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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문규 Dec 26. 2021

‘자전거 도둑’, 밀라노 역에서

1.

2차 세계대전 직후 이탈리아의 네오리얼리즘 영화를 대표하는 〈자전거 도둑〉(1948)이 있다. 오래전부터 그 영화의 명성을 익히 알고 있음에도, 정작 영화를 보게 된 것은 김소진의 동명 소설 <자전거 도둑>(1996)을 읽고 나서였다.   

   

영화 <자전거 도둑>은 잘 알다시피 주인공이 벼랑 끝 가난에 몰려 취업을 위해 빚을 내 구했던 자전거를 도둑맞자, 어린 아들과 함께 그 자전거를 찾아다니던 중 그만 자신도 자전거 도둑이 되는 이야기다. 김소진 소설은 이 영화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소설 속 ‘나’는 이 영화를 볼 때마다, 아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자전거 도둑으로 몰려 아버지의 권위를 깡그리 무시당하게 된 아버지의 모습이 견딜 수 없어 콧등이 시큰해진다. 


그러나 그보다도 무너져 내리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목격해야 하는, 그럼으로써 평생 씻을 수 없는 내면의 상처를 끌어안고 살아갈 어린 아들 브루노 때문에 ‘나’는 혀를 깨문다. 어린 시절의 ‘나’가  바로 또 다른 브루노였기 때문이다. 


소설 속 ‘나’에게도 어린 시절 씻을 수 없는 상처가 있다. ‘나’의 아버지는, 도매상에서 도부를 떼 구멍가게를 하는 가난한 아버지였다. 하루는 아버지가 도매 가게서 슬쩍한 물건들을 주인에게 들키게 되자 이를 함께 갔던 ‘나’가 한 짓으로 덮어 씌운다. 


그러나 사정을 빤히 알고 있는 음흉한 주인은 아버지를 시켜 아들의 손버릇을 고치라면서 ‘나’의 뺨을 때리게 한다. 아버지는 주인에게 굽실거리면서 ‘나’에게 뺨을 올려붙이는데, 당시 ‘나’는 어린 마음에도 결코 “에비라는 존재는 되지 말자”라는 끔찍한 다짐을 한다. 


2.

이탈리아를 갔을 때 밀라노는, 영화 <자전거 도둑>에 나오는 가난한 현실과는 거리가 먼 현대적이고 화려한 도시였다. 그러나 인간이 오랜 세월을 거쳐 오면서도 영원히 해결하지 못하는 가난의 문제는 지금 밀라노에서 역시 진행 중이었다.    


화려한 패선의 도시, 밀라노


밀라노가 있는 북부 이탈리아는, 영화 <자전거 도둑>의 무대인 로마가 있는 남부에 비해 훨씬 잘 사는 지역이다. 그럼에도 로마보다는 오히려 밀라노서 관광객들에게 물건을 강매하거나 노골적인 구걸을 하는 이들이 훨씬 눈에 많이 띄었다. 아마도 좀 더 경제적 형편이 나은 북부의 대도시로 가난한 사람들이 몰려들기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이들 대부분은 흑인이고 흑인이 아닌 이들도 더러 있었다. 영화 <자전거 도둑>에서 이차 세계대전 직후 이탈리아인들이 겪었던 수모와 가난을 이제는 이탈리아로 건너온 아프리카 이주민들이 겪고 있는 것이다. 


유럽으로 밀려드는 난민과 불법 이민자 대부분은 이차 세계대전 이전 유럽 제국들의 식민지였던 중동과 아프리카 출신들이다. 이 지역에서는 식민주의의 유산으로 분쟁과 전쟁이 이어지며 그 때문에 난민과 불법 이민자 사태가 빅뱅처럼 터지고 있다. 이들 난민들은 내전을 피해 목숨을 걸고 지중해를 건너 이태리로 오게 된 것이다. 


관광객에게 허접한 팔찌를 강매하고 있다.


3.

밀라노 베르가모 공항서 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은 밀라노 중앙역이었다. 흰 대리석의 중앙역은 웅장하고 멋있기는 하지만 어딘지 위압적인 느낌을 주는 건물이었다. 누구는 이탈리아의 파시스트 무솔리니가 거만한 자세로 대중 연설을 하도록 지어놓은 듯한 건물이라고 비꼬기조차 했다.  


밀라노 중앙역


우리는 밀라노 인근을 여행하기 위한 기차표를 예매해야 했기에, 숙소에다 짐을 풀지도 못한 채 역을 둘렀다. 1층 역 대합실에서 어디로 가야 하나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을 때였다. 어디서 까만 곱슬머리의 작달막한 청년이 나타났다. 


그 청년은 꺼멓고 땅땅한 게, 전형적인 유럽 사람의 얼굴은 아니다. 이태리 남부에 가면 이렇게 생긴 이들이 많다. 이 자는 우리를 발견하더니 별 얘기도 없이 우리 부부의 여행 가방을 가로채 양손에 들고 2층 대리석 계단 위를 쏜살같이 올라갔다.

 

우리는 황당해하면서 급히 쫓아 올라갔다. 그가 도착한 곳은 기차표 자동판매기 등이 있는 키오스크였다. 그는 그곳을 가리키며 기차표를 사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매표소까지 쉽게 오기는 했는데 청년은 팁을 바라는 눈치였다.

 

나는 청년이 고맙기는커녕 괘씸스러워 잔돈을 만들지 않으려고 일부러 신용카드로 계산하고 그를 못 본 척하고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예전에 이런 얘기를 ‘브런치’에 썼더니 그래도 짐을 들어다 안내를 해줬는데 팁 정도는 줬어야 되는 것 아니냐는 독자의 댓글이 달린 적이 있다.   


그러고 보니, 화난 표정의 내 눈치를 살피던 청년의 처량한 눈동자가 새삼 눈에 걸린다. 그가 뭐라고 떼를 쓴 것도 아니고, 오히려 가방을 들쳐 들고 온 자신을 민망하게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아, 나는 왜 그렇게 쪼잔하고 매정하게 굴었을까?    


4.

김소진의 <자전거 도둑>으로 다시 돌아가면, 주인공인 ‘나’는 아버지를 시켜 자신의 뺨을 때리게 한 도매상 주인 영감에게 원한을 품고 그에게 복수를 감행한다. 그리고 복수의 여파인지 뭔지는 몰라도 주인은 얼마 안 있어 죽음에 이르게 된다. 


성인이 된 ‘나’는 그때의 어린 시절을 회고하면서 주인이 비록 아버지와 ‘나’의 자존감을 짓밟았지만 인간을 사랑했어야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세상에서 분노와 복수가 모든 것의 해결의 열쇠가 될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 <자전거 도둑>에서 도둑으로 몰린 아버지의 무너진 뒷모습, 이를 바라보는 아들의 슬픈 눈동자는 그들이 세상으로부터 여지없이 패배했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그 슬픈 눈동자는 우리의 가슴을 친다. 밀라노 역 청년의 처량하고 민망해하는 모습이 계속 마음에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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