀의 초콜릿 가게


20141124_184348.jpg 프라하의 에로틱 초콜릿 가게


옛날 유럽에서는 초콜릿이 지금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사치스러운 음식이었나 보다.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1859)에는 프랑스혁명 직전 ‘귀족 나리’들의 사치스러운 생활을 풍자하기 위해, 그들이 아침에 초콜릿 먹는 장면이 등장한다.


첫 번째 하인이 초콜릿 단지를 가지고 오면, 두 번째 하인이 자그만 도구로 초콜릿을 저어 거품을 일으키고, 세 번째 하인은 냅킨을 들고 곁에 서있고 마지막으로 네 번째 하인이 초콜릿을 따른다. 초콜릿 하나를 먹는데 네 명의 하인이 달려들어 시중을 드는 격이다.


‘고디바’니 ‘길리안’이니 하여, 유럽에서도 초콜릿으로 가장 유명한 나라인 벨기에는 자신의 식민지였던 콩고의 카카오 농장에서 원료를 착취하다시피 들여와 초콜릿 나라로서의 명성을 쌓게 된다.


이와 비슷한 사태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데, 최근에도 네슬레, 허쉬 등 글로벌 식품기업들이 아프리카의 코코아 농장에서 아동 노동착취를 묵인했다는 혐의로 미국에서 피소됐다는 소식을 들을 때, 초콜릿을 그냥 달콤해하면서 먹기엔 늘 마음 한구석 찝찝한 면이 없지 않아 있다.


그럼에도 나는 초콜릿을 좋아하는 이들 중 하나다. 아내 말로는 어린애나 정신연령이 낮은 이들이 단 음식을 좋아한다면서 나를 놀려댄다. 당연히 아내는 초콜릿을 즐겨하지 않는데 그래도 당이 떨어진다든지 하는 경우가 있어 우정 초콜릿을 사야 할 경우가 있으면 체코에서는 ‘린도 볼’이라는 초콜릿을 주로 사 먹었다.


이 초콜릿도 당연히 달지만 아내가 그나마 이를 좋아하는 이유는, 가격도 비교적 싼 데다가 구슬 모양의 초콜릿 속에 부드러운 크림이 들어가 있는데 이 크림에 코냑이나 와인 등의 술 성분이 들어있는지 약간은 시큰 새콤한 맛을 내기 때문이다.


체코에서 한국으로 다시 돌아와 스위스를 여행하기 위해 암스테르담 공항에서 환승할 때 면세점에 바로 이 린도 볼이 눈에 띄었다. 체코에서 살던 때가 기억나 반가워서 여행 다니면서 먹으려고 많이 샀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이 린도 볼이 스위스 초콜릿인 줄 몰랐다.


그런데 알프스의 융프라우 정상을 갈 때, 융프라우 역에서 승강기를 타고 해발 3571m의 전망대를 올라가니, “Top of Europe”이라는 쇼핑센터가 있었다. 그곳에는 스위스가 자랑하는 Tissot 시계, 그리고 Victornox 나이프 매장과 함께, 바로 린도 볼을 간판 제품으로 하는 린트(Lindt) 초콜릿 매장이 있었다.


이 매장 간판에는 흥미롭게도 유럽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초콜릿 가게라고 씌어 있었다. 융프라우를 오고 가는 열차 안에서도 검표원이 차표 검사를 하면서 서비스로 린트 초콜릿을 건네기도 했다.


나는 스위스에 가서야 이 나라가 전 세계적으로 초콜릿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나라라는 걸 비로소 알게 됐다. 19세기 중반 이후 스위스는 벨기에와 함께 초콜릿 생산을 주도하는데 특히 스위스는, 자기 나라가 초콜릿의 주 재료가 되는 질 좋은 우유를 생산하는 축산국 가임을 강조하면서 초콜릿 생산국가로서의 주도적 위치를 갖게 되는 것이다.


1561977941288-8.jpg 유럽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초콜릿 가게가 있는 “Top of Europe”


그런데 이 스위스 산 린도 볼 초콜릿의 맹점은 잘 녹는다는 점이다. 미국의 M&M 초콜릿은 린도 볼과 비슷한 캔디 모양이나, 열대 기후에도 녹지 않고 휴대하고 다닐 수 있게 단단한 껍질로 된 초콜릿이다. 그래서 이 초콜릿은 2차 세계대전 중엔 군사 식량으로 사용됐다고 한다.


물론 린도 볼 초콜릿은 그런 종류의 초콜릿은 아니고 오히려 잘 녹는다. 그럼에도 7월의 날씨에 스위스 여행 내내 갖고 다녔지만, 워낙 고산 지역인 알프스 지역을 여행하고 다니다 보니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산에서 밑으로 내려와 남부 독일 쪽을 지날 때였다. 당시 유럽의 날씨가 유난히도 더웠던 때였는데 운전하다가 입이 심심하면 먹으려고 주머니에 넣어 두고 야금야금 꺼내 먹던 린도 볼 초콜릿이 주머니 안에서 슬슬 녹기 시작했다. 나는 이도 모르고 ‘티티제’라는 호숫가 식당에서 화장실을 다녀오면서 주머니서 손수건을 꺼냈는데 손수건에 초콜릿이 녹아 뭉개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거기까지는 그럴 수 있다 싶었다. 이 녹아드는 초콜릿의 침투력은 대단해 – 린도 볼 안에는 크림도 있다 – 바지 주머니를 넘어 바지 가운데 쪽으로 번져 팬티에 까지 스며들었다. 바지를 물로 씻으면 씻을수록 초콜릿색은 더 번지는데 바지의 정중앙이 아주 흉측해졌다. 화장실에서 기다리며 아내한테 부탁해 여행 가방에서 새 바지와 내의를 꺼내 이를 갈아입고서야 간신히 수습을 했다. 아내의 입에서 ‘정신연령이 낮은 사람이 단 것을 좋아한다.’는 말이 또 튀어나왔다.


그러고 나서도 며칠 더 여행을 한 후 귀국을 하게 됐다. 인천 공항에 도착해 짐을 찾느라 여기저기 왔다 갔다 하다가 아내와 연락이 안 돼, 통화가 가능해진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런데 전화 신호는 희미하게나마 가는 것 같은데 아내는 전화를 받는 순간 묵묵부답이었다. 몇 번을 해도 그 모양이어서 화가 굉장히 났었다.


그러나 또다시 아내로부터 정신연령 운운 소리를 들어야 했으니, 녹았던 초콜릿이 이미 오래전 주머니에 넣고 다니던 핸드폰의 음향 수신 장치로 흘러들어 이를 막아 상대방의 목소리가 안 들렸던 것이다. 국외에서는 핸드폰을 인터넷 정보를 검색하는 정도에서 제한적으로 사용했기에 전혀 몰랐다가, 막상 통화가 가능해진 국내에 와서야 이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결국 전화기 수리는 불가능했고 새 것으로 교체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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