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임인년 호랑이해를 기리는 호랑이 그림 특별 전시회가 열리고 있어 가봤다. 주로 조선시대의 그림, 그중 이건희 컬렉션에서 나온 그림을 비롯해 민화에 등장하는 호랑이 그림들이 중심으로 전시됐다.
호랑이를 가리키는 순우리말은 범이다. 그림 속 범들을 보면서 범에는 점박이 표범이 있는가 하면 줄무늬 범이 있다는 사실을 새삼 알았다. 민화에 그려진 여러 호랑이들을 보면서 역시 호랑이는 조선 시대 사람들의 일상과 아주 가까이 있다는 점을 느꼈다.
육당 최남선은,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겠다는 호랑이 얘기부터 시작해 곶감을 무서워하거나 토끼와 여우에게 속아 넘어가는 호랑이 얘기에 이르기까지, “범 이야기 수효가 많기로 조선만 한 데가 없다.”라고 했다.
심지어 중국 작가 루쉰은 조선인을 만나면 호랑이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했을 정도라 한다. 많은 할머니들이 손주들에게 수많은 호랑이 이야기들을 전해준 것이 다 이유가 있는 셈이다. 조선 시대의 풍속과 역사를 흥미진진하게 그린 홍명희의 역사소설 『임꺽정』에도 역시 호랑이 이야기가 등장한다.
조선 시대만 해도 호환(虎患)이 자주 있었나 보다. 예전에 불법 비디오 단속을 할 때 “호환, 마마, 전쟁보다 더 무섭다”는 그 호환 말이다. 『임꺽정』에는 호환이 발생하면 당시 관청에서 어떻게 대처했는지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등장한다.
『임꺽정』을 쓴 홍명희의 아버지 홍범식은, 한일합방 당시 금산 군수였다. 나라가 망하자 그는 소나무 가지에 목을 매 자결한다. 홍명희는 후일 자식들에게 “나는 『임꺽정』을 쓴 작가도 아니고 학자도 아니다. 나는 홍범식의 아들, 애국자다.”라고 말했다 한다.
홍명희는 명문 양반가의 자제로 태어나 식민지화되기 전의 조선 시대의 풍속을 몸소 체험했기에 자신 있게 조선 시대의 생활과 풍속을 그려낼 수 있었는데 여기 호랑이 이야기도 그런 일면을 잘 보여준다.
2.
호환 이야기는 『임꺽정』 중에서도 <의형제 편>에 나온다. 황해도 봉산 읍에서 황주 읍으로 넘어가는 칠십 리 길 중 거의 오십 리는 산골길로 돼있는데 그 두 고을의 접경에 호랑이가 잘 나다녔다. 어느 날 황주 읍내 사람 하나가 봉산 읍내로 볼일 보러 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대낮에 호환을 당한다.
호환을 당한 이의 늙은 어미는 이틀 사흘을 눈이 빠지도록 자식을 기다리다가 마침내 호환에 간 것을 알고 상성이 다 돼 황주 관가에 들어가 목사에게 자식의 원수를 갚아달라고 애걸복걸한다.
황주 목사는 노파의 청을 이리저리 피하다가 호환이 일어난 곳을 물어보고는 그곳은 봉산 땅이고, “범은 사람과 달라서 봉산서 황주로 잡아 넘길 수가 없으니 봉산 관가에 가서 발괄을 해보라”라고 떠넘긴다.
봉산 군수 역시 처음에는 난감해하다가 봉산서 황주 가는 길이 어차피 중국으로 가는 사신들의 왕래가 지나는 길이기도 하여 호랑이를 잡도록 분부한다. 관령을 받은 사냥꾼들이 뻔질나게 돌아다니며 호랑이가 다닐 만한 목목이 덫을 해놓고 군데군데 함정을 파놓으나 한 마리도 잡지 못한다.
군수는 사냥꾼들에게만 맡겨둘 수가 없어 다시 건장한 장교를 열 명 뽑아서 사냥꾼들을 지휘하여 호랑이를 열흘 안으로 잡아들이게 한다. 장교들이 병기고에서 활과 창들을 갖춰 떼를 지어 호환이 난 곳으로 몰려간다.
봉산 장교들이 호랑이를 잡자면 병기를 들고 다른 골로 월경할 수도 있는데 이는 불법인지라, 먼저 그쪽 고을로 문서를 보내 놓고 사냥을 떠난다.
이윽고 샘가에서 짐승의 발자국을 발견하고 이를 쫓아 호랑이 굴에 이른다. 굴 근처에서 찢어진 옷가지들과 부서진 뼈마디들을 찾고 굴속에 있던 호랑이 새끼 한 마리만 건져 먼저 관가로 보낸다.
호랑이 굴에서 수습한 해골과 뼈마디는 아들 잃은 노파에게 건네주었으나, 새끼를 잃은 어미 호랑이는 봉산·황주 두 골로 넘나들며 소동을 일으킨다. 근처 동네에서는 호랑이 쫓을 징·꽹과리를 안 가지고는 낮에 들일들을 나가지 못하고 호망(虎網)을 치고서도 호랑이 소리에 밤에 잠들을 자지 못한다.
호랑이는 여러 마을을 횡행하며 도야지도 물어가고 송아지도 물어 죽인다. 호랑이에게 또 물려 죽은 한 역졸의 참혹한 송장이 발견되는데, 송장 옆에는 역졸이 쓰는 거먹(검정) 초립이 떨어져 있었다.
결국 돌팔매 재주가 귀신같다는 배돌석이라는 건달이, 죽은 역졸의 자리를 꿰차고자 호랑이 사냥에 나선다. 산 잔등을 타고 누운 호랑이에게로 돌덩이를 던지고 벌린 아가리에 돌멩이가 들어가 박히게 한 후 어쩔 줄 모르는 호랑이를 창 든 이들이 와서 찔러 죽인다. 이 부분은 허구가 많이 개입된 듯싶다.
죽은 호랑이를 떠메고 오니 마을 사람들이 호랑이 구경들을 하러 쏟아져 오는데, 호랑이가 벌써 썩기 시작해서 그대로 더 두면 가죽을 못 쓰게 되겠기에 사람들에게 제대로 구경도 못 시키고 거피(去皮)를 시킨다.
황주 목사는 호랑이 잡은 이야기를 자세히 묻고는 목사의 체면을 지키느라고 잡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이에게 무명 한 필, 다른 사냥꾼들에게 무명 반 필씩 상급을 줌으로써 호랑이 소동은 끝난다.
3.
홍명희의 『임꺽정』에는 위의 이야기 말고도 호랑이에 관련된 많은 일화와 관련 속담들이 나온다. 호랑이 얘기도 얘기지만, 이런 이야기들을 통해 눈앞에 선연하게 펼쳐지는 조선 시대의 풍경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감상한 호랑이 그림도 감탄을 금치 못하지만 홍명희가 글로 그린 호랑이의 자태도 그림들 뺨친다.
“호랑이가 낮잠을 자다가 깨었든지 부스스 일어나서 앞뒤 다리를 펼 수 있는 대로 펴서 허리를 잘록하게 하고 주홍 같은 아가리를 벌릴 때로 벌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