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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문규 Jul 08. 2019

미국서 애들 학교 보내기

미국에 도착한 것이 6월 중순인지라, 미국의 학교는 이미 여름방학 기간 중이었다. 그래서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는 9월까지 애들이 학교 가는데 다소 시간의 여유를 갖고 있었다. 우선 두 애들을 학교에 보내기 위해 시 교육청을 찾았다. 여권과 주소지를 보여주니, 동네 근처의 팀파노고스(Timpanogos) 초등학교로 가라고 한다. 한국서 떼어간 재학증명서를 제시하니, 학년 배정은 당사자의 의견을 존중해 결정해줬다. 작은 애는 3학년, 미국식으로 따지면 중학교에 가야 할 큰애는 6학년으로 배정됐다. 


학교 배정을 받고는 팀파노고스 학교를 가봤다. 방학이라 안은 볼 수 없지만 그리 썩 마음에 드는 건 아니었다. 그리고 찜찜했던 것은 그곳에 사는 교민 아줌마의 얘기 때문이다. 그 학교가 이른바 좋은 학군 지역의 학교가 아니라는 것이다. 딴 이유도 아니고 소위 ‘멕시칸’들이 많다는 점에서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학교 가서 “까악, 까악……”하는 까마귀 우는 소리만 들으니 영어 공부에 별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까마귀 소리는 스페인어를 빗대 말한 것이었다. 부모들의 생활수준도 낮아 친구 집에 놀러가 봐야 배우고 올 것도 없다는 게다. 그러고 보니 이 학교의 이름인 팀파노고스도 이 지역을 탐사한 스페인 모험가의 이름을 딴 것이다. 유타는 옛날 멕시코 땅이었다.     


그래서 귀가 얇은 나는 백인 부자들이 모여 산다는 산(山)동네 학교를 찾아가 보았다. 학교 관계자를 만나 멕시칸 얘기는 쏙 빼고 외국인들을 위한 영어 교육을 여기가 잘 한다는 소문을 듣고, 일부러 찾아 왔다는 식으로 둘러댔다. 학교에서는 그런 얘기와는 상관없이 기꺼이 환영한다고 했다. 그러나 문제는 큰애인 6학년 학급에 남는 정원이 없다는 점이다. 그러니 두 애를 다른 학교로 뿔뿔이 보내야 할 판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미국까지 와서 학군 타령을 해야 되는 스스로의 모습이 갑자기 한심스러워졌다. 그래서 귀찮기도 해서지만 다시 팀파노고스 학교로 보내기로 최종 결정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뭐 잘한 것도 못한 것도 아니고 그냥 애들을 서민적(?)인 학교에 편안하게 다니게 했던 것 같다.


이후 보건소(Health Center)에 가서 한국에서 떼 간 예방 접종 내역을 공증한 서류를 제출하고 투베르쿨린 반응 검사도 받는 등 학교 가기 전 만반의 준비를 하고, 드디어 신학기가 되어 애들을 데리고 학교를 가게 되었다. 애들도 긴긴 여름 방학 끝에 학교를 가게 된 것이 두렵기도 하지만 설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정작 두려운 것은 우리 부모 자신이었다. 학교 보낼 준비는 제대로 한 것인가? 애들 선생을 만나면 어떻게 얘기해야 하나? 애들은 학교에 잘 다닐까?

 

학교에 가보니 배정 학급 표시는 복도 게시판에 있었다. 그런데 한참을 쳐다본 것이 배정 학급이 몇 학년 몇 반으로 표시된 것이 아니라 담임선생의 이름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예컨대 딸애는 미스 데이밍 반이고, 큰애는 미세스 브라운 반이다. 데이밍 선생은 앞서 얘기한 바로 아이다호 출신의 그 선생이다. 큰애의 반인 미세스 브라운 반에 갔을 때는 담임선생은 일이 있어 못 나오고 대신 남편인 미스터 브라운이 와서 오리엔테이션을 해주었다. 각각의 선생님들과는 집에서 늘 해야 하는 숙제, 그리고 가정방문 날짜 심지어 시간까지 상의하고 왔는데, 실제 가정방문 당시 선생님들은 약속한 시간에서 일 분도 틀리지 않고 찾아 왔었다.

 

그리고 사무실에 가서는 급식비를 어떻게 내야 하는지를 지시 받았는데, 대충 몇 개월 치 금액을 선불로 받고 남는 금액은 되돌려 준다는 간단하기 짝이 없는 얘기를 못 알아들어 엄청나게 시간을 끌었다. 나도 딴 얘기라면 대충하고 넘어가겠지만 돈에 관련된 얘기라 물러설 수 없었다. 결국 내가 잘 이해를 못하는 듯하니, 아주 오래 전 강원도 춘천서 모르몬 선교사를 한 적이 있다는 선생까지 불러와 설명을 시도했다. 그러나 그녀의 형편없는 한국어를 듣느니, 숫제 영어로 듣는 게 더 나을 판이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개학식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문득 느낀 것은 잘 배우지 못한 부모가 애들을 학교에 보낼 때 얼마나 답답했을까 하는 점이었다. 오늘도 그렇다. 한국에서라면 담임 선생님을 만나 애들의 장단점을 조리 있게 얘기하고 난 후, “미거한 자식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며 정중(?)한 인사말로 끝을 맺을 텐데, 선생님들에게 이와 비슷한 말을 전하려고 했건만, 상대방은 잘 못 알아듣고 재차 물어보면서 미안해하고, 나는 또 못 알아듣게 얘기한 것에 대해 미안해하고 계속 서로들 미안해하기만 하다가 헤어진 것 같다. 그래서 돌아오는 길에 뭔가 부모로서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 같아 마음이 가볍지는 않았다. 


그러나 애들은 그게 아니었다. 오히려 안식년이 끝나 귀국하게 됐을 때 미국에서 좀 더 학교를 다니면 안 되겠느냐 해서 착잡한 마음을 가지기도 했다. 애들이 그런 마음이 든 것은 아마도 교사로부터 늘 보살핌을 받고 있다는 느낌을 가졌기 때문인 것 같았다. 우리 애들이 수학 계산 문제 빼고는 다른 아이들보다 잘 하는 것이 전혀 없을 텐 데도 가끔씩 최고의 학생에 뽑혀 사탕도 받아오는 것을 보며, 선생님의 판단력이 잘못되었거나 지나치게 너그러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마치 학교는 칭찬을 받으러 가는 곳 같았다. 귀국 길에 로스앤젤리스서 비행기 환승을 하며 기다릴 때, 아들애는 혼자서라도 자전거를 타고 프로보의 자기 학교로 돌아가면 안 되느냐는 말을 해서 마음이 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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