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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문규 Nov 28. 2021

비엔나의 슈니첼과 나혜석의 먹방(?) 이야기

1.

비엔나 여행을 패키지로 갔을 때, 가이드가 현지 음식을 먹어보자고 하며 데리고 간 곳이 슈니첼(Schnitzel) 식당이었다. 19세기 일본에서 발명됐다는 ‘돈가스’는 프랑스의 커틀릿(영어권의 포크커틀릿)에서 온 것이라는데 이 커틀릿은 바로 이 비엔나의 슈니첼에 뿌리를 두었다고 한다.  


그런데 메이지 시대 유럽에서 일본으로 돈가스가 전해졌다는 이야기는 어쩌면 과장된 이야기일 수도 있다는 말도 있다. 빵가루를 입혀 튀긴 고기 요리는 이미 일본에 있었고 일본인들은 유럽의 요리법과는 상관없이 돼지고기를 굽고 튀기는 조리법을 예전부터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슈니첼을 먹었던 식당


비엔나에서 먹어본 슈니첼은 현지 음식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 것이 우리가 먹는 소위 ‘비프가스’(비프커틀릿)나 돈가스와 거의 비슷한 음식이기 때문이다. 맛은 참 별로였는데, 식당이 시원치 않아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두 번째 아내와 같이 비엔나를 여행하게 됐을 때 또 다른 슈니첼 식당을 찾아봤다. 


120년 됐다는 식당이었는데, 식당 분위기는 나름 괜찮았지만 맛은 처음 먹었을 때와 비교해 크게 다를 바 없었다. 그저 우적우적 먹다시피 하고 나왔는데, 애초 독일이나 오스트리아에서 맛있는 대중음식을 기대하는 게 무리일 듯싶었다.  


사진 우측 상단이 슈니첼 요리다.(좌),  3월, 비 오는 비엔나 거리


내가 대학 다니던 시절인 70년대에는 경양식 집의 주요 메뉴가 슈니첼과 흡사한 비프가스와 돈가스였다. 당시에는 이들이 양식이랍시고 상대적으로 음식 값이 비싸서 데이트할 때 여자에게만 사주고, 나는 그보다 싼 오므라이스나 하이라이스를 시켜 먹곤 했었다. 


조금 세월이 좋아지면서 경양식 집에서 마주앙 또는 노블와인이라는 국산 포도주와 함께 소시지를 채로 썰어놓은 소위 멕시칸 샐러드라는 걸 사 먹기도 했지만, 한번 그걸 먹고 나면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을 다 날려 한참을 쫄쫄 굶고 살아야 했다.   


여하간 돈가스, 비프가스, 오므라이스 등은 내가 대학 다니던 시절에는 축제나 미팅 때 여자 파트너 하고나 먹는 대표적인 서양 음식이었다. 나혜석이 쓴 1910년대 소설에 이들 서양 음식이 주인공 격으로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한 이야깃거리로 등장한다.


 2.

나혜석의 <회생한 손녀에게>(1918)라는 아주 짧은 단편소설이 있다. 무대는 일본 동경의 조선인 여학생 기숙사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두 여학생 인물은 선후배 사이인 것 같은데, 유학생활에 지친 후배 소녀가 병석에 눕게 되자, 소설 속 화자(내레이터)인 선배가 그 소녀를 정성스레 간병을 해주는 이야기다. 


병석의 후배 소녀는 선배인 화자에게서 마치 손녀가 할머니로부터의 따듯한 보살핌을 받았다고 생각을 했나 보다. 화자는 소녀에게 “오냐 네가 주는 할머니의 명칭을 나는 사절 아니하고 받으련다. 그리고 어머니 없고 할머니와 떨어져 있는 외로운 너를 내 손녀로 귀애하고 아껴주려 한다.”라며 보살펴준다. 


그런데 소녀가 병에서 회복(회생)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화자가 담가준 우리의 음식인 깍두기를 먹고 나서다. 소녀는 “깍두기와 고추장을 먹고서야 정신이 반짝 나며 입맛을 부치게” 된다. 깍두기의 “짭짤한 말국(국물)”이 뱃속에 가득 차야 소화도 잘 된다면서 결국 병상에 있던 소녀는  “깍두기로 영생(永生)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일본 기숙사의 조선 여학생들은 깍두기 냄새 때문에 이를 담가 먹기가 쉽지 않았던 것 같다. 화자는 “구진(만든 지 오래돼 맛이 변한) 새우젓에 맵디매운 고춧가루를 버무려 손으로 주물럭주물럭해서” 담고, “고린내가 풀풀 나고 보기만 해도 눈이 빠질 만큼 그렇게 빨간 깍두기”가 일본인 등의 외국인에게는 낯선 야만의 음식처럼 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화자는 “어두컴컴한 오지(검붉은 진흙) 항아리에 솜씨 없이 울쑥불쑥 담은 짭짤한 말국“의 깍두기 맛이, 달콤하고 냄새도 좋은 서양과 일본의 “오므라이스”나 “가기(굴) 튀김”, “수프”, “빵”보다 좋다고 말한다. 


그리고 “카레라이스”나 “미소시루”보다는 “깍두기를 먹어야 속이 든든해진다.”라고 얘기하면서, 깍두기를 예찬한다. 우리 근대문학 작품에서 이렇게 음식을 주제로 삼아 이를 이야깃거리로 삼은 예는 흔치 않은 것 같다.   

나혜석 문학 속의 이러한 음식 이야기는, 당시 남성들의 점잖은(?) 본격문학에서는 애초 관심도 없고 무시의 대상이었으리라. 그러나 나혜석은 이를 통해 머리로는 잊었으나, 몸이 기억하는 즉 후각, 미각 같은 유년 경험의 근접 감각을 작품 안에서 재현해낸다. 그리고 그러한 고국의 음식을 통해 유학생들 간의 공동체적 유대감을 환기한다.   


동경유학생이자 신여성인 나혜석은 일본에 가서 새롭게 체험하게 된 서양의 돈가스, 오므라이스 등을 자랑삼아 얘기할 법도 한데, 오히려 우리의 깍두기를 문학 작품 속에 스스럼없이  끌어들여 음식이 갖고 있는 미각 이상의 여러 의미를 우리에게 전달코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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