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안식년으로 프라하 카렐대학교의 한국학과를 가게 됐을 때. 그곳의 학과장이 프라하에 온 한국 교수들이 대부분 투어리스트(관광객)처럼 행세하다 간다고 얘기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내심 뜨끔하기도 했지만 그 점은 염려 말라고 했다.
프라하가 유럽에서는 사통팔달이라 여행할 기회가 많지만, 주구장창 여행을 다닐 힘도 없거니와 그럴 돈도 없다고 얘기해줬다. 사실 특별한 취미가 없는 나로서는 그쪽 대학을 가봐야 일상의 생활은 주로 도서관을 다니는 것 말고 딱히 할 일이 없었다.
지인들 중에 체코 사람들은 어느 나라 말을 하냐고 묻는 이들이 있다. 당연히 체코 말을 한다. 하여 그곳 도서관에서는 체코어로 된 책을 읽어야 된다. 안식년을 준비하면서 체코어를 조금 공부했지만 그 정도 실력으론 체코 책을 읽어낼 턱이 없었다.
단지 내가 방문한 카렐대학교 동아시아학과는, 체코가 공산주의 시절 북한의 김일성대학 그리고 사회과학원과 활발한 학술교류를 하여, 북한 책들 특히 1950년대 북한에서 출간된 책들을 다수 소장하고 있다.
이 책들은 우리나라에서도 서울 서초동 국립도서관의 북한자료센터를 방문하면 대부분 볼 수 있다. 물론 가끔씩 남한에서 볼 수 없는 자료들이 그곳에 있기는 했다. 노느니 염불이라고 안식년을 이용해 편안한 마음으로 시간이 되는 만큼 이들 책을 보고 올 수 있었다.
혹시 북한 책들이 체코의 국립도서관에도 있지 않나 싶어 찾아가 봤더니, 북한 책은 내가 방문한 대학과 동양학 연구소 두 군데에만 있다고 했다.
동양학 연구소의 한국학 도서실도 가봤는데 그곳은 사서가 없어 연구소 직원과 약속해서 책을 봐야 하는 불편함이 있어 자주 이용하지는 못했다. 단 그곳에는 남한 책들도 많이 있었다. 대부분 남한의 대기업들이 기증한 것인데, 북한 책들과 같이 체계를 갖춰 들여온 건 아니었다.
카렐대학교의 캠퍼스는 한국의 대학들과 같이 한데 모여 있는 것이 아니라, 프라하 시내에 여섯 군데 정도로 흩어져 있다. 내가 방문한 동아시아학과가 있는 캠퍼스는 관광객이 가장 많이 몰려드는 올드타운의 시계탑 광장 인근에 있다.
건물이 세워진 곳이 수백 년 전의 터인지라 캠퍼스가 아주 협소하여, 동아시아학과 도서관은 도서관이라 할 것도 없이 그저 강의실만 한 크기의 도서실이다. 여름에 도서실 창문을 열어놓으면 관광객들이 끌고 가는 캐리어가 프라하의 돌 깔린 길에 부딪혀 나는 소리로 요란했다.
학교 측은 그 도서실에 아주 허름한 책걸상을 하나 마련해줬다. 아내도 나와 함께 북한의 동화책을 읽고 싶다고 해서, 학교 쪽에서 책상을 일부러 하나 더 마련해줬는데, 아내는 며칠 나오다 도중하차했다.
북한 책들은 장소도 협소하고 서가가 부족해 서고에다 쌓아 놓았는데, 내가 이를 열람할 수 있도록 한국학과 학생들이 도와줬다. 도와준 학생들 중에는 한국 대학에 교환학생으로 갔다 온 학생도 있었다.
이들은 유서 깊고 아름다운 프라하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건만 오히려 신촌과 홍대 앞에서 놀았던 한국 생활을 잊지 못했다. 청와대 인근 인왕산에서의 하이킹이 좋았다는 학생도 있었다.
2.
