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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문규 Dec 12. 2021

산토리니와 ‘저녁 등명’

1.

그리스 산토리니를 갔던 시기는 2월이었다. 겨울이지만 유럽 남녘, 에게 바다의 섬인지라 날씨는 그다지 춥지 않았다. 단 도착한 날 밤에는 바람이 심하게 불고 비수기라서 그런지 시내  상점의 불빛도 다 꺼지고 사방이 컴컴해, 숙소의 차량 기사가 픽업을 하러 나오지 않았더라면 상당히 애를 먹을 뻔했다.

 

차에서 내려 숙소를 찾아 골목을 들어가는데 다른 집 지붕이 자기 집 마당이 되고 자기 집 지붕이 다른 집 마당이 되는 것 같은 희한한 모양새라, 도대체 집들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고 동네가 어떤 동네인지를 가늠할 길이 없었다.


다른 집 지붕이 자기 집 마당이 되는 산토리니의 집들 

   

아침에 일어나서야 우리가 머무른 숙소가 바다를 향한 가파른 절벽에 층층이 놓인 집들 중의 하나임을 알 수 있었다. 창문을 열자 들어오는 눈부신 햇살과 바다는 산토리니라는 단어가 주는 반짝반짝한 어감 그 자체였다. 


산토리니에서는 집, 절벽과 바다 그리고 푸른 하늘, 눈부신 태양 그 모두가 구경거리가 된다. 그러나 이곳 최고의 관광 상품은 역시 석양이다. 산토리니에 머무는 사흘 중 하루는, 공항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었음에도 노을이 더 보기 좋고 예쁘다는 섬의 북쪽 끝 마을로 우정 숙소를 옮겨 갔다.   


산토리니 섬의 골목들


산토리니의 저녁노을은 한용운이 표현한 그대로다. “연꽃 같은 발꿈치로 가이없는 바다를 밟고”, “옥 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해를 곱게 단장”했다. 그런데 석양은 아름답기는 하지만 시시각각으로 변하면서 속히 황혼이 되어 버리기 때문에 늘 아쉽다. 


그래서 해가 지고 난 후 찾아오는 땅거미의 어스름한 매력이 오히려 더 마음에 들 때가 많다. 산토리니에도 역시 해가 지니 작은 저녁달이 떠오르고 바다에 떠있는 섬 봉우리들의 윤곽만 남으면서 골목마다 작은 불들이 들어오는데, 기온도 떨어져 따듯한 숙소가 그리워졌다.    


교회와 종탑
산토리니의  월출


2.

강릉 동해안은 해 지는 것을 보는 곳이 아니라 장엄한 일출을 구경하는 동네다. 그래서 정동진에는 늘 관광객이 몰려든다. 그런데 정동진 바로 옆에 등명(燈明)이라는 아주 작은 바닷가 마을이 있다. 


등명이란 “부처를 위해 켜서 바치는 등불”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이 마을 뒤 병풍 같은 산 위로 ‘낙가사’라는 절이 있는데, 흔히들 ‘등명 낙가사’라고 부른다. 


이문재의 <저녁 등명(燈明)>은 이 낙가사 아래 등명 마을의 저녁을 노래한 시다. 등명 마을의 해안은 낮에는 눈이 부셔서 눈을 뜨지 못하고 있고, 마을 역시 낮에는 있는 듯 없는 듯 엎드려 있다고 한다. 대낮 낙가사에서 이 마을을 내려다보면 정말 그런 형국이다.


그런데 오징어잡이 배의 집어등이 수평선을 긋기 시작할 즈음이면 마을은 한낮에 고인 빛을 모아 저마다 하나씩 등을 달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마을의 모든 집이 연등으로 살아나고 연등 속에 있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심지가 된다. 


낮에는 해안 쪽으로 파도를 거세게 밀었던 바다도 어둠이 내려 등명이 켜지면 스스로 자신의 깊이를 잃고 순해진다. 그리고 마음이 캄캄했던 사람들도 저녁 등명에 가면 불이 켜진다면서 저녁 등명 마을의 고즈넉한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있다.      


3.

우리가 잘 알다시피 지구는 태양을 바라보고 자전도 하고 공전도 한다. 이에 따라 하루는 새벽-정오-석양-어둠이 되며, 한 해로 보면 봄-여름-가을-겨울의 사계가 되기도 한다. 한 사람의 생애로 본다면 출생-결혼-죽음-해체의 단계가 이에 조응한다. 신화비평가 노드럽 프라이는 문학도 이에 맞춰 네 가지 원형(archetype)의 장르를 갖고 있다고 했다.  


프라이에 의하면 석양은 계절로 따지면 가을이고, 인간의 생애로 따져 볼 때는 죽음에서 해체로 가는 시기이다. 그런데 독일의 혁명시인 하이네는 “삶이란 고통의 한낮이고, 죽음은 상쾌한 저녁”이라는 다소 역설적인 말을 했다. 


죽음 너머 지하의 세계로 해체돼 들어가기 직전인, 해가 지고 땅거미가 밀려오는 이 시간을 매력적으로 느끼게 되는 것은 프로이트의 말대로 인간에게는 “죽음의 본능” 같은 것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생명체에게는 죽음의 본능과 성적인 본능이 있는데 전자가 후자보다 오히려 더 태초적인 본능 욕구라고 한다. 인간의 근원을 따져 올라가면 태초의 단세포 생명체에 이르는데, 이때 생명체는 간신히 물 위에 떠서 햇빛의 각도와 수온에 따라 생명을 얻었다 죽었다가를 반복하면서 살려고 안간힘을 쓴다고 한다.


결국엔 힘에 부쳐 이리 고통스럽게 사느니 차라리 죽기를 원하기도 한다는데, 그래서 죽게 되는 경우 살려는 중책에서 벗어나는 안도와 희열을 느낀다는 것이다. 이런 죽음의 본능은 대를 거듭해 내려오면서 인간이라는 생명체까지 와서도 근본적인 기쁨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지는 해를 바라보면서 죽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는 황당한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고, 단지 죽음이 가져다줄 수 있는 안식을 생각하면서 아등바등한 인간의 삶을 돌아보고 삶에 좀 더 너그러워지는 편안함을 느껴보고 싶다는 얘기를 해보고 싶었다.    


    

산토리니 섬의 일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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