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유럽에서 리얼리즘(사실주의) 소설은 18세기에 시작해서 19세기에 성숙된다고 본다. 우리의 경우 사실주의 소설은 1920년대 등장하기 시작하는데, 한국문학 연구자들은 이 시기 사실주의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염상섭의 <만세전>(1923)을 꼽는다. 나 역시 이에 동의하지만, 학생들에게는 리얼리즘의 특징을 아주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예로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1924)을 자주 든다.
<운수 좋은 날>은 “새침하게 흐린 품이 눈이 올듯하더니 눈은 아니 오고 얼다가 만 비가 추적추적 나리는 날이었다.”라고 이야기가 시작되면서, 제목과 달리 불길한 일이 전개될 것 같은 예감을 준다. 인력거군 김첨지는 근 열흘 동안 “재수가 옴 붙어서 돈 구경도 못했는데” 이 날은 오래간만에도 닥친 운수 좋은 날이었다.
돈을 벌어 병든 아내를 위해 설렁탕 한 그릇도 사고 자신도 모주 한 잔 걸치고선 건주정을 부리며 선술집을 나오는데, 궂은비는 계속 “추적추적” 내리고 있어 불길한 예감은 점점 더해간다.
김첨지는 병석에 누운 아내에게 약 한 첩 제대로 써본 일이 없다. 써보려면 써볼 수 없었던 것도 아니건만, “병이란 놈에게 약을 주어 보내면 재미를 붙여서 자꾸 온다.”라는 자신의 신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이처럼 당대 민중의 가난한 삶의 현실을 실감 나게 그리고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운수 좋은 날>을 리얼리즘 소설이라고 부르는 것은 아니다.
소설 마지막에 김첨지는, ‘운수 좋은 날’이 실은 그의 아내가 죽는 가장 ‘비통한 날’이었음을 알게 된다. 가난한 노동자들에게는 결코 운수 좋은 날이란 있을 수 없다는 점을 보여주면서, 이러한 김첨지의 불행은 과연 어디서 비롯되는 것인지를 독자에게 묻는다.
김첨지의 가난은 그의 게으름이나 팔자와 같은 개인적 문제가 아니고, 사회적 구조의 문제임을 깨닫게 한다. <운수 좋은 날>은 식민지 사회에서 고통받는 민중의 “사회적 의미”를 명징하게 인식하기 시작한다는 점에서 리얼리즘 소설이다. 소설은 아니지만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 역시 이를 잘 보여준다.
2.
첫 번째 파리 여행 때는 루브르 박물관을 갔다 오면서, 바로 센 강 건너 맞은편에 있는 오르세 미술관을 못 간 게 못내 아쉬웠는데, 두 번째 파리 여행 때는 아내와 함께 결국 그곳을 가게 돼 그 즐거움이 배가됐다.
오르세 미술관은 19세기 인상파 명화들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갖고 있는 프랑스의 국립미술관이다. 화집이나 사진으로만 보던 인상파 화가의 수많은 그림들을 코앞에서 보게 되는 그 신기한 즐거움이란!
인상파 화가들의 전시실은 주로 미술관 2층과 5층에 있어 그곳이 오르세 관람의 하이라이트이기는 하지만, 0층에는 사실주의 화가 쿠르베와 밀레의 전시실 등이 있어 그곳 역시 발걸음을 쉽게 옮기지 못하게 붙든다.
밀레의 유명한 <만종>과 <이삭 줍는 여인>, <건초더미에서의 휴식> 등의 그림도 물론 거기 있다. 나는 전시실에서 밀레의 그림을 보면서 리얼리즘과 관련해 학생들에게 해줬던 밀레의 이야기를 아내에게도 전해줄 기회를 가졌다.
흔히 밀레는 농민화가로 불린다. 그는 1849년 파리 남쪽의 농촌 바르비종에 화실을 차려 정착한 이래 주로 농민들을 소재로 그림을 그려, 그의 그림은 평화롭고 목가적인 내용을 화폭에 담았으리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만종> 같은 그림은 어릴 적 이발소에 가면 단골 그림으로 걸려 있었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이 그림이 성실하고 경건하게 살아가는 농민 부부의 삶을 예찬하는 기독교 성화와 같은 그림으로 인식돼왔다.
그러나 밀레는 한가한 전원 속의 평화로운 농민을 그린 것이 아니라. 주로 힘겨운 농사일을 하며 살아가는 농민들의 거친 일상을 그리고 있다. 그의 그림들은 당시 쿠르베 등에서 나타난 사실주의 그림과 비슷한 경향을 보여주는데, 그중에서도 <이삭 줍는 여인>은 리얼리즘이란 어떤 것인지를 어떤 면에서는 쿠르베보다 더 확실하게 보여준다.
우리는 이 그림에서 허리를 구부려 이삭을 줍는 여인들의 고단한 모습에만 눈길이 가있기 십상이다. 그런데 이 여인들 뒤 멀리로 가을걷이한 단을 높이 쌓아 올린 지주의 수레들이 서있는 장면을 발견하게 된다.
농민들이 거둔 풍성한 수확물들은 다 지주에게로 가고, 아낙네들은 추수가 끝난 밭고랑에서 떨어진 이삭을 힘겹게 줍고 있다. 밀레의 그림은 가난을 사실적으로 그리는데 그치지 않고 그 가난의 사회적 의미를 묻는 리얼리즘 예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