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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문규 Jul 12. 2019

나의 영어 분투기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미국 동부로 여행을 하게 됐다. 아내가 어디서 정보 하나를 물어 왔는데 제트블루(Jet Blue Airways)라는 저가항공사가 있다는 정보였다. 물론 미국 사람들은 잘 아는 항공사다. 승차권 가격이 진짜 헐한 게 오밤중에 뜨는 비행기이기는 하지만 2001년 당시 솔트레이크서 미국 동부를 왕복하는 표가 1인당 80불 정도였다. 그래서 얼씨구나 하고 표를 예약했는데 나중에 일정을 바꿔야 하는 일이 생겼다. 당시는 온라인상으로 그것이 어려웠는지 직접 항공사로 전화 연락을 해야 했다. 항공사 사원과 소통이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다른 경우라면 대충대충 하고 끊을 테지만 돈에 관련된 문제라서 전화기를 놓지 않고 버텼다.  


항공사 사무원도 답답한지 한참을 끙끙대더니 잠깐 기다리라고 했다. 조금 있다가 신기하게도 “아저씨 뭐 때문에 그러세요?”하는 아줌마의 퉁명스러운 한국말 목소리가 전화통에서 흘러나왔다. 어찌나 반가웠던지, 문제는 즉시로 해결됐다. 국내선을 운용하는 미국 항공사에서 한국어를 하는 직원도 쓰고 있다니 하! 이런 경우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역시 미국서 돈을 벌려는 게 아니고 쓰자고 하는 경우에는 영어가 안 돼도 크게 걱정할 것이 없다는 교훈을 또다시 떠올렸다. 그런데 다음의 얘기하는 경우는 상황이 좀 달랐다. 


미국서 귀국하게 될 때 대부분의 이들이 그러하듯이 쓰던 차를 팔고 떠나야 했다. 차를 살 때에는 큰 수고를 들이지 않은 게, 유학생이 알아봐 줘 미국서 살다 떠나는 한국 사람의 차를 샀기 때문이다. 그런데 떠나는 마당에서까지 유학생에게 부탁하기가 민망해서 우리 스스로 차를 팔아보려고 했다. 그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우리가 차를 샀을 때와 마찬가지로 미국에 살러오는 한국인에게 팔아넘기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맞춤 한 임자를 만나기가 어려웠다. 간혹 있기도 했지만 기간이 안 맞아 상대방에게 차를 팔아넘긴 후 오랫동안 다른 차를 렌트해 써야 했다. 


그래서 다음으로 시도해보았던 게 학생회관 게시판에 광고문을 붙여 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무 연락도 받지 못했다. 또 미국 사람들이 많이 하는 것처럼 ‘For Sale’이란 문안을 차 뒤에 크게 써 붙여 놓고 다녀 보기도 했다. 역시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내 차는 왕년의 미국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었다는 ‘GM 뷰익’이라는 탱크 같은 차라 은근히 기대를 했음에도 말이다. 이런 방식들이 통하지 않아 결국 중고차 가게를 찾았다. 꽤 많은 가게를 다녀 보았는데, 결국은 이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게 이들은 내가 원하는 가격의 반 이하로 후려쳐 부르기 때문이다. 


그러던 끝에 어떤 깔끔하게 생긴 중년의 딜러로부터 비교적 좋은 가격을 제시받았다. 이럴 수도 있구나 하면서, 그 딜러에게 미국을 떠나기 바로 직전 다시 차를 팔러 오기로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그러나 불안하기 짝이 없는 것이 그 자만 철석같이 믿었는데, 막상 팔러 갔을 때 뭔가 잘못되었다고 값을 다시 후려치면 그때 가서 안 팔 수도 없는 난처한 지경에 이르게 될 것 같아서다. 게다가 마피아 영화에서 본 듯싶은 그의 냉정한 인상도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그 딜러에게 왜 당신은 내 차를 그렇게 좋은(?) 가격에 사주려고 하는지 솔직히 말해보라는 어리석은 질문까지 해보고 싶었으나 영어가 딸려서 포기했다.


그래서 불안한 나머지 결국은 돈을 들여야 되겠다 싶어 지역 신문에 광고를 냈다. 30불에 닷새 정도 광고를 내는 것이었다. 가장 최소한의 문구인 차종과 연식, 전화번호 정도만 알리는 내용의 광고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광고하자마자 드문드문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화를 하면 다짜고짜 주행 거리부터 물어보는데 10만 마일이 넘는다면 더 이상 대화를 하지 않고 끊었다. 나의 더듬거리는 영어가 상대방의 구매의욕을 떨어뜨리기도 했겠지만, 미국에서도 십만 마일 이상의 차는 중고 시장에서 인기가 없는 것인 줄은 막상 차를 팔게 됐을 때야 알게 되었다. 


그러던 중 웬 사람이 연락을 해왔는데, 이 사람은 묻는 자세부터 달랐다. 차 색깔부터 시작해서 온갖 것을 다 물어본다. 그리고 우리 집을 찾아오겠다고 까지 했다. 물론 여러 가지 미심쩍은 부분도 있었지만 그 사람이 “forty five” 하는 소리만 귀에 들려와 5천 달러를 넘겨 내놓은 내 찻값과 비슷한 숫자인 듯해서 이거야 적당히 흥정해보면 되지 않을까 싶어 공휴일에 찾아오라고 했더니 당일 아침 아홉 시부터 찾아오겠다고 했다.  


드디어 그 날 일분의 오차도 없이 착하게 생긴 젊은이가 초인종을 누르며 나타났다. 그런데 카메라를 든 그 사람을 보자마자 도대체 전화 통화할 때는 알아듣지 못한 것들이 어떻게 전광석화같이 모두 이해가 되었는지…… 그 자는 벼룩시장 온라인 신문에서 일하는 자인데 그 문제의 “forty five” 즉 45불을 주면 내 차를 한 달간 광고를 해주겠다는 것이고, 그래서 내 차를 사진으로 찍고자 온 것임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그 이는 분명 성질이 났겠지만 별 내색은 하지 않고 돌아갔다. 옆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아내는, 한국에 돌아가거나 어디 가서 이런 얘기는 입도 벙끗하지 말라는 충고를 했다.  


이러한 해프닝 끝에 요행히도 그 짧은 광고 기한 중의 마지막 날, 어떤 미국 아줌마로부터  전화 연락을 받고 떠나기 바로 직전 차를 팔 수 있었다. 이 아줌마는 남편이 주한미군 군속으로 근무해 의정부에서도 잠시 살았다고 하며 친근감을 드러냈으나 역시 만만치는 않았다. 차 값을 깎을 뿐 아니라, 당연히 그래야겠지만 수리 센터에 내 차를 가지고 가서 점검과 수리를 하고 최종적으로 인수해갔다. 그러니 차 값도 깎이고 수리비를 치르는 등, 내가 기대했던 것에 훨씬 못 미치는 가격으로 차를 팔았다. 그러나 이런 과정에서 영어가 확확 느는 것을 피부로 느꼈다. 실은 영어가 아니라 눈치가 늘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 이리라. 누가 뭐라고 비웃을지 모르지만 제 값을 받으려고 차를 팔러 다니면서 구사했던 영어는 엉터리나마 내 생애 최고의 살아있는 영어였던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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