나는 카렐 대학 도서관을 다니면서 소소한 논문 하나도 준비할 수 있었지만, 앞서 얘기했듯이 아내는 카렐 대학의 도서관을 계속 이용하지는 못했다. 나야 직장과 관련되어 방문한 곳이지만 아내는 그곳을 출입하면서 받아야 할 외국인 선생과 학생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웠으리라.
학교 도서관 말고 일반인들도 이용하는 프라하 시립 도서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 도서관은 알려고 해서 안 건 아니다. 프라하 현지에 일정한 집 주소를 두고 있는 외국인들은 현지인들과 마찬가지로 1년짜리 교통카드를 구입한다.
이 교통카드가 2014년 당시 20만 원 남짓 했는데, 이것으로 지하철, 버스, 트램 등 프라하의 모든 대중교통을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다. 대단히 싼 셈인데 이 카드로 시립도서관에서 책을 대출할 수도 있다.
시립 도서관은 카프카 생가 건물과도 가까이 있다. 역시 올드타운에 있어 오고 가는 관광객들에 파묻혀 첨엔 그것이 도서관인 지도 몰랐다. 화장실을 유료로 사용해야 하는 프라하 중심지에서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이기도 하다. 관광객이 이를 알 리는 만무이다.
도서관 안의 카페테리아도 저렴하고 그곳에선 여러 가지 문화행사도 있어 우리 부부는 여길 자주 이용했다. 그러나 이 도서관 역시 체코 말로 된 책이 대부분이다. 나머지는 영어나 독일어 등의 책이니 설사 책을 대출받을 수 있다 할지라도 별 소용이 없었다.
아내는 그나마 체코의 자연풍경과 건축물을 그린 화집들을 대출해 그림 공부를 해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도서관에는 비단 책만이 아니라 영화와 음악 시디도 대출이 된다는 걸 알게 됐다.
체코 영화도 보고 싶었지만 그쪽에서는 방화인지라 영어 자막이 없어 보기 어려웠다. 대부분은 영어 자막이 있는 할리우드 영화들을 빌려 보았다.
처음 대출해서 본 것은 미국서 제작한 것이긴 하지만 체코에서 프랑스로 망명한 작가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프라하의 봄)』을 영화로 만든 작품이었다.
쿤데라의 원작과는 느낌이 여러 가지로 달랐지만 수많은 첨탑들이 솟은 프라하의 하늘 아래서 이 영화를 보니 느낌이 새로웠다. 특히 이 영화의 OST로 나오는 체코 작곡가 야나체크의 음악이 옛날에는 생소했는데 역시 그곳에서 들으니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D. H. 로런스의 소설 『채털리 부인의 사랑』은, 프랑스에서 제작한 영화로 보았는데 안타깝게도 배우들의 대사는 프랑스어고 자막은 아뿔싸 체코어로 돼있어 제대로 된 감상을 하지는 못했다.
순전히 ‘그림’으로만 본 셈이다. 벌거벗은 남녀 주인공이 들꽃이 핀 야생의 풍경과 어우러져 아주 아름다웠다. 무삭제 판이었는데 이를 보면서 영상을 가리고 삭제하는 것이 오히려 영화를 외설로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쿤데라가 “세상에서 가장 에로틱한 도시”라 부른 프라하에서 보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3.
초등학교 시절 2부제 수업을 할 때 오후반 수업이면, 아버지가 교사로 재직한 학교의 도서관을 출근하는 아버지를 쫓아서 가곤 했다. 그 학교의 도서관은 당시에는 전국에서도 몇 안 되는 ‘개가식’ 도서관이었는데 그곳에 가면 늘 가슴이 뛰었다.
그렇다고 내가 그곳에서 책을 아주 열심히 읽었던 건 아니다. 단지 그 많은 책들이 언제든지 꺼내볼 수 있게 내 눈앞에 펼쳐 있다는 것이 무슨 놀이터같이 느껴지게 했다. 나에게 도서관은 평생을 통해 놀이터였는데 프라하에서도 도서관은 역시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