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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문규 May 11. 2019

안식년으로 캐년 동네 유타를 가다

첫 번째 안식년은 전혀 계획에 없었던 일이었다. 우리 학과로 안식년 교수 차례가 왔는데, 하겠다고 한 양반이 개인 사정이 생겨 포기한다며 느닷없이 나에게 그 자리를 떠넘겼기 때문이다. 거절해도 그만이기는 했지만 마음이 약한 탓에 떠안은 것이다. 내가 매사에 그런 식이다. 아무런 계획도 없던 나는 안식년에도 평소와 마찬가지로 학교에 출근하여 못 읽었던 책이나 읽고, 시간이 되면 일본학과 학생들 수업에 들어가서 그동안 배우고 싶었던 일본어 청강이나 하려는 계획 아닌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하루는 아내가 당신은 안식년인데 해외에 안 나가냐고 물었다. 나는 시치미를 떼며 국문과 교수는 해외에 나가서 연구할 게 없다고 했다. 그러나 국문과 교수들도 더러 해외에 나가는 건 나도 알고 아내도 아는 사실이었다. 아내는 당신이 교수라 큰돈을 벌어 오라는 얘기는 못하겠지만, 안식년 같은 기회를 가지면 해외에 나가볼 수 있는 것은 아니냐는 볼 멘 소리를 했다. 그러면서 당신이 시간강사 할 때라서 신혼여행 못 간 것은 억울하지도 않고 또 여행도 그리 다니고 싶지는 않지만, 한 번쯤 해외에 나가서 살아보는 건 자신의 ‘로망’이라고 했다. 


하여 이미 안식년은 시작됐건만, 마지못해 한국학과가 설치된 미국의 대학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역시 미국 동부와 서부에 유수의 한국학과가 있는 대학들이 있어 그곳으로 초청장을 부탁하는 편지를 보내 보았다. 영어로 괴발개발 쓴 편지는 유학 갔다 온 양반들에게 정서를 부탁했다. 답장이 곧바로 오긴 왔는데, 내용인즉슨 그렇지 않아도 한국인 교수들이 많이 와있어 자리가 없으니 나중에 알아보라는 정중한 거절의 내용이었다. 나는 내심 잘 됐다 싶어 아내에게 미국 대학서 온 편지를 보여주며 사정이 이러하니 가지 못할 것 같다고 얘기했다.   


아내는 뜻밖에도 그 결과가 어찌 됐든 노력을 해본 당신이 가상하다는 치하를 했다. 그러면서 자기는 외국에 나가 살아볼 팔자는 아닌가 보다는 탄식을 했다. 그런데 내가 못내 마음이 약하다. 아내가 그 일로 나에게 타박을 주었으면 반발심이 생겨 그걸로 끝이었을 텐데, 풀이 죽은 게 안 돼 보였다. 그래서 미국 중서부 내륙 쪽에도 한국어과가 있는 대학이 있다는 걸 알고 아내 몰래 그곳에 다시 편지를 보내봤다. 처음 할 때가 힘들지 두 번째는 비교적 쉽다. 편지 내용 중 학교 이름과 몇 가지 사실만 고쳐 쓰고 컨트롤 씨(복사)해서 컨트롤 브이(붙이기)해 보내면 되기 때문이다.  


답장은 한참 만에 왔는데 환영한다며 강의도 마련해보겠다는 아주 긍정적 내용이었다. 그러나 일을 시작해보니 초청장 부탁을 하고 그래서 초청장이 오고 그걸로 비자를 내고 하는 제반의 과정이 짧게는 한 학기 길게는 일 년에 걸쳐 이뤄진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그 학교에 가는 것은 안식년이 다 끝나서야 될 것 같았다. 게다가 미국인 학과장은 ‘세월아 네월아’였다. 이런 사정을 그곳에 재직하는 다른 한국인 교수가 어찌어찌 알게 돼 이 절차를 초스피드로 진행해 간신히 남은 안식년 기간에 그 학교서 지낼 수 있었다. 그 학교가 유타(Utah) 주의 주도 솔트레이크시(Salt Lake city) 인근 프로보(Provo) 시에 위치한 브리검 영(Brighm Young) 대학이다.  


