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번 글에서 나혜석과 함께 스페인 기행을 했었다. 내가 보기엔 유럽의 여러 나라 중 스페인이 나혜석에게는 가장 강렬한 인상을 준 나라였던 것 같다. 그녀의 유럽 다른 나라의 여행 이야기는 다소 건조하고 밋밋하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의 여행들도 주로 화가들 중심으로 이뤄지기는 한다. 예컨대 네덜란드에 가서는 헤이그 미술관을 둘러 렘브란트의 대작 <해부 학교(털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에 대해 간단한 얘기를 하고 지나간다.
스위스도 며칠간 여행을 한 것 같은데, 인터라켄에서 조선의 마지막 왕인 영친왕 부부를 만나기도 한다. 영친왕은 그곳 제네바에서 개최된 군축회의에 일본 황실을 대신해 참석했던 것으로 보인다. 영친왕은 당시 유럽 여러 나라를 순방하는데, 체코의 한국학자가 그의 프라하 방문을 자세히 살펴본 글도 있다.
화가였던 나혜석은 스페인만 한 감흥을 느꼈던 건 같지는 않지만, 역시 미술의 나라 이태리 여행에서 상대적으로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이태리를 다 다닌 것은 아니고 밀라노, 베네치아, 피렌체 등 이태리 북부의 세 도시를 여행하는데 우리가 익히 예상할 수 있는 바, 베네치아에서 가장 많은 기록을 남기고 있다.
2.
나는 밀라노를 떠나 베네치아로 가는 기차가 밤차라서 바깥 풍경을 못 보고 갔는데, 나혜석은 오전 기차라 네, 다섯 시간 걸려서 가는 도중 롬바르디아 평야의 너른 밀밭과 목장을 실컷 구경하고 간 것 같다.
기차가 막판에 갯벌 섬 위에 세워진 베네치아로 진입하게 될 때는, 육지에서 그곳을 연결하는 다리를 지나서 가게 되는데, 나혜석은 호수를 끼고 한참 돌다가 1시간이나 물 가운데로 진행해 가는 것이 아주 이상스러웠다고 얘기한다.
그때만 해도 베네치아의 분위기가 지금과는 사뭇 달랐는지, 베네치아에 도착해서 검게 흐린 운하의 도랑 위에 옻칠한 관과 같은 곤돌라에 검은 숄을 둘러 발등까지 주렁주렁 덮은 이곳 부녀들의 풍속을 보면서 베네치아는 나혜석 자신이 상상했던 ‘황금 베네치아’가 아니라, ‘흑색 베네치아’였다는 첫인상을 토로한다.
나혜석은 베네치아가 풍류로는 좋으나 풀이며 흙이며 정원은 도무지 볼 수가 없고 좁은 골목으로 이뤄진 시가지는 종일 햇빛을 보지 못하는 곳이 많아 며칠 지내는 여행객에게는 취미로 볼거리가 많겠지만 거기서 살기에는 너무 불안한 듯하다고 했다.
나도 그에는 동감이다. 내가 한때 살았던 인천의 고향 동네는 엣 염전이 있던 자리였는데 서해 만조 때 큰 비가 내리면 마당의 장독이 떠내려가는 등 수해를 밥 먹듯이 입었다. 내가 베네치아에 있을 당시는 하필 우기인 겨울이었는지라 수해가 난 동네에 와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3.
나혜석은 베네치아의 화가로 틴토레토, 벨리니 등을 두루 얘기하지만 역시 티치아노(티티안)를 주목한다. 베네치아 회화는 피렌체 회화보다 다소 뒤졌지만 나름의 특장을 발휘해 르네상스 미술 중에 독특한 지위를 점령하는데 이를 대표하는 이가 티치아노다.
티치아노는 100세까지 장수하면서 노쇠를 모르고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그의 명성이 베네치아에서 얼마나 높았냐면, 그가 페스트로 죽었을 때 모든 베네치아의 시민이 애도의 뜻을 표했을 뿐 아니라, 페스트로 죽은 사람은 절대로 성당에 매장해서는 안 된다는 당시의 엄격한 관례를 깨고 최대한의 모든 예를 갖춰 그를 성당에 안장한다.
베네치아와 경쟁 도시인 피렌체 회화의 특징이 선이라면, 베네치아는 색채를 중요시한다. 티치아노가 바로 그러한 특징을 잘 보여준다. 베네치아 파 최후의 화가였던 틴토레토는 자신의 화실의 벽에 ‘미켈란젤로의 윤곽, 티치아노의 색채’라는 표어를 써 붙이고 공부했다고 한다.
티치아노는 많은 여성을 그린 화가인데, 특히 풍부히 원숙한 중년 여성을 많이 그렸다. 그래서 나혜석은 티치아노가 그린 여성의 육체미에는 ‘용렬(勇烈)한 건강’이 있다고 본다. 옷 사이로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여인들의 하얀 속살, 허벅지 등이 꽤 자극적이다. 티치아노의 감각적 색채, 호색적인 그림들은 당시 상업도시로 융성했던 베네치아 도시의 분위기를 반영한다.
나는 베네치아에서는 정작 그의 그림을 보지 못했고, 대신 영국의 유명 미술관들에서 볼 수 있었다. 그만큼 티치아노의 그림은 베네치아 밖에서도 인기다.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서 본 <바쿠스와 아리아드네>에 그려진 하늘의 색채는 베네치아 앞 아드리아 바다의 색깔을 연상시킨다.
그런데 미술사가들 얘기로는 티치아노가 자신의 그림에서 그런 아름다운 하늘색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은, 그러한 색깔의 비싼 안료를 근동 지방 가령 아프가니스탄 등지로부터 수입할 수 있는 번창한 무역항 베네치아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4.
나혜석 부부는 베네치아의 레스토랑에서는 그 지역의 명산인 마카로니와 생선으로 저녁을 먹는 단란한 시간도 갖는다. “질기면서도 맛이 붙는” 마카로니는 처음 먹어보는 맛도 있거니와 베네치아의 운하에서 잡은 생선 맛은 생전에 잊을 것 같지 못하다고 한다.
나혜석은 시가지 전체가 미술관 같았다는 피렌체에 가서는, 미켈란젤로, 조토, 보티첼리 등이 밟아갔던 땅을 자신이 밟았겠지 생각하면서 부지불각 중 이상한 환희를 느꼈다고 했다. 나혜석은 시대를 앞서 걷고, 당대 조선인들로서는 가보지 못한 새로운 세상을 체험하고 다녔다.
그녀의 소설 <경희>(1918)에서 유학생 여주인공 ‘경희’가 방학이 끝나고 공부를 계속하기 위해 다시 일본으로 간다고 하자, 경희의 사부인 되는 이가 “여편네는 동서남북도 몰라야 복이 많은” 것이라고 타이르며 마땅치 않아한다. 후일 그녀에게서 있을 불행을 알기라도 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