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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타에서 만난 주문진 등대

by 양문규

20년 전 나는 미국 유타 주에서 안식년을 보냈다. 좀 더 자세히 말하면 유타의 주도인 솔트레이크시티에서 한 40마일 정도 떨어진 프로보에 소재한 브리검영 대학 한국어과의 방문학자로 가있었다. 유타 주는 모르몬교도의 성지로, 브리검영 대학은 이 교단에서 설립한 학교다.


모르몬 교인들이 하는 봉사활동 중에는 해외로 나가 2년 간 선교 봉사를 하고 오는 일이 있다. 브리검영 대학에는 이 봉사를 갔다 온 학생들이 많고, 개중에는 한국으로 다녀온 학생도 꽤 됐다. 캠퍼스에서 이들과 우연히 마주치면 이들은 날보고 영락없이 “한국에서 오신 분 맞죠?”하고 묻는데 그 태도가 마치 타관에 살던 이가 고향 아저씨를 만나 반가움에 겨워하는 모양이다.


모르몬 성당.jpeg 20년 전 솔트레이크 시티의 모르몬 대성전에서, 나에게 저런 젊은 시절도 있었다니...


언젠가는 슈퍼마켓에서 우리 부부가 한국말로 무심코 떠들면서 쇼핑을 하고 있는데, 한 청년이 우리한테 오더니 역시 자신이 한국서 선교 봉사를 했다면서, 우리말로 반갑게 인사를 했다. 그러면서 우리와 헤어지기가 자못 아쉽다는 듯이, 한국서 먹었던 김치가 몹시 먹고 싶은데 혹시 여기서 김치를 어디서 구해 먹을 수 있는지를 물었다.


당시 프로보는 인구 10만의 작은 도시라 한국 가게도 없고, 우리는 중국인 가게서 배추를 사서 김치를 담가먹던 차였다. 오지랖 넓은 아내는 그러면 우리 집으로 김치를 먹으러 오면 어떻겠냐고 권했는데, 그 청년은 이게 웬 떡이냐는 듯이 흔쾌히 응하고 방문 날짜를 약속했다.


그리곤 다시 연락이 왔는데 자기 친구 중 하나가 역시 한국 강릉서 선교 봉사를 하다 왔는데 혹시 같이 방문해도 되겠냐고 물어왔다. 내가 강릉의 대학서 왔다니까 아마 둘이서 그런 얘기들이 오고 갔나 보다.


약속한 날 저녁에 두 사람이 우리 집을 찾았다. 얘기를 들어보니 한 학생은 서울 강남 지역에서, 또 한 학생은 말했다시피 강릉에서 살았었다. 강남에서 선교활동을 한 학생은 강남의 샐러리맨 시늉을 낸다면서, 갑자기 일어서더니 서류봉투를 옆에 끼고 팔을 휘두르면서 아주 바쁜 걸음으로 앞만 바라보며 걷는 흉내를 냈다.


강릉서 산 학생은 우리를 보여주려고 한국서 찍은 사진들을 담은 앨범을 일부러 가져왔다. 그 친구는 강릉에서도 주문진이 자기의 선교활동 지역이었다고 한다. 그가 보여준 사진들 중 기억나는 것 중 하나가 아마 그가 기숙한 집이었던지 싶은데, 부뚜막이 있는 부엌, 그리고 양변기가 아닌 재래식 변기를 찍은 사진이었다.


나는 그 친구에게 그곳에 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데가 어디인지를 물어봤다. 그는 내가 예측했던 바와는 달리, 설악산도 아니고 경포 해수욕장도 아닌 주문진 앞바다의 등대라고 대답하며 그곳서 찍은 여러 장의 사진을 보여줬다.


아마도 유타가 내륙 지방이다 보니 등대를 볼 수 있던 주문진 바닷가가 그에게는 낯설고 신기했는지도 모른다. 그 친구는 주문진 등대가 좋았을 뿐 아니라 지금도 한국서 다시 가보고 싶은 가장 그리운 곳이라 한다.


우리가 강릉 살 때만 해도 주문진은, 그곳 사람들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볼품없는 어촌인 데다, 모 수산식품 공장의 생선 폐기물에서 나는 암모니아 냄새 때문에 그곳을 지날 때마다 누가 방귀를 몰래 뀐 것으로 서로들 오해를 하곤 했던 그다지 유쾌한 기억의 장소가 아니다.


지금은 주문진도 많이 변해 그 등대가 무슨 드라마의 촬영지로 관광객들에게 각광을 받고 있는 모양이다. 예전엔 여름철 관광객이 다 가버리고 난 후 쓸쓸한 가을 바다가 됐을 때 주문진 등대를 찾으면, 등대를 떠나는 배들이 우리 인생살이 같이도 보였다. 불빛을 보고 낯선 항구에 우연히 들어섰던 배들이 잠시 쉬었다가는 다시 먼 어둠의 바다로 떠나는 모습 같이 말이다.


나도 그 청년과 비슷하게, 지금도 유타를 생각하면 가장 가보고 싶고 그리운 곳은, 유타의 유명한 캐니언도 아니고 그 인근의 그랜드캐니언이나 옐로스톤이 아니라, 저녁이면 초등학생이었던 아들애와 럭비공을 주고받으며 놀던 우리 집 인근의 한적한 ‘노스파크’ 공원이다. 그리고 6월 그 공원의 이름 모를 나무에서 피어났던 꽃향기가 아주 그립다.


Y mount.jpg 유타 프로보를 지나가는 로키 산맥. 산에는 브리검영 대학의 약자인 BYU의 ‘Y’가 새겨져 있다.


추억은 컴퓨터의 메모리와 달리 단순히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하나로 연결하여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확보케 하는 것이라 한다. 입양아들의 애달픈 뿌리 찾기는 이러한 추억의 부재에 연유하는 것일 수도 있다.


끊임없이 그리고 덧없이 흘러가버리는 물리적이고 자연적인 시간들에서 해방돼 우리를 구원하고 남들이 갖지 않는, 그 무엇에도 의존하지 않는 나만의 독자적 행복감, 그리고 그 근거가 무엇인지 나 자신도 알 수 없는 그런 행복감은, 이러한 자신만의 고유한 추억들에서 건져지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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