이 대학이 소재한 유타 주에는 국립공원만 네 개가 있다. 그리고 이 대부분의 국립공원들은 거대한 협곡들 즉 캐년(canyon)'으로 이뤄져 있다. 그중에 레드(Red) 캐년과 브라이스(Bryce) 캐년, 자이언스(Zions) 캐년, 아치스(Arches) 캐년 등이 바로 그것들이다. 아치스 캐년은 미국의 신기하고 거대한 풍광을 소개하는 관광책자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곳이다. 유타 주의 자동차 번호판에는 스키 타는 사람(skier) 아니면, 한가운데 구멍이 뚫린 아치형의 돌기둥 바로 이 아치스 캐년의 풍광을 담은 두 종류의 그림이 있다. 우리나라의 무슨 자동차 광고에도 배경화면으로 나온 적이 있다.


브라이스와 래드 캐년은 저녁노을에 비끼면 더욱 신비하고 아름답게 보이는데 붉은색의 바위기둥들이 끝도 없이 전개된다. 그밖에도 유타 주에는 무슨 디즈니랜드도 아니고 여러 종류의 캐년이 모여 있다는 것인지 캐년 랜드(Canyon land)라는 곳도 있다. 거기다 한 술 더 떠 유타 주와 인접한 북쪽의 주인 아이다호(Idaho)와 와이오밍(Wyoming) 주에는 옐로스톤(Yellowstone)이 있고, 남쪽으로 인접한 애리조나(Arizona) 주에는 그랜드캐년(Grand Canyon)이 있다. 옐로스톤은 차로 7시간, 그랜드캐년은 그보다 조금 더 걸린다. 내가 있었던 유타는 다름 아닌 캐년의 주(州)인 것이다. 어찌나 캐년이 흔한지 우리 집이 있던 프로보 시 인근에는 프로보 캐년이라는 곳도 있는데, 그 규모 역시 엄청나 처음 이곳을 지날 때 벌써 그랜드캐년에 도착한 줄로 착각을 했다.   


나는 이렇게 별 계획도 없이 시행착오 끝에 전혀 예상치도 않았던 “캐년 동네”에 와서 살게 됐다. 내가 용의주도하게 계획을 세워 미국의 동부나 서부의 대학서 안식년을 보냈으면 향후 연구에 좀 더 좋은 자극을 받는 기회를 가질 수 있을지도 모르나 내 능력으로 볼 때 그렇게 됐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다 세상 일이 뜻대로 되는 것만은 아니리라. 단지 내가 우연히 살았던 유타 이 지역은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여행지임에도, 미국 땅이 워낙 넓어 미국서 안식년을 보낸 선생들조차 이곳 관광을 하고 가는 경우가 그리 흔치는 않다. 요즘 미국 중서부 관광 코스의 하나로 이곳이 껴있어 한국인들도 많이 방문하고 있으나 주어진 시간 안에 여기저기를 보기 위해 강행군을 하다 보니 우리 또래 사람들은 꽤 힘들었다는 말을 더러 전한다. 


 브리검영 대학의 미국인 교수가 내가 그랜드캐년을 다녀오겠다고 했더니, 언젠가 그 대학서 한국학 학회가 열려 거기에 단체로 참석한 한국인 교수들이 그랜드캐년을 다녀온 얘기를 해줬다. 학회 일정이 끝난 그 날 저녁 한국 교수들은 다음 날 아침 그랜드캐년의 일출을 보겠다고 밤을 새워 가서는 일출을 보고는 곧바로 돌아오는 그야말로 번갯불에 콩 구워 먹는 식의 그랜드캐년 관광을 했다면서 그러한 여행 방식이 잘 이해가 안 간다는 얘기를 했다. 사실 나 역시 대부분들의 여행이 어디 어디를 다녀왔다는 확인 식의 여행이 많고 그러다 보니 늘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동하며 차 안에서 비몽사몽 졸았던 기억들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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