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문규 May 11. 2019

Are you together?

20년 전 미국 입국기

2001년 -그러니까 벌써 20년이 다 돼오고 있다- 첫 번째 안식년 때 가족들과 잠시 미국으로 살러가기 전, 내가 미국을 가본 적은 딱 한 번이었다. 마흔 살 되던 해 보스턴 인근 하버드 대학의 한국학 연구소와 옌칭(Yenching) 도서관을 방문했던 게 그 전부다. 사실 그때는 미국뿐 아니라 해외로 나간 것 자체가 처음이었다. 그럼에도 그때는 별 걱정 없이 여행했던 게, 미국 사정에 밝은 일행을 쫓아가는 여행이고 뉴욕서 잠시 내려 공항서 머물다가 보스턴행을 갈아타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단 그때 외국에 처음으로 나가봤던 그 경험이 다시 가족들과 함께 미국으로 살러가게 하는 데 큰 용기를 주었던 것은 사실이다.  


당시 첫 미국 여행 때 비행기를 타고 가는데 내 옆 자리에 아시아 쪽 사람들로 기억되는 일행이 여럿 앉아 있었다. 그런데 싱가포르 국적의 승무원이 그들 일행에게 다가가, “Are you together?"하고 물었는데, 그 말이 왠지 모르게 귀에 쏙 들어왔다. 영어에 익숙하지 못한 나로서는 직감적으로 저 문장은 중요하게 쓰일 문장이라 생각했다. 얼추 그 예상은 들어맞았다. 입국 심사를 하는데 우리 일행 중 영어에 능숙한 이가 첫 번째로 심사대에서 아주 한참 동안 무슨 말인가를 주고받았다. 이어 내 차례가 왔는데, 나는 어떠한 질문도 봉쇄하려고 앞서 간 일행을 손가락으로 서둘러 가리키며 ”We are together!"라고 크게 외쳤다. 출입국 관리는 웃으며 그냥 가라고 했다.      


그러나 안식년 때 솔가 하여 미국으로 살러가는 여행은 이전의 여행과는 그 사정이 달랐다.  우선 미국을 입국하면서 치러야 할 일이 무엇보다도 가장 큰 걱정이었다. 내가 인솔자니 ”We are together!"라고만 외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 가족은 서울서 유나이티드항공을 타고 샌프란시스코로 가 거기서 솔트레이크시티로 가는 국내선으로 환승해야 했다. 얘기를 들어본즉슨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도착하면 그곳서 짐들을 죄다 찾아 세관 검사와 입국 수속을 밟고 다시 이 짐을 국내선 비행기로 옮겨 탑승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이 시간이 보통 한, 두 시간 남짓밖에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32킬로그램에 달하는 이민용 가방 크기의 수화물 칸 가방(check in baggage) 6개(항공사  규정은 1인당 2개로 우리 가족 4명은 최대 8개까지 허용됐지만 너무 벅차 6개로 줄였다.)를 도로 찾아, 1인당 1개씩 4개의 기내 휴대용 수화물(carry on baggage)과 함께 들고 공항에서 움직여야 했다. 그리고 짐도 짐이고 시간도 시간이지만 최대의 불안은 나의 영어 실력 때문이었다. 국내서도 공항에 가면 정신이 없는데, 말까지 제대로 안 통할 것이니 말이다. 그래서 미국 유학을 했던 친구에게 샌프란시스코 공항서 국제선에서 국내선으로 갈아타는 것이 어렵지 않겠는가 하는 질문을 해보기도 했다. 이 친구는 약간은 짓궂은 표정을 지으며 “네 실력으로는 좀 힘들 텐데”라는 불안감만 증폭시키는 답변을 주었다.  


이러한 나를 보고 아내는 우리가 오지 여행가 ‘한비야’씨 같이 남들 안 가본 데를 가는 것도 아닌데 걱정도 팔자라는 식으로 비웃었다. 그럴 때마다 부아가 치미는 것은 지가 그렇게 여유를 부려도 결국 책임을 지는 것은 내가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일단 입국심사대에서의 절차는 생각보다 수월했다. 미국 대학서 초청하는 J-1 비자로 입국을 하는 자들에게는 별 질문을 하지 않는 듯했다. 오히려 비자에 기재된 초청대학교 이름을 보고 출입국 관리가 뭐라고 혼자서 중얼거리는데, 괜히 우쭐하여 얘기를 건넸다가 그 사람이 못 알아듣고 되물으면서 화를 내는 바람에 당황해했다. 가만히 있으면 본전이나 건졌을 텐데 말이다. 까불지 말아야 한다고 다짐했다. 


이후 짐을 찾아 세관 검사를 받고, 국내선 터미널을 찾아가는 난관의 코스가 남았다. 그런데 그동안 아내의 비웃음을 받아가면서 해왔던 온갖 걱정들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이었는지 곧 알아차리게 됐다. 입국절차를 밟고 나와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마치 이런 자들이 나타나기만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유나이티드 항공사 복장을 한 한국인 아줌마가 어디서 나타나더니 버터기가 잔뜩 섞인 한국말을 해가며 짐은 찾았느냐, 세관 검사는 했느냐, 국내선 어느 방향으로 갈 것인가까지 쫓아다니며 물으면서, 지금까지의 모든 고민과 숙제거리를 일거에 해결해주는 게 아닌가! 


일이 이렇게 되니 아내의 비웃음은 절정에 올랐다. 그러나 아내의 비웃음도 순간이었다. 다시 국내선을 타기 위하여 탑승 수속을 받던 중, 흑인 여성인 뚱보의 보안요원이 아내에게 뭔가 고압적인 지시를 하는데 아내는 잘 못 알아듣는 듯 맹한 표정을 지으며 머뭇거리고 있었다. 눈치를 보니 몸에 부착한 쇠붙이를 떼라고 했는데 아마 목걸이인지, 브로치인지를 그냥 달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무척 고소해했다. 


어찌했든 우리 가족 네 명은 무사히 짐을 옮겨 부치고 국내선 터미널로 이동했다. 시간도 남아 화장실에 들어가 세수들까지 했다. 이후 솔트레이크시티로 가는 비행기를 타니 사방을 둘러봐도 동양 사람인 듯싶은 자들은 우리 가족 네 명뿐이고, 한국어 안내 방송 말 한마디도 나오지 않는 기내에서 승무원에게 눈치껏 커피를 얻어 마시며 미국에 들어가 살게 되는 첫 통과절차를 마쳤다. 이것은 실수담이라기보다는 실수를 할까 태산 같은 걱정을 했는데, 하지 않아도 될 걱정을 과잉으로 한 게 큰 실수였다는 얘기다. 

이전 01화 해외여행 실수담을  시작하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