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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사 아르노 강의 석양

by 양문규

나의 고향은 저녁 해가 바다로 떨어지는 인천이다. 내가 다니던 모교에서 조금만 올라가면 서공원이 있다. 차이나타운과 함께 자유공원, 만국공원이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진 이 서공원을 가면 늘 낙조를 볼 수 있었지만, 그것이 아주 빼어난 모습의 낭만적인 풍경은 아니었다.


인천항만의 복잡한 시설과 선박들 때문이다. 그럼에도 날씨 좋은 날은 멀리 강화 섬이 보이고(누구는 전등사까지 보인다고도 했다), 그쪽으로 낙조가 번지면서, 가까운 항구로부터 하나둘씩 불빛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나름의 이국적인 맛과 모던한 느낌을 주었다. 그래서 나는 인천 항구를 늘 노을과 함께 추억한다.




문명과 어우러진 노을!? 이태리 피사는 피렌체에서 기차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다. 두 도시는 아르노 강으로 이어져 있지만, 피사는 이 강을 통해 이태리 반도 서쪽 바다와 만난다. 피사는, 중세 시기만 해도 이 서쪽 바다를 건너 스페인과 북아프리카와 활발하게 교역을 했던 강력한 해상 공화국이었다.


지금도 피사 역은 규모도 크고 모던한 건물인데, 북동의 밀라노 쪽과 남서의 로마 쪽을 연결하는 중요한 허브 역이다. 그러나 피사는 중세를 지나 르네상스 시기에 접어들었을 때 피렌체에게 정복당하면서 그 세력이 크게 약화된다. 이후 피렌체가 르네상스의 영광은 다 가져갔고, 지금도 피렌체에는 수많은 관광객들이 북적인다.


두모오와 세례당.jpg 피사의 두오모 성당과 좌측의 세례당


그러나 호젓한 중세 또는 르네상스를 맛보기에는 오히려 피사가 더 제 격이다. 피사도 물론 피렌체에 버금가는 도시였음을 짐작하게 하는 것은, 바로 그 유명한 종탑인 피사의 사탑 때문이다. 지금도 피사 안에서 관광객이 그나마 붐비는 곳이 이곳이다.


이 사탑과 함께 대성당의 단지를 이루는 본당과 세례당의 규모는 피렌체의 것들에 못지 않고 오히려 그 건물 앞의 융단처럼 깔린 넓고 푸른 벌판은 쾌적하기 이를 데 없다. 사탑의 종소리와 함께 광장을 가로질러 가는 수도사들의 행렬은, 관광객으로 도떼기시장 같이 변한 피렌체의 성당과는 비교도 안 되는 평화로운 모습이다.


두오모와 사탑.jpg 두오모 성당과 사탑


피사 역전에 숙소를 잡은 우리는 저녁 무렵 피사의 사탑에서 역까지 버스로 몇 정거장 안 되는 거리를 슬슬 걸어왔다. 오래된 도시 피사의 아르노 강물 위로 석양이 내려앉고, 골목 건물 벽들 사이로는 황혼의 흔적들이 쏟아진 포도주처럼 번져 있었다.


피사 도시 자체는 피렌체에 비하면 다소 초라하고 쇠락한 모습이다. 그러나 이런 쇠잔해진 문명을 노을 속에서 바라보면 더 여러 가지 감회가 든다. 그리스 산토리니 섬의 낙조야 말할 필요도 없는 절경이지만 그 낙조는 삶과는 거리를 둔 신화와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러나 피사의 문명에 지는 노을은 이 세상 아래 영원한 것은 역시 없다는 생각을 들게 하며 오히려 이것이 떠도는 여행객의 마음을 위로한다. 피었다 지어가는 문명! 그러나 지는 석양은 이를 언제나 따뜻이 위로하고 있어 오래된 도시는 쓸쓸하지만 푸근해진다.


석양.jpg 피사가 아닌 피렌체 언덕의 석양(위), 피사 아르노 강의 석양


괴테는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에서, 자연은 낭만적이고 감성적이고 자유로운 것으로 표상되는 데 반해, 문명은 인공적이고 오성적이고 규범적인 것으로 얘기한다. 그러면서 한 인간이 교양인으로 성장하기까지 자연과 예술이 얼마나 끝없는 협업을 해야 하는지를 강조한다.


우리는 소월 또는 영랑의 시에 나오는 접동새나 모란 등에 끌려서 전원과 자연이 가져다주는 소박한 감성을 사랑한다. 한편으론 정지용이나 김기림 시 속의 문명, 도시 등에서 나타나는 도시적 감수성을 사랑하기도 하고, 자연미보다도 오히려 더 월등해 보이는 인공미를 선호하기도 한다.


괴테 문학은, 바로 자연이 가져다주는 감성, 분방함, 그리고 귀족과 시민계급이 이뤄놓은 이성과 문명 사이를 질풍노도와 같이 방황하면서 피어난다. 마치 피사 아르노 강에서 노을이 문명과 어우러져 찬연히 빛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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