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여행할 때 가장 놀라웠던 점들 중 하나가, 독일에 터키 이민자가 3백만 쯤 된다는 건 이미 들어서 알았지만, 막상 여행하다 보니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터키인들이 많이 살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는 점이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내가 관광한 곳이 주로 독일의 대도시였고, 숙소를 정할 때 이동하기 좋고 관광하기에 편리한 도심, 구시가지 중양 역 인근의 숙소를 고르다 보니 그런 곳에는 반드시 터키 사람들이 밀집해 살고 있기 때문이다.
터키 사람들이 많아서 불쾌했냐면, 그게 아니라 오히려 우리 같은 관광객들에겐 아주 좋았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첫째는 음식이 시원찮은 독일이라는 나라에서 식당 고르기가 여의치 않을 때, 여차 직하면 갈 수 있는 “되너 케밥” 집이 도처에 있었기 때문이다.
되너 케밥은, 터키인들이 창업한 체인 케밥 집으로, 비유가 적합한지 모르겠지만, 터키 식 맥도널드인 셈인데, 가격도 만만했고 더욱이 케밥이 이제는 우리에게도 더 이상 낯선 음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케밥 집뿐만 아니라 터키인들이 하는 식당은 늘 우리 입맛에 맞았다. 베를린의 터키인 거주 지역에서 우리네 횟집같이 생선들을 파는 식당이 있어 신기해서 가봤는데, 역시 터키인들이 하는 음식점으로 정어리 튀김에다 새우 냉채, 해물 밥을 시켜 먹을 수 있었다.
오랜만에 비린내 나는 생선과 함께 신선하고 푸짐한 터키 식 샐러드를 먹으니, 맨날 ‘슈바인 학센’ 같은 돼지 족발이나 수육 비슷한 음식을 먹고 여행해야 하는 독일에서 살 것 같았다.
둘째는 외국 여행을 할 경우, 여행지서 매끼를 죄 사 먹고 다니기 힘들어. 아침저녁으로 숙소에서 간단히 해 먹고 다니게도 되는데, 이때 역시 독일 대도시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터키 식료품점이 그런 걸 쇼핑하는 데는 아주 안성맞춤이었다.
터키인들 채소가게에는 무화과, 용과, 체리 등의 지중해식 과일, 그리고 싱싱한 채소들을 싼 가격으로 판매한다. 길거리에 과일과 채소들을 그득그득 쌓아놓고 장사치들은 터키 말로 요란스러운 호객 행위도 하는데 이는 우리와 아주 비슷한 분위기다.
아니 오히려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풍경이 사라져 가고 있는데 독일에선 터키인들 덕분에 이런 것이 결코 낯선 풍경이 아니게 되었다. 그런 가게에서 터키 식 요구르트 ‘아이란’을 사서 질 좋은 독일 빵과 함께 먹으면 아주 좋은 아침 식사가 됐다. 메소포타미아와 게르만 문명이 만나는 소박한 음식 콜라보라 할까?
뮌헨을 여행할 땐 역전 근처인 데다 숙박료가 괜찮아 ‘호텔 괴테’라는 곳에 머물렀다. 독일 문호 괴테의 이름을 딴 호텔이지만 그 이름이 무색하게도 호텔 로비에는 터키 국기와 터키 대통령 사진이 걸려 있고 독일 여행을 온 터키 단체 관광객들로 붐볐다.
이 호텔 조식은 독일과 터키 음식의 장점을 골고루 섞어놓아 독일 여행 중 가장 좋은 식사를 했던 기억이 난다. 저녁에는 호텔 인근을 나가봤더니, 한 식당에 무슬림 복장을 한 사람들이 눈에 띄어 당연히 그곳에서 저녁을 해결했다.
이스탄불에서 먹은 터키 음식의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그와 비슷한 분위기의 음식이었다. 손님들 중엔 독일인들도 별로 없고 거개가 터키 쪽 사람들인 듯싶은데, 하도 이들이 우리 먹는 걸 호기심 어리게 지켜보고 있어서 약간은 과장되게 맛있게 먹는 척을 해서 그들의 기분을 흐뭇하게 해 줬다.
넉살 좋고 생활력 강한 터키인들은 독일에서 역동적으로 살고 있었고, 또 독일인들 역시 이들과 대충 잘 어울려 사는 듯싶은 인상을 받았다. 물론 그건 피상적인 관찰일 수가 있다. 당장 프랑크푸르트를 여행할 때는 인종차별주의자들의 시위가 시내의 뢰머 광장에서 열리고 있었고 경찰들의 삼엄한 경계가 벌어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3백만이라는 터키 사람들이 사는 독일이라는 나라 치고는, 정작 그렇게 큰일이 들려오지는 않을 뿐만 아니라, 최근에도 중동의 시리아 등지에서의 난민들을 선도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나라가 독일이다.
한 사회의 통합을 저해하는 대규모의 인구 이동이 심각한 문제일 수는 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도 불변적이고 단일한 한국의 문화, 한국의 정체성을 고집하기에는 점차 상황이 복잡해져 가는 것 같다.
이제는 혈통이나 언어, 문화, 국적 등과 같은 공통적 기원과 소속을 고집하기보다는 출신의 차별 없이 외국인들에게도 우리 공동체에서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부여해야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조심스러운 생각을 해보게 된다.
먹는 이야기를 다시 하게 되어 유치하기는 하지만 터키 음식들을 즐기면서 다녔던 독일 여행은 신나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그것이 독일 문화의 정체성을 의심케 하는 것도 아니고, 하이브리드가 가져다주는 색다른 즐거움을 가져다주었다. 터키 없는 독일을 생각하면 너무 밋밋하고 뻣뻣하며 냉랭하기조차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