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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문규 Jul 01. 2019

모르몬 신앙촌 프로보에서


한국서 검은 양복과 흰색 와이셔츠에 이름표를 달고 두 명씩 짝을 지어 다니는 모르몬 선교사들과 마주친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내가 방문한 미국의 브리검영 대학은 바로 이 모르몬(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교단이 세운 학교다. 이 대학 유타 캠퍼스는 풀타임 학생만도 삼만 명이 넘는 미국에서도 제법 큰 대학이다. 미국 같은 나라에서 종교교단이 운영하는 이렇게 큰 대학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신기했다. 캠퍼스를 둘러싼 로키 산맥의 신비로운 경관도 그렇지만 낮 12시 정각 캠퍼스 중앙 종탑에서 바흐의 칸타타가 울려 퍼지면, 캠퍼스 전체가 경건한 분위기에 젖어, ‘여기가 미국 대학 맞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유타 주에 모르몬 신자들이 많이 살지만 특히 브리검영 대학이 소재한 프로보 시는 주민의 거의 대다수가 모르몬교인일 정도로 모르몬교의 ‘신앙촌’ 같은 곳이다. 프로 보서 40마일, 차로 40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솔트레이크 시에는  유서 깊은 모르몬 성전인 ‘솔트레이크 템플’도 있다. 그곳 태버내클(Tabernacle) 홀에는 세계서 열두 번째로 크다는 황금빛 파이프 오르간이 있다. FM 방송을 듣다 보면 크리스마스 캐럴이나, 포스터(S. Foster, 1826~1864)의 가곡들을 아름답게 부르는 합창단이 나오는데, 그 합창단이 바로 태버내클 합창단이다. 이 대성전 말고도 유타 주에는 유독 교회들이 많은데 그 대부분이 첨탑에 십자가가 없는 모르몬 교회다. 


유타의 대표적 국립공원 중의 하나인 자이언스 캐년의 ‘자이언’이라는 말 역시 성경에 나오는 예루살렘 ‘시온’ 언덕의 영어식 표현이기도 하다. 왜 찬송가에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이 있지 않은가! 19세기 중반 이곳을 처음 발견한 모르몬교도가 이 캐년의 이름을 이렇게 붙였다고 한다. 자이언스 캐년의 장대한 바위산을 보면 그런 생각도 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박해를 당해 유타로 쫓겨 온 모르몬교도들은 장엄한 모든 캐년들이 자신들의 성지로 보이거나 아니면 그렇게 만들고 싶었을지 모른다. 


한국의 지인들 중에는 내가 이곳을 갔다 왔다니까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거기 일부다처제 하는 데 아니냐?”라고 묻는 이들이 더러 있었다. 글쎄 초창기 박해받을 당시에는 그런 일도 있었던 가 본데, 내가 보고 들은 바로는 전혀 아니다.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모르몬교를 ‘이단’이라 부르면서 다소 적대감을 드러낸다. 한국에서 활동하다 돌아온 모르몬 선교사들은 자신들이 어떤 반사회적, 반인간적 활동을 한 것도 아닌데 사이비 종교 취급을 받는 것에 억울해하는 것 같다. 


브리검영 대학에 가기 전 미리 그 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대학 내 복장 규정 같은 것 등(honor code)이 따로 게시돼 있어 흥미롭긴 했다. 가령 민소매나 등이 깊게 파진 옷을 금하고, 여자는 무릎 위로 올라가는 짧은 치마를, 남자는 짧은 반바지가 안 되는 등 과대한 노출을 금지하는 규정들이 많았다. 브리검영 캠퍼스에는 흰 상의에 검정 롱스커트를 입고 검정 단화를 신고 다니는 여학생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남학생들은 과도하게 수염을 길러서 안 된다는 규정도 있던 것 같은데 그러고 보니 서양인 치고는 대부분 깨끗이 면도를 하고 다니는 등 두발용 모가 말쑥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당시 나는 아내와 함께 대학 수영장을 다녔다. 그곳에서 역시 교환교수로 와있던 한국인 남자 선생 한 분을 만나게 됐다. 그 양반은 나랑 연배가 비슷했지만 식스 팩의 근육미를 자랑하며 다이빙도 폼 나게 하고 접영 솜씨도 화려해 그 양반이 수영장에 나타나면 나는 아내가 보는 가운데 늘 주눅이 들어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이가 수영장 관리를 하는 젊은이에게 불려 갔다. 사연인즉슨 그 양반 수영복이 삼각팬티였는데 학교 규정상 그런 복장은 금지돼 있다며 대신 트렁크팬티를 입고 오라는 것이었다. 미국 다른 곳에서 유학을 했었던 그 양반은 “유타는 전혀 미국 같지 않은  동네”라며 엄청 툴툴 댔던 기억이 난다. 그 양반은 이곳이 참 미국 같지 않다는 예를 하나 더 들었는데, 유타 여자들은 자신이 던지는 가벼운 농담에도 얼굴을 붉힌다며 감탄 아닌 감탄을 했다.  


