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리아섬의 부차트가든과 휠체어 탄 여인들

by 양문규

1.

캐나다 중서부를 여행하기 위해 입국한 곳은 태평양의 아시아 쪽을 향해 있는 밴쿠버였다.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당시 우리나라는 미세먼지로 아주 홍역을 치르던 시기인지라, 그와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나 먼 맑고 신선한 공기였다. 6월 말임에도 날씨는 삽상하고 저녁에는 기분 좋게 서늘했다.


날씨 때문에 노년에는 캐나다에서 살고 싶다고 했더니, 한인민박집주인은 여기도 칠, 팔월에는 이보다는 덥고 특히 겨울에는 비가 자주 내려 을씨년스럽다면서, 우리 보고 제일 좋을 때 여행을 온 것이라고 한다. (요즈음 밴쿠버서 폭염으로 많은 이들이 사망하고 있다니 참 세상 일이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첫날 밴쿠버 숙소에 짐을 풀고 미세먼지라곤 눈 씻고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 없는 황홀한 저녁 날씨에 이끌려 인근 주택을 둘러봤다. 집집마다 정원들이 보기 좋았는데, 마침 자기 집 정원서 저녁 늦도록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 아줌마가 있어 일부러 얘기를 걸었다.


집 정원.jpg 밴쿠버 주택가의 정원


아줌마는 우리에게 정원뿐만 아니라 자기 집 텃밭과 온실도 구경시켜줬다. 그녀의 아버지가 옛날 캐나다 내륙 서스캐처원에서 농사를 짓다가, 말년에는 밴쿠버로 와 이 정원을 가꾸며 여생을 보냈다는데 자기는 몇 해 전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그리며 이 정원을 계속 매만지고 있다고 말해줬다.


아내의 로망은 내가 퇴임하면, 자기 고향 시골로 가서 집을 짓고 거기서 살고자 하는 것이다. 지금 그 계획을 차근차근 실현해가는 중인데, 지난 주말에도 아내의 명령을 따라 새로 짓는 집 마당 화단에서 어설픈 곡괭이질, 삽질을 하고 와 삭신이 다 부서져나갈 것 같다.


캐나다 사람들의 정원 가꾸기에 대한 관심은 대단하다. 그곳 대학 도서관을 둘렀을 때 다른 나라의 도서관과 달리 “urban gardening”이라는 도서코너가 있어 눈길을 끌었다. 캐나다에서는 어느 장소 어느 건물을 가든, 어김없이 펼쳐지는 정원의 경관에 눈이 다 휘둥그레질 정도였다.


일본식 정원.jpg 브리티시 콜롬비아 대학 동양학 연구소 옆, 캐나다+일본 식 정원


이러한 캐나다 사람들의 정원 가꾸기에 대한 열정은, 그들의 조상 나라인 영국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가령 영국은 런던 시내에 광대하게 펼쳐진 왕립 공원부터 시작해 서민 주택의 뜰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다양한 정원이 있다.


영국 작가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1813년)에서 주인공들의 아름다운 로맨스는 다 이 정원에서 이뤄진다. 주인공 엘리자베스가 미래 자기의 남편이 될지도 모르는 남자의 저택을 방문해 그곳의 정원을 바라보며 꿈에 젖는 모습이 새삼 떠올랐다.


캐나다 정원 문화의 절정은, 밴쿠버서 배를 타고 건너가 구경하는 빅토리아 섬의 부차트 가든이다. 우리 학교 조경과 선생님에게 여기를 갔었다고 하니, 부차트 가든은 영국의 ‘풍경 화식 정원’의 전형으로 본인도 학생들 데리고 꼭 견학을 가보고 싶은 곳이라고 말해줬다.


캐나다의 때 묻지 않은 원시적인 대자연도 경이로웠지만, 이러한 자연을 세련되게 담아내는 정원의 문화가 그에 못지않은 감동을 주었다. 오히려 원시적인 대자연만 있었다면 캐나다가 그만큼이나 세련된 나라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을 것 같다.


분수 꽃밭.jpg 부차트 가든의 다양한 형태의 정원들


2.

캐나다는 자연과 정원만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그곳에 사는 사람들도 행복해 보였다. 행복을 보는 관점이란 워낙 다양하고 주관적인 것인지라 함부로 말하기란 어렵다. 더욱이나 주마간산 격의 여행길에서.


부차트 가든 입구에서 여러 장의 기념사진을 찍고 있을 때였다. 어디선가 아주 쾌활하고 높은 음색의 여자들의 목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전동 휠체어를 탄 장애인 일행이었다.


마치 자신들의 장애를 뽐내듯이 여럿이 들 당당하게 모여 다니고 있었다. 어떤 이는 휠체어에다 캐나다 국기를 꽂고 다니기도 했다. 그때가 ‘캐나다 데이’ 즈음이기는 했다. 처음에는 ‘장애’가 뭐 저렇게 자랑스러워해야 할 일인가 참 유난도 떨고도 다닌다는 식으로 생각했다.


장애인.jpg 부차트 가든 입구의 휠체어 탄 여인들


부차트 가든은 22만 평방미터의 광대한 정원이다. 일부는 계곡과 폭포로 이뤄져 있어 일반인들도 구경하고 다니기가 쉽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그 정원 안에서 장애인들의 이동이 불가능한 곳은 없었다.


캐나다 일반 사람들의 왕성한 스포츠 활동도 인상적이었지만, 이와 못지않게 장애인들도 기를 피고 사는 것 같았다. 최근 캐나다 국적의 뇌성마비 장애가 있는 동화작가가 쓴 글을 읽은 적이 있다.(어맨다 래덕, <휠체어를 탄 소녀를 위한 동화는 없다>)


valley.jpg 부차트 가든의 계곡을 이용한 정원


그녀는, 장애인의 진정한 목표는 장애의 몸이 치유되는 것이 아니라, 그 몸으로 세상을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이해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세상에는 다른 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고, 이들이 공동체의 도움을 받아 승리하는 세상을 상상해야 한다고 한다.


물론 장애는 당연히 고통과 고난을 수반하지만, 장애가 있는 몸이 살아가는 인생도 그만의 특별한 기쁨이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알고 있어야 한다고 얘기한다. 장애인의 삶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다양하고 풍성하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방대하고 깊은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거대한 대자연, 그 자연을 세련되게 담아낸 정원 문화, 그리고 그 자연과 정원을 활기차게 돌아다니며 자신의 삶을 풍성하게 영위해가고 있는 장애인들 – 뭐 이러한 것들이 캐나다를 관광하면서 받은 인상적인 풍경들이었다.


연못 분수.jpg 연못과 분수를 담은 정원



빅토리아 남쪽의 Beacon Hill 공원.jpg 빅토리아 섬 남쪽의 Beacon Hill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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