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관광대국인 스위스에 유학한 경험이 있는 북한의 지도자 김정은은 함경남도 원산과 마식령 일대에 리조트, 스키장 등을 건설해 북한을 스위스와 같은 관광입국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는 얘기를 전해 들은 적이 있다. 이러한 김정은의 생각은 이미 식민지 시절 스위스를 여행했던 화가 나혜석 역시 자신의 기행문에서 밝히고 있다.
나혜석은 스위스가 큰 나라 사이에 끼여 있어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 별 볼 일 없지만, 천은(天恩)을 입은 자연 경색을 이용해 그것이 나라 수입의 대부분이 되고 있음을 얘기한다. 그러면서 우리나라도 강원도 일대를 세계적 피서지로 만들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
지금 우리가 갈 수 없는 곳이지만, 나혜석은 강원도에는 삼방 약수가 있고, 석왕사가 있고, 명사십리 해수욕장이 있고, 내외금강 절승지가 있는데 이렇게 구비한 곳이 세상에 없으니 동양인은 물론 중국 등 동양에 와있는 서양인들을 관광객으로 끌어들일 수가 있다고 얘기한다.
2.
스위스의 천혜의 자연경관을 관광할 수 있는 데는 알프스의 험산준령 어디고 데려갈 수 있는 각종의 산악열차 및 케이블카가 있기 때문이다. 융프라우의 높이가 4,158m인데, 유럽 최고도의 기차역인 융프라우 역은 백두산보다 700여 m나 더 높은 3,454m에 위치하고 있다. 융프라우 역에 도착하면 이 철도를 건설하느라 희생된 이탈리아 이민 노동자들의 역사가 기록돼 있어 눈길을 끈다.
이 철도는 이미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걸쳐 건설된 것이기에 1920년대 후반 나혜석이 융프라우를 올라가며 이용한 산악열차와 철도 시설은 현재의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융프라우를 산악열차로 올랐던 나혜석의 기행문을 잠시 인용해보자.
“개미도 능히 기어오르지 못할 만한 고봉을 전차를 타고 가만히 올라간다. 산을 넘어 아이겔 산 터널에 입(入)한다. 장(長)이 70 리나 되는 터널로 도중 석실(石室)로 된 2, 3개의 역(驛)이 있어 매우 기이하다. 산 벽을 뚫은 사이로 아래를 굽어보니 아, 소름이 끼친다. 구름이 많이 낀 적설이 천인(千仞)의 계곡(谷)에 묻혀 있고, 쳐다보니 융프라우의 청백한 설암(雪岩)이 안전(眼前) 지척에 나타나 있다.”
북한의 김정은이 함경도 일대를 스위스와 같은 관광지로 개발하겠다는 생각이 현실과 아주 동떨어진 얘기는 아니다. 그 일대의 자연경관이 뛰어나기도 하거니와, 스위스에는 없는 아름다운 동해 바다까지 끼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식민지 시기 이미 이 일대 산악 지역, 즉 우리나라의 지붕 격인 개마고원 인근 지역에 일종의 산악열차와 철도 시설, 정확히 말하면 인클라인과 경편철도가 만들어져 당시도 새로운 관광지로 부각됐었다. 지금 나는 북한의 그곳을 가볼 수가 없어 그 실체를 확인할 길이 없지만 식민지 시기 한설야라는 작가의 기행문에서 이를 살펴볼 수 있다.
3.
한설야라는 작가의 이름이 일반 독자에게는 낯설지만 우리 문학사에서는 나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식민지 시기 발표됐던 그의 <과도기>(1929), 장편소설 <황혼>(1936) 등의 작품은 당대의 내로라하는 ‘노동자 소설’이다.
특히 <과도기>라는 작품은 우리나라 노동자 소설의 효시가 되는 작품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한설야는 해방 전에는 그의 고향인 함경도의 함흥과 서울을 오가며 활동을 했지만, 해방과 함께 찾아온 분단으로 그냥 고향인 북쪽에 남아 활동한 이른바 ‘재북(在北)’ 작가다.
한설야의 많은 작품들이 노동자를 소재로 삼은 배경에는, 그의 고향이 식민지 시절 공업화가 집중적으로 이뤄진 함경도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1920년대 후반부터 일본의 독점자본은 식민지 조선으로 본격적인 진출을 하는데 주로 이 함경도 지역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북한의 함경도 지역은 과거 ‘동방의 엘도라도’라고 불릴 만큼 풍부한 광물을 매장하고 있었다. 마그네사이트의 경우 세계적인 매장량을 갖고 있으며 흑연‧텅스텐‧우라늄 등 전략적 가치가 높은 광물도 적지 않다.
당시 함경남도 흥남에 질소비료공장을 세운 일본의 노구치(野口) 재벌은, 개마고원 남쪽 지역인 장진 고원과 부전령에 장진강, 부전강 수력 발전소를 완공한다. 그리고 그 여세를 몰아 당시로서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규모의 수력 발전소인 수풍 댐을 압록강에 건설하여 식민지 공업화에 박차를 가한다.
그중 장진강 수력발전소를 건설하기 위해서 산꼭대기에 동양에서 제일 넓은 인공호수인 장진 호수를 조성한다. 그리고 이 산상 호수를 관광하기 위한 경편철도와 인클라인이 건설된다.
한설야의 수필 <장진호 기행>(1939)은 바로 이 경편차를 타고 장진호를 관광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관광객들은 일단은 자동차를 타고 장진 고원의 입구인, 해발 1,200m에 위치한 황초령 역까지 가게 된다. 그러면 그 역에서 경편차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황초령 역은 신라 진흥황의 순수비가 있는 바로 그 황초령이다.
한설야의 설명을 따르자면, 인클라인이라는 것은 가는 철사를 수 십 겹줄로 꼬아 만든 동아줄로 조그만 경편차를 산상으로 끌어올리고 또 아래로 달아 내리는 장치다. 산 위에는 이백 마력의 권양기(捲楊機)가 있어 강철 동아줄로 차를 끌어올리는데, 이 선로의 총연장은 7천 미터로 길이는 동양 제일이며 맨 급경사는 30도, 직고는 700 미터다. 일종의 거대한 ‘푸니쿨라’인데, 케이블카와 달리 기차선로가 있는 것이다.
이 경편차를 타고 올라 장진 호반에 내리면 발동선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여기서 수로로 40 리를 가면 갈전리 댐이 나온다. 바로 이 댐으로부터 수도(水道)로 물이 흘러나와 거대한 낙차를 이용해 발전기에서 전기를 일으키고 그 전기가 흥남 질소비료공장으로 보내지기도 하고 평양, 서울 등의 전기회사로 송전되는 것이다.
한설야는, 강우로 호수에 물이 1mm만 불어도 회사는 당시 돈 만 원의 이익을 보게 됐다고 한다. 반면 수재로 인한 주민들의 손해는 말할 수 없이 크나 수력전기 회사 사장 노구치의 기분은 대단히 좋았다고 하니 아마 그를 기쁘게 한 것은 대 홍수였을지 모른다는 말을 덧붙인다.
이렇게 북한은 고산준령이 많다 보니 스위스에서나 볼 수 있는 험준한 산악과 이를 오르는 열차 등의 진풍경들을 볼 수 있는 셈이다. 우리는 현재 유럽의 먼 나라 스위스 관광을 하고 올 수는 있어도 막상 지척인 우리의 북쪽은 가볼 수 없으니 답답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내 생애에 산악기차를 타고 개마고원을 올라 그곳을 종주해볼 날이 올 수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