나는 영어가 짧아 이런 농담을 못했지만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은 있다. 초등학교 다니던 딸애의 여자 담임선생은 모르몬교인인 데다 유타와 인접한 미국에서도 대표적 시골인 아이다호 출신이었다. 아이다호 주는 자동차 번호 판에 이곳의 주 농산물인 감자 그림이 있다. ‘감자바위’ 강원도에 살다온 우리로서는 그녀와 동지애(?) 같은 감정도 있었다. 우리와 처음 만났을 때 긴 청치마 원피스를 입고 나타난 그녀는 어찌나 수줍어하는지 학부형인 우리가 더 당황해했다. 크리스마스 때 우리 애들이 드리는 선물이라며 값싼 티셔츠와 초콜릿을 선물했는데 뺨이 순간 사과같이 발갛게 물들어 선물을 전하는 우리가 다 민망할 정도였다.

 

모르몬 교인들은 교리 상 술, 담배는 말할 것도 없고 카페인이 들어 있는 커피, 차, 콜라도 마시지 않는다. 그래서 가끔 집에 모르몬 손님들이 왔을 때 깜빡 잊고 습관적으로 커피를 내놓아 정중히 거절당하는 일도 더러 있었다. 이곳에서는 슈퍼에 가면 술, 담배는 따로 열쇠로 채워 보이지 않는 한 구석 칸에 놔두고 있다. 당연히 이 도시의 다운타운에서 술집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모르몬 신자인 한국 유학생에게 여기 술집이 있냐고 은근히 물어봤는데, “가시고 싶다면 제가 모시고 가겠다.”라고 기꺼이 제안한 걸 보니 어디 있긴 있나 보다. 


학기 초에 열리는 학과 교수 모임(faculty meeting) 때의 일이다. 보통 이러한 모임은 대학 동창회관에서도 하지만 여름학기가 시작되며 내가 참석했을 때는 일본어과 교수 집에서 부부동반으로 모임을 가졌다. 아내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 교수의 집은 한마디로 ‘에덴동산’과도 같았다. 스프링클러가 뿜어져 나오는 잘 관리된 넓은 잔디, 울타리를 둘러 만발한 화초, 게다가 각종의 과실이 열린 나무들. 집주인의 노모(老母)인 일본 할머니는 흔들의자에 앉아 손님들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날 집주인은 정원에서 바비큐 파티를 준비했는데 뉘엿뉘엿 넘어가는 저녁 해가 식탁을 더 빛나게 해 주었다.  


그런데 정작 이런 고기를 먹는 모임에도 술은 전혀 마련돼 있지 않아 나같이 술을 잘 못하는 사람조차 와인 한 잔이 다 그리울 정도였다. 술 한 잔도 걸치지 않은 상태에서 빽빽하게 고기를 먹는 것도 즐거운 일이 아닌데, 여흥 시간에 교수들이 나와서 퀴즈도 내고, 또 집주인 교수가 열심히 사회를 보며 재담을 하여 참석자들을 웃기는데 나는 당최 웃을 수가 없으니 그 역시 답답한 일이었다. 어떻게 술 한 잔을 걸치면 용기를 내서 이야기에 껴보는 시늉이라도 할 텐데 말이다. 


그러나 아내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신기해하고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 사실 한국에 있을 때 언제 한번 이런 모임에 데리고 간 적이 없었다. 아니 있어도 고의적으로 피했다. 그래서 나는 술 한 잔 없는 모르몬 교수들의 학과 모임이 힘들었지만 아내가 즐거워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모임에 의미를 부여해야 했다. 내 고향 인천 동네에 있던 모르몬 교회에 “가족은 지상의 천국”이라 쓰인 간판이 크게 걸려 있던 기억이 새삼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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