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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쿠버에서 대마를 다시 생각해보다

by 양문규

대학 다닐 때 학교로 록 가수 신중현이 초청을 받아 온 적이 있었다. 그가 자신의 히트곡 ‘미인’을 부르면서 무대 계단을 데굴데굴 굴러 내렸는데, 아마도 그가 ‘약’을 먹고 노래를 부른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 애들 사이의 중론이었다. 그리고 곧 얼마 안 있어서 연예인들의 대마초 파동이 있었다.


당시 친구들 중에서도 더러 대마를 호기심 삼아해 보는 애들이 있었다. 처음 할 때는 마치 군불을 땔 때처럼 나는 연기 때문에 흡입 자체가 쉽지는 않다고 했다. 어떤 친구는 대마를 해도 별 변화가 없어 대마를 제공한 애가 아주 아까워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마치 술 먹고 별로 취하지 않는 애들이 있듯이 말이다.


올드 타운.JPG 차이나타운을 가기 직전의 시내 Gastown 관광


그러나 이런 얘기들은 다 풍문으로 들은 거고, 대마를 하는 모습을 실제로 본 적은 없다. 밴쿠버를 여행할 때였다. 다운타운을 구경하고 인근에 차이나타운이 있다고 해 걸어가 봤더니 홍등이 달린 중국식 저택과 수양버들이 늘어진 연못 등이 있는 중산(손문) 공원이 나타났다.


그런데 공원을 가서 정작 놀랐던 건, 그곳 길바닥에서 쓰러져 자고 있는 젊은 남녀 한 쌍 때문이었다. 배낭을 메고 가출한 차림새로 눈은 풀리고 입술이 푸르며 얼굴은 불콰해져 있었다. 순간 마약을 한 이들이라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 기분이 다소 묘했다. 중국인 가게들이 있는 길 쪽으로 나오니 뭔가 지린 냄새가 진동을 했다.


중산.jpg 중산(손문) 공원


처음에는 중국 약재 가게에서 나는 냄새인 줄 알았는데 실은 대마 냄새였다. 이 냄새는 이곳 말고도 이후 캐나다 어떤 온천지를 여행할 때 스쳐 지나가는 관광객에게서도 맡을 수 있었다. 그 냄새가 워낙 독특하기 때문에 대마초를 한 번도 피워보지 않은 나조차도, 냄새를 맡는 순간 그것이 대마초인지 담배인지 바로 구분을 할 수 있었다.


중국인 거리를 벗어나자마자 버스가 다니는 큰 길이 나왔는데, 인도 한 편으로 노숙자와 마약을 한 이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다. 너무나 낯선 풍경에 놀랐는데 아내는 기겁을 해서 다운타운으로 가는 버스를 허겁지겁 집어타고 마치 도망치듯이 그곳을 빠져나왔다.


차이나타운으로 가는 길.jpg 중산 공원서 차이나타운으로 가는 길


도대체 밴쿠버 같은 대도시에서 그것도 백주에 마약을 한 이들이 저리 많이 모여 있는데 캐나다의 치안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아주 잠깐 했었다. 그러나 생각을 달리 해보면 우리도 대낮은 아니지만 밤에 도시 유흥가나 주점 거리에 가면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어떤 때는 술주정을 하며 폭력을 행사하기도 하는 광경을 심심찮게 목격하기까지 한다. 밴쿠버 거리의 마약장이들이 실없이 웃으며 침을 흘리고 있는 모습이 꼴사납긴 해도 타인에게 무슨 해코지를 하려거나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하기는 대마 등을 하면 기분이 좋아진다는데 뭐 때문에 그러겠나?


문학 예술가들 중에는 창작을 하면서 마약을 했던 이들이 은근히 많다. 20세기 초현실주의 예술가들은 아예 환각제나 음주에 의해서 작품이 쓰여질 수 있다고 믿는다.


릴케는 흥분제가 시적 영감의 원천이 된다고 봤고, 독일의 극작가 실러는 자신의 창작은 썩은 사과의 냄새를 맡으면서 시작됐다고 했다. 보들레르 역시 아편의 힘이 창작의 모든 원동력이 된다고 얘기한다.


보들레르 같은 상징주의 시인들은 마약을 통해 두 개 이상의 감각이 접합되는 이른바 ‘공감각’을 경험하는데, 오관의 지각 내용이 현란하게 뒤섞인 일종의 요지경의 상태를 경험한다. 랭보의 경우 알파벳에서 색깔을 느끼기도 했다는데, 그의 시 <취한 배>도 마약에 취한 것인지도 모른다.


가왕 조용필도 왕년에 ‘단발머리’를 작곡할 때, 혹시 빨주노초파남보의 색깔들이 도레미파 등의 음으로 전이되는 환각 상태를 경험해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실제 마약은 아주 오래전부터 인간들 사이에서 사용돼왔는데, 옛날에는 마약에 대해 특별히 부정적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인식이 바뀌기 시작한 건 결정적으로 기독교가 도입되면서부터라고 한다. 예수가 탄생했을 때만 해도, 예수를 찾아온 동방박사의 선물 중 하나가 ‘몰약’인데, 당시 상황을 고려하면 그것이 아편일 확률이 높다고 본다.


마약은 옛날에는 종교의식 등에서 사용되었으나 기독교 세력이 강성해지면서 마약을 사용한 종교적 엑스터시, 황홀경 등은 모두 불법화되고 죄악시된다. 과거에는 고통을 잊기 위해 일종의 의료용으로도 사용되던 마약을 기독교는 일절 금지한다. 신체적 고통은 하나님이 내린 처벌이기 때문에 신앙과 회개를 통해 극복해야만 한다는 이유에서다.(오후,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내가 여행하던 시기 캐나다 정부는 대마초를 부분적으로 합법화하기 시작했는데, 이러한 조치는 히로뽕과 같은 치명적인 마약을 제외한다면 일리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약을 규제하면 가격이 상승하고, 그 결과로 마약을 파는 일은 훨씬 위험해져 이는 범죄로 연결된다. 전 세계 마약 사용자의 70~80퍼센트는 평생 대마초만을 피운다니, 대마초만 합법화돼도 마약으로 처벌받는 사람들이 확 줄어들게 되는 셈이다.


대마초는 술과 비슷하게 일이 끝난 뒤 즐기는 기분 전환용 약물일 수도 있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대마 소위 마리화나가 합법화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막강한 배후에 주류업계가 있다고 한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밴쿠버 백주의 거리에서 실제로 대마를 한 이들을 목격한 경험이 없었다면 최근 대마를 합법화하려는 캐나다를 비롯한 여러 나라의 움직임에 크게 공감을 못 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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