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빈의 중앙 공동묘지를 가보면 음악가 구역이 따로 있는데, 여기에는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를 비롯해 요한 슈트라우스, 브람스 등 내로라하는 음악가들의 묘가 모여 있어 과연 빈은 ‘음악의 도시’로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러한 빈이 근대 이후에는 ‘미술의 도시’로 떠오르게 되는데, 그렇게 되는 배경에는 오스트리아의 대표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가 있다. 남녀가 키스하는 모습을 그린 황금빛 색채의 <키스>라는 그림은, 한때 우리나라에서도 문방구점이나 아트박스 같은 곳을 가면 필통, 지갑, 머그잔 등에 프린트로 인쇄된 것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빈 거리에도 모차르트의 얼굴 그림만큼이나 이 클림트의 그림들이 곳곳서 눈에 띈다. 빈 안에서도 <키스> 등 그의 작품들이 한데 모여 있는 곳이 벨베데레 궁이라는 미술사 박물관이다. 오스만 터키를 격퇴한 오이겐 왕자의 여름 궁전이었던 이 궁은 600m 길이의 정원을 가운데 두고 두 채의 궁전으로 나눠 있는데, 이 두 건물이 현재는 다 갤러리로 사용되고 있다.
궁 안의 정원을 구경하는 것은 공짜지만, 갤러리를 입장하기 위해서는 입장권을 따로 구입해야 한다. 관람시간도 얼마 남지 않은 데다 입장료가 생각보다 비싸 한참을 망설이다가, 솔직히 망설이는 시간에 봤으면 되는데, 결국 관람을 포기했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 돈을 아꼈는지… 그래도 크게 아쉽지 않은 건, 클림트는 부자 미술관이 많은 나라인 미국의 갤러리들도 아주 선호하는 작가인 듯, 이후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과 모마(현대미술관)를 갔을 때 그의 그림을 많이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2.
나는 학생들에게 문예사조를 강의하면서 유미주의, 또는 세기말의 퇴폐주의를 설명해야 할 때, 클림트가 문학가는 아니지만 그를 자주 끌고 들어온다. 유미주의는 원래 19세기 말 프랑스와 영국에서 유행한 문예사조다.
영국의 오스카 와일드, 프랑스의 보들레르가 그 대표적인 문인이다. 보들레르는 “예술을 위한 예술”(art for art's sake)이라는 구호를 만들어내기도 하는데, 그것은 예술을 위해서 현실 생활 전부를 바쳐야 한다는 예술지상주의를 가리킨다.
이 유미주의는 일반적으로 퇴폐의 양상으로 흐른다. 예술이 현실과 관계가 없고 그로부터 멀어질수록 오히려 더 예술다워진다는 생각은, 작가들로 하여금 기발한 인공미, 기괴스러운 아름다움, 인간의 윤리, 풍습에 위배되는 난잡한 생활방식과 성윤리를 추구하게 한다.
유미주의의 이러한 퇴폐적 경향은 19세기의 마지막 20년 동안에 절정에 달했는데, 이 시기를 특별히 가리켜 ‘세기말’이라 한다. 프랑스에서 시작된 유미주의 또는 상징주의의 물결은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더욱 퇴폐적으로 흘러 세기말 분위기를 돋우는데, ‘빈의 카사노바’로도 불리는 클림트의 그림들이 이를 잘 보여준다.
예컨대 그의 <키스>는 황금꽃 밭에서 여자가 남자 품에 안겨 있는 그림이다. <명화의 수수께끼>의 저자 긴 시로의 흥미로운 해석에 따르면, 이 그림의 처녀는 사실은 흡혈귀의 습격을 받고 황홀해하는 것이다. 흡혈귀로 다시 태어나기 위한 처녀 상실의 순간을 그린 것인데, 순결을 잃는 그 순간에 처녀는 죽어서 새로운 여자로 다시 태어나면서, 자신의 본능을 유감없이 드러내 보여준다.
세기말의 퇴폐주의는 19세기에 심화돼가는 유럽의 산업화에 위축되고 절망한 데서 생긴 예술가들의 일종의 저항운동이었다. 병적인 측면은 있지만 이러한 저항은 어느 시대에나 나타나는데 가령 전후 미국 자본주의 사회에 적대의식을 가졌던 1960년대 히피 운동도 이러한 반항 운동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3.
우리 문단에도 이러한 유미주의를 처음으로 들고 나온 이가 바로 김동인이다. 그의 <광염 소나타>(1930)의 천재 음악가 백성수는 가난 속에서 사소한 범죄를 저질러 옥살이를 갔다 온다. 그러나 그 때문에 어머니를 잃게 되자 자기를 감옥소로 가게 한 자의 집에 불을 지른다.
백성수는, 마치 불타는 로마를 바라보며 광희(狂喜)의 시를 썼다는 황제 네로처럼 범죄의 전율 속에서 ‘광염 소나타’를 작곡한다. 그러나 실제 네로는 로마가 불타고 있을 때 인근의 휴양도시에 있었고, 민중들에게 미운털이 박혀 그런 소문이 난 것이다.
어쨌든 음악비평가 케이(K)는 백성수의 행위를, “천 년에 한 번, 만 년에 한 번 날지 못 날지 모르는 큰 천재를, 몇 개의 변변치 않은 범죄를 구실로 이 세상에서 없이 하여 버린다 하는 것은 더 큰 죄악이 아닐까요?”라며 예술을 구실로 옹호한다.
<광화사>(1935)의 화가 솔거는 자신의 추한 용모 때문에, 중매로 결혼한 두 여인에게 소박을 당하자 산에 숨어 살며 그림만 그린다. 그는 이상적인 미녀를 그리고자 온갖 노력을 하던 중 떠돌이 눈먼 처녀를 모델로 발견한다.
그녀의 초상을 그리던 중 눈동자만을 남긴 완성 직전의 순간에, 처녀가 갖게 된 세속적 욕망에 분노한 화가는 처녀와 실랑이를 벌이던 중 그녀를 죽이기에 이른다. 그렇지만 처녀가 쓰러지면서 튄 먹물이 그림 속 처녀의 눈동자를 완성시킨다. 나는 이런 자못 비극적(?) 줄거리를 얘기해주는데 학생들은 이 순간 모두 ‘와’ 하고 웃는다.
김동인은, 19세기 후반 유럽의 난숙한 자본주의의 현실에 반항하여 나온 유미주의를, 아직도 봉건적 유제가 가득한 식민지 상황인 우리 현실에다 겉멋 삼아 옮겨 심다 보니, 그 결과는 아주 설익은 소설이었다.
중등학교 문학 참고서를 보면 김동인은 유미주의뿐만 아니라, 사실주의, 자연주의, 낭만주의, 심지어 민족주의 등 다양한 경향을 보여주는 작가라고 설명돼있다. 한 작가 안에 이런 다양한 문예사조가 공존하다는 것은, 이 중 어느 하나도 진짜가 없다는 얘기다. 실제 김동인은 문학적 명성에 비해 이를 입증해줄 만한 작품이 별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