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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문규 Sep 05. 2021

스코틀랜드 기행과 개화기 창가

1. 

스코틀랜드는 영국에서도 저 멀리 북쪽 지방에 위치하지만 우리에게는 여러모로 가깝고 친근하게 느껴진다. 술 좋아하는 이들은 스카치위스키가 생각날 거고, 어떤 이들은 전통적 격자무늬의 킬트 의상을 하고 백파이프를 부는 사람을 떠올릴 것이다. 영화를 좋아하는 이들은 이 지역 하일랜드의 광활한 자연을 무대로 한 <브레이브 하트>도 생각날 것이다. 


내 경우에는, 초등학교 음악교과서에 강소천 작사 <귀뚜라미가 또르르 우는 달밤에>라는 번안 동요가 실려 있었는데 이 곡에 스코틀랜드 민요라는 설명이 부기돼 있어서 어린 시절부터 스코틀랜드라는 이름에 익숙해있었다. 그뿐인가, 졸업식 때 부르던 <올드 랭 사인>, 교회 장례식 때 자주 부르는 찬송가 <하늘 가는 밝은 길이>라는 <애니로리> 역시 스코틀랜드 민요다. 


스코틀랜드의 하일랜드(위), 에든버러 민속의상 가게의 마네킹

2.

스코틀랜드의 글래스고를 여행할 때였다. 글래스고 대학을 구경하고 나오니 그 앞의 넓고 푸른 벌판에는 축구 선수 기성용이 속했던 스코틀랜드 셀틱 구단의 유니폼은 입은 소년들이 공들을 차고 있었다. 그리고 그 벌판 건너로 붉은 벽돌로 된 스페인 바로크 풍의 켈빈글로브라는 미술관 겸 박물관이 웅장하게 서있었다.


켈빈은 글래스고 대학의 자연과학대 교수로 절대온도 K의 개념을 고안해낸 바로 그 과학자 켈빈 경이다. 입장료가 무료인 이곳 미술관에는 뜻밖에도 프랑스 인상파 화가의 작품들이 상당수 소장돼있어 눈 호강을 실컷 했다. 그리고 박물관에서는 공룡 특별전이 열리고 있어 가족 단위로 온 관람객들로 실내가 꽤 붐볐다. 


캘빈글로브 미술관과 박물관



점심때가 지나 오후 1시가 되자 콘서트 장같이 마련된 박물관 홀에 사람들이 여기저기 앉아 있고, 발코니로 된 홀 2층에서 파이프오르간의 연주가 시작됐다. 나중에 알고 보니 매일 박물관에서 시간을 정해 열리는 연주회였다.


연주곡들은 대부분 스코틀랜드 전통음악이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마지막 곡으로는 <올드 랭 사인>이 연주됐다. <올드 랭 사인>을 스코틀랜드 본 고장에서 그것도 파이프오르간의 웅장한 연주로 들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박물관 홀의 파이프 오르간 연주(좌),  연주를 듣는 청중들


3.

우리에게 스코틀랜드 민요가 널리 알려지게 된 데에는 다 사연이 있다. 1894년 갑오개혁 이후 우리 사회에서는 새로운 계몽운동 또는 문화운동이 시작된다. 개화기 작가들은, 문명개화 사상을 전파하고 애국사상을 고취하기에, 과거 조선 시대로부터 내려왔던 시조나 가사 형식은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새로운 형식이 느닷없이 탄생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하여 개화기 작가들은 이 당시 서양 선교사들이 가지고 들어온 찬송가의 형식을 빌리게 된다. 찬송가는 4·4조의 은율로 대개 4절과 후렴구로 돼있어 반복하는 형식인데, 이 형식을 빌려 소위 ‘창가’라는 것을 만든다.  


찬송가는 ‘노가바’ 즉 노래 가사 바꿔 부르기에 딱 좋은 형식이니, 이 찬송가의 형식을 빌리되, 개화기 작가들은 찬송가 가사를 대신해서 이를 새로운 문명개화와 애국사상의 내용으로 바꿔치기 해 넣은 것이다.  


스코틀랜드는 장로교가 시작된 곳으로 영국 내에서도 개신교가 융성했던 지역이다. 하여 찬송가 작사자나 작곡자는 스코틀랜드 민요를 찬송가 곡조로 많이 빌려왔으리라 짐작된다. 원래는 찬송가 <천부여 의지 없어서>에 붙여진 곡이었던 <올드 랭 사인>이 우리 <애국가>의 곡으로 변환된 것도 다 이와 같은 사정에 연유한다.  


찬송가의 반복되고 후렴구가 따르는 구조는 애국계몽사상을 대중에게 전달코자 하는 개화기 작가들의 의도에 적합했을 것이다. 어느 신학대 교수님 왈, 찬송가는 같은 곡조, 호흡 또는 리듬으로 대개 네 번씩 이상 반복해서 부르기에, 찬송가를 부르고 나면 성령 충만할 뿐 아니라 심혈관, 호흡기관, 소화기관에도 아주 좋은 영향을 준다고 믿거나 말거나 한 얘기를 해줬다.


그런데 개화기 창가는 궁극적으로 외국에서 빌려온 형식이기에 그것이 점차 복잡하고 심원 해지는 현대적 생각과 감정을 담기에는 역부족이었고 개화기 시기 잠시 유행하다 사라진다. 그럼에도 식민지 시대 애국가나 독립군가 등에 붙여 불리어진 <올드 랭 사인> 등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뭉클하고 비장해지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참고로 찬송가를 본뜬 4·4조의 창가가 점차적으로 사라지는 대신, 일본에서 들어온 7·5조의 창가는 이후로 우리에게 지속적인 영향력을 발휘한다. 이 형식은 동요를 비롯하여 교가 등 행사 노래 가사로  아주 많이 쓰이게 된다. 


“아빠하고 나하고/만든 꽃밭에/채송화도 봉숭아도/한창입니다…”, “푸른 하늘 은하수/하얀 쪽배엔/계수나무 한 나무/토끼 한 마리…”, “나실 제 괴로움/다 잊으시고/기를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스승의 은혜는/하늘 같아서/우러러볼수록/높아만 지네…” 등등, 그 예는 헤아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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