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할 때 식당 고르는 일이란 여간 어렵지 않다. 여행으로 지쳐 신경이 예민해졌을 경우 이 때문에 싸움도 일어난다. 어떤 경우 찾았던 식당이 형편없으면 그날의 여행 기분을 잡치기도 한다. 대로변의 식당들, 더욱이 호객꾼까지 앞세우고 있는 곳은 피해야 한다는 나름의 원칙을 갖고 있지만, 배고프고 힘들다 보면 그냥 아무 데나 들어가고 만다.
우리 부부는, 와이파이가 없어도 사용이 가능한 ‘시티 맵스’라는 어플을 써서, 여행하는 인근의 식당들을 미리 저장해놓고 다니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그걸 사용해 식당을 찾아간 적은 거의 없다. 그걸 갖고 식당을 찾느라 수고하는 시간에 그냥 역시 아무 데나 가버리고 말기가 일쑤다.
로마는 유럽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임에도 지하철은 딱 두 개 노선 밖에 없다. 지하철서 내려 골목길을 거쳐 숙소를 찾느라 두리번거리고 가는데 어느 별스럽지 않은 음식점에 사람이 바글거렸다.
이태리 북부와 달리 로마 쪽 남부는 까무잡잡하고 땅딸한 체격의 사람들이 많다. 식당 안엔 웨이터 섞건 이런 사람들이 더러 눈에 띄었다. 소위 현지인 손님이 많은 식당이었다. 우리는 숙소에 가서 짐을 푼 다음 홀가분한 상태로 다시 이곳을 찾았다.
이 식당은 여러 가지로 마음에 들었다. 일단 주인이자 주방장인 듯싶은 콧수염 난 배불뚝이 아저씨부터가 마음에 쏙 들었다. 주인은 <대부> 영화에 등장하는 보스는 아니고, 그 밑에서 일하는 집사 격의 얼굴로 보이는 이다.
우리가 식당 입구에서 머뭇거렸더니 이 아저씨 턱을 쳐들고 주차요원이 차가 후진할 때 안내하듯이 손으로 이리 오라 한다. 어떻게 보면 건방지고 불손한 행위 같은데 그 몸짓이 아주 이태리다웠다.
사람은 자기의 뜻을 나타내고자 할 때 말뿐만 아니라 몸짓(얼굴 표정 포함)과 말투를 이용한다. 말 자체보다 몸짓과 말투가 훨씬 더 뜻을 표시하기도 한다. 말을 글로 적게 되면 몸짓과 말투는 실제로는 사라지며 막연히 암시되는데, 그게 글의 문체(스타일)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이태리 사람들의 몸짓을 사랑(?)한다. 그리고 아주 그에 대해 호의적이다. 왜냐하면 나 스스로가 수업을 할 때 몸짓과 말투가 요란한 편이기 때문이다. 어찌나 요란한지 제일 앞에 앉은 학생들은 내 침이 자신들에게 튈까 봐 책받침으로 머리를 막고 있기도 한다.
이태리 어느 공항서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의자에 자리 잡고 앉은 이태리 아줌마 둘이서 대화를 나누는데 손을 엎었다 뒤집었다가 또 손바닥에다 복잡한 필기체 글씨를 쓰듯이 쉴 새 없이 손가락을 움직여댔다. 이태리 축구 선수들이 하늘을 향해 손을 찔러대는 건 봤어도 아줌마들이 그러고 있는 광경은 참 신기했다.
점잔을 빼는 신사의 나라인 영국에서 이태리를 여행 왔던 작가 디킨즈는, 이태리 사람들은 친구들이 즐겁게 대화를 나눌 때조차 금세 서로를 찌를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그러면서 심지어 그들은 세탁할 때도 열정적이라, 자신의 흰 바지를 세탁소에 맡겼더니 어망으로 쓰게 딱 좋게 해졌다는 얘기도 비꼬아 덧붙였다.
나는 그 식당 주인의 어서 오라는 손짓 하나에 식욕이 솟구쳐 올랐다. 자신의 식당에 대한 자부심도 보이고, 당신들 도대체 뭐 때문에 지금 망설이고 있나? 빨리 들어오라는 식의 제스처로 보였다. 문제는 내가 아는 이태리 음식의 범위가 너무 뻔한 것인데 한국 식당에서와 똑같이 파스타와 리조토를 주문했다.
나는 솔직히 파스타 맛도 모르고 좋아하지도 않았다. 우리 대학 다닐 때는 파스타를 마카로니라 불렀다. 아주 일찍이 모더니스트 김수영은 자신의 시 <공자의 생활난>(1945)에서 “국수- 이태리어로는 마카로니라고 부른다.”라고 얘기하긴 했지만, 우리 세대에게 마카로니란 국수도 아니고 샐러드에나 들어가는 요상한 식재료였다.
이후 ‘스파게티’라고 하면 토마토케첩을 넣어먹는 국수 정도로 알았고, 파스타라는 이름으로 불러질 때서야 비로소 이태리 국수는 여러 종류고 토마토소스 외에 여러 다른 소스도 들어간다는 것을 알았다. 스파게티든 파스타든, 나로선 늘 촌사람이 도회의 낯선 음식을 먹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당에선 빵이 먼저 나왔다. 이태리 빵의 정체 역시 알 턱이 없건만 이태리 빵은 발사믹과 올리브에 흥건히 적시는 순간 지중해의 느낌이 확 올라온다. 지중해의 느낌이 뭔지 물어본다면 그냥 그런 게 있다고 넘어가 주길 바란다.
올리브 소스로 된 파스타는, 비유가 엉성하긴 한데 아주 잘 반죽해서 뽑은 수타 짜장면 맛이 났다. 재료는 단순한데 맛은 풍부했다. 버섯 리조토도 좋았다. 버섯이 자신의 향기를 갖고 밥으로 스며들고자 분투(?)하는데, 밥알들도 이를 기꺼이 받아주는 형국이었다.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로 유명한 로시니는 식도락으로도 소문나 있다. 그는 베네치아의 어느 식당에서 리조토를 시켜놓고 음식을 기다리며, 오페라 <탄크레디>의 유명한 아리아 “매우 두근거리는 마음”(Di tanti palpiti)을 작곡했다고 한다. 물론 이 아리아는 리조토가 아니라 연인을 기다리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노래한 것이다. 로시니에겐 음식이나 연인이나 마찬가지였겠지!
식사 중에는 인근의 식당을 돌면서,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악사와 테너 가수가 들어와 노래를 불렀다. 당연히 나폴리 풍의 가곡이었는데, 워낙 목소리가 우렁차고 낭랑해 핀 마이크를 달고 노래를 부르는 줄 알았다.
‘예술의 전당’에나 서야 될 듯싶은 테너가, 노래가 끝난 후 테이블을 돌아다니며 돈을 받고 있으니 이 역시 이태리답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식사가 끝나고 계산서를 달라고 했더니 예의 그 콧수염 아저씨가 마피아가 거래할 때 하는 양 메모 종이에 휘갈겨 써서 건네줬다.
식당을 나오니 땅거미가 지기 시작했다. 원형경기장 콜로세움이 있는 곳까지는 지하철로 한 정거장만 가는 거리이기에 6월 초순의 날씨도 선선하여 슬슬 걸어갔다 왔다.
거대한 콜로세움과 무너진 잔해들 사이로 밤의 불빛을 받아 환하게 피어난 꽃들이 로마가 남국의 도시임을 알린다. 밤길에 만난 로마는 오래된 도시가 주는 안온한 평화와 안정감 그 자체였다. 거기다 맛있는 파스타와 리조토를 먹었으니 행복한 로마의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