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감사합니다람쥐~’, ‘안녕하십니까불이~’는 한참 전 TV 개그콘서트 프로에 등장했던 유행어다. 사람들이 이런 말들의 놀이에 배꼽을 잡고 웃는 이유를 좀 폼 잡고 설명해본다면, ‘감사합니다’, ‘다람쥐’ 따위의 기표(지시어)들이, 기의(지시 대상)를 지시해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벗어나 지들끼리 스스로 놀기 때문이다.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방법은? 냉장고 문을 연다. 코끼리를 넣는다. 냉장고 문을 닫는다.” 만일 코끼리의 크기를 떠올린다면 실제 상황이 될 수 없는 이 말놀이는 기표와 기의 사이에 설정된 사회적 약속을 무시하고 이를 뒤집기 때문에 말하는 순간 코끼리가 냉장고에 넣어지는 실재 사건으로 변해 웃음을 유발한다.
탈구조주의 또는 해체주의의 방식으로 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바로 기표와 기의 사이를 벌려 기표 중심으로 작품을 읽는 방식이다.
문학 작품을 읽으면서 독자는 하나의 고정된 의미만을 주장하는 기의의 억압에 도전하여 그에 개의치 않고 기표 중심으로 작품의 의미가 형성되는 과정을 자유롭게 열고 닫는다.
이광수의 <무정>을 읽으면서 도산 안창호 선생과도 같은 춘원의 말씀을 찾아 읽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지만, 더 즐겁고 황홀한 일은 작가의 의도를 무시하고 독자 스스로 새롭게 작품의 의미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텍스트를 읽는다는 것은 항상 최초로 써야 하는 일이다.”(자크 데리다) 바꿔 말하면 텍스트를 읽는다는 것은 끊임없이 다르게 읽는다는 것이다. 다르게 읽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들을 특정한 방식으로 고정시키려는 지배적 담론의 전략에 맞서서 그것을 무한히 확장해보는 것이다.
문학 텍스트가 무엇을 의미하도록 강요하는 것을 거부하고, 해체적으로 읽으라는 것은 작가를 무시하고 독자 멋대로 읽고 해석해보라는 말로까지 들리기도 한다. 이러한 과격하고 전복적인 방식의 문학 이론을 펼친 이들의 대부분이 프랑스의 탈구조주의 비평가들이다.
2.
파리를 관광할 때다. 한인 민박 집서 머물렀는데 주인아저씨가 우리 보고 파리에 있는 공원을 가봤냐고 물었다. 아저씨 왈, 공원을 가보면 하루 종일 아무 하는 일도 없이 벤치에 앉아 ‘멍 때리고’ 있는 사람들을 아주 많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물론 이를 확인하기 위해 공원을 갔던 것은 아니고 노트르담 성당을 구경하고 거기서 소르본 대학과 판테온 신전까지 걸어갔다가 너무 다리가 아파서 마침 눈에 띈 뤽상부르 공원을 둘렀다.
파리의 공원은 4백 개가 넘는다는데, 뤽상부르는 그중에서도 아주 유명한 공원 중의 하나다. 공원에는 역대 유명한 황후와 여자 시인들의 조각이 늘어서 있다. 남녀 누드 조각으로도 유명한 것이 많이 있는데, 그 조각 형상 여부에 따라 화단을 만들어놓아 마치 야외 미술관을 배회하는 느낌이다.
공원에는 구슬치기 비슷한 놀이를 하는 노인들도 있고, 책을 읽거나 잔디에 모여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는 이들도 있지만, 민박집주인 말대로 진짜 넋을 잃고 벤치에 앉아 있는 이들이 꽤 눈에 띄었다. 결코 명상의 자세라고 할 수는 없고 글자 그대로 멍 때리고 앉아 있는 것이다.
어떤 철학자는, 사람들이 인생의 어느 한 시기에 멍 때리고 있는 것이 결코 무의미한 것만은 아니라고 얘기한다. 그 시기가 오히려 마음을 성장시키고 충전시키는 기간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금 눈앞에 있는 것만을 현실이라고 보지 않고, ‘또 하나의 현실’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특별한 목표 없이 자신의 마음을 탐구하거나 흥미가 생기는 대로 지적 관심을 따라가 볼 수 있는 곳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파리가 가진 독특한 매력의 근원은 이곳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게으름’과 ‘자기표현’에 있다고 한다. 프랑스에서 파격적인 탈구조주의 또는 해체주의 비평이 탄생하여 꽃을 피울 수 있었던 것도 다 이러한 이유에서란다. 그도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은 든다.
3
정년퇴임을 하고 나니 부러 의도하지 않아도 멍 때리고 있을 시간이 상대적으로 많아졌다. 그런데 나는 공원 벤치에 앉아 멍 때리고 있는 순간에도, 이런 순간을 통해 뭔가 유의미한 것을 만들고 생각해내야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강박에 자주 매이게 된다.
내 생각엔 멍 때린다는 것은, 의미 있는 삶을 살겠다는 생각도 버리고, 아니 의미 있는 삶 그런 건 아예 존재하지 않고, 사실 우리는 꿈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고, 자기라는 것도 다 내려놓는 상태가 돼야 하는 것 아닌가 싶은데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이런 어려운 세상에 이렇게 한가하게 멍 때리기 같은 얘기나 하고 있어서, 죄송합니다람쥐~ 댜래끼 낀 다람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