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비엔나 서역을 떠나 오스트리아 북서쪽의 호수 마을 할슈타트로 가는 기차 여행은 마치 서울을 떠나 강원도의 평창, 진부, 오대산 쪽을 향해 가는 여정 같았다. 기차가 알프스 쪽을 향할수록 첩첩의 산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그 산들이 기차의 창으로 기세 좋게 덤벼드는 형세가 꼭 그런 인상을 준다.
비엔나에서 출발해 아트낭이라는 곳에서 차를 바꿔 타고 할슈타트까지 가는 데는 한 4시간 너머가 걸린다. 여행했던 시기는 3월 하순이지만 오스트리아 산중에는 봄이 올 기미는 없었고 오히려 산마다 상당히 많은 눈이 쌓여 있었다.
한 마디로 여행 비수기에 방문한 셈이다. 날씨가 풍경에 한몫을 한다고 아름다운 할슈타트 호수도 추운 날씨에는 을씨년스럽기 그지없었다. 그곳을 갔다 왔음에도 호수를 찍은 사진이 한 장도 없다는 사실이 이를 반증한다.
거기서 한국인 관광객 아저씨 한 분을 만났다. 그는 세상에 이렇게 볼 곳이 없는 데도 있냐면서 한국에서 이런 곳까지 찾아오는 것은 ‘국력의 낭비’라고 했다. 국력까지 들먹이는 것은 좀 우스웠고, 명성 있는 관광지도 제 철에 오지 않으면 별 볼 일 없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산골 정거장서 만난 일본인 신혼부부 여행객은 마치 미리 봄을 알리는 전령사인 듯 가슴을 설레게 했다. 그리고 잘츠부르크 가는 차를 기다리면서 추위를 피하러 들어갔다 나온 산골의 아주 작은 교회도 기억에 남아 있다.
할슈타트의 ‘할(Hall)’은 ‘흰 소금’이란 뜻으로 이곳은 이미 3천 년 전부터 소금광산이 있었던 마을이다. 마을의 뒷산 꼭대기에 남아있는 소금광산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돼있는데 4월 말에나 개방을 한다고 해서 두르지는 못했다. 이런 산골짝에 소금이라니…
인근의 잘츠부르크 역시 ‘소금의 성’이라는 뜻을 가졌듯이, 이곳 사람들은 소금 채굴로 부를 쌓고 잘츠부르크는 특히 이를 통해 도시의 번영을 이뤘다. 독일, 오스트리아 등지에는 암염을 산출하는 도시들이 대부분 내륙에 있다.
암염은 그것을 직접 캐기도 하지만 염천을 끓여 소금을 추출하는 방법도 있다고 한다. 소금물을 펄펄 끓이려면 많은 목재가 필요하고 숲에서 벌채한 목재는 강에 뗏목을 띄워 육지까지 가져와야 했는데 이런 점에서 할슈타트의 소금광산은 적절한 입지조건을 갖췄던 셈이다.
소금은 예로부터 ‘화이트 골드’라 부를 정도로 인간 삶에 귀한 것이었다. 특히 독일이나 오스트리아 같은 내륙 지역에서는 더욱 귀한 것이었음에 틀림없으리라.
식민지 시기 강경애의 <소금>(1934)이라는 소설에서는. 간도로 이주한 조선인들이 만주에 소금이 귀하니 겨울에 얼어붙은 두만강을 오가며 소금 밀수를 하는 얘기가 나온다.
이효석은 자신의 고향인 강원도 평창을 무대로 소설 몇 편을 썼다. 이들 소설에 소금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아마도 옛날 산골에는 소금이 귀했기에 이런 얘깃거리들이 유독 소재가 됐던 것이 아닌가 싶다.
2.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1936)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은 허생원이 나귀를 타고 자신의 아들인지도 모를 동이와 함께 메밀꽃 핀 달밤의 산 고개를 넘어가는 장면이다. 산길이 어찌나 고요한지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린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작가는 만개한 메밀꽃을 소금에다 비유한 것이다. 산골에서 소금이란 쉽게 구하기 어려운 자원이고, 산골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생명 같은 존재로 여겨졌기 때문이 아닐까?
이효석의 <산협>(1941) 역시 강원도 평창이 무대다. ‘흥정산’을 배경으로 한 것으로 미뤄보건대 지금 유명한 스키콘도가 있는 깊은 산골짝 어디 마을일 게다. 작품은, 이 마을 부농인 공재도가 매년 봄 ‘소금 받이’를 하러 마을을 떠나는 데서 이야기가 시작되고 이야기가 끝난다.
소금 받이란 가을에 추수한 산골의 콩을 봄이 되면 소에 싣고 험한 산길을 넘어가, 한강에서 올라와 원주 문막 강나루에 부려놓는 소금과 바꾸러 가는 일을 일컫는다.
이 소금 받이를 배경으로 대를 이을 아들이 없어 빚어지는 공재도 집안의 비극을 그리고 있는데 이에 대한 내용은 각설하고. 이 작품에서 소금과 콩을 바꾸는 것은 신화적으로 남성의 고환을 연상시키는 콩과 여성으로 표상되는 바다의 씨인 소금을 바꾸는 것으로 인류의 가장 원형적인 바꿈의 모형을 상징한다고 본다.
3.
오스트리아 알프스 할슈타트의 소금광산을 얘기하다가 이효석 문학 속의 소금 이야기로 비약을 하기는 했지만, 이런 상상을 했던 것은 비엔나에서 알프스를 향해가는 기차가 서울역에서 ktx를 타고 횡성, 평창, 오대산을 향해 가는 여정의 행로와 비슷한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경기도를 지나 강원도 원주를 넘어서면 차창 곁으로 와락 다가서며 굽이치는 청산의 물결은 언제 보아도 새롭다. 더욱이 횡성을 넘어 평창을 지날 즈음이면 문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남다른 감회를 가지게 된다. 그것은 산수의 수려함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부근이 이효석 문학의 무대가 되기 때문이다.
이효석 문학 속의 자연이나 할슈타트 호수를 품은 담청색 원시림의 골짜기는 인간 본연의 원초적 에너지를 충전시키는 재생의 장소이다. 마치 소금이 인간의 삶에서 그러하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