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꺽정』, “우리 문학사상의 1만 2천 봉”

by 양문규

가끔 우리 과 학생들이 한국문학도로서 꼭 읽어야 할 소설을 물어올 때가 있다. 그러면 늘 홍명희의 『임꺽정』(1928~1940)을 말해준다. 작가가 생소해 이름만 보고 여자인 줄 알았다는 얘기도 있다. 홍명희는 충북 괴산이 고향이나 월북했고, 내가 대학 다닐 때만 해도 그가 쓴 『임꺽정』은 책 자체를 구경하지 못했다.


그는 1948년 남한의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해, 김구와 함께 남북 연석회의에 참가하러 북쪽에 갔다가 그냥 거기 눌러앉는다. 홍명희 모친은 한국전쟁 직후 보도연맹원 학살 때 희생된다. 지금도 괴산서 치르는 홍명희 문학제 행사가 그리 순탄치 않은 것으로 아는데, 언젠가 학생들과 함께 그의 고택 생가를 찾았더니, 홍명희는 오간 데 없고 한일합방 당시 자결 순국한 그의 아버지 홍범식의 이름만 보였다.


『임꺽정』에 대한 찬사는 수도 없이 많으나, 그중 내 맘에 쏙 드는 것이 소설가이자 평론가인 김남천이 한 “우리 문학사상의 1만 2천 봉”이라는 찬사다, 초등학교 때 음악 교과서에 강소천 작사, 나운영 작곡의 “금강산”이라는 동요가 있었다. 그 동요는 싱커페이션(당김음)이 들어가 있어 아주 흥겹게 부르게 되는 노래인데, “금강산 찾아가자 일 만 이 천봉”으로 시작해, “볼수록 아름답고 신기하구나.”라는 가사가 이어진다. 『임꺽정』이야말로 ‘금강산의 일만 이천 봉’과 같아서, 몇 번을 읽어도 질리기는커녕, ‘읽으면 읽을수록 아름답고 신기하다’는 말을 꼭 하고 싶다.


학생들에게 이런 찬사를 늘어놓으면, 개중 도서관에 『임꺽정』을 빌리러 가는 학생도 있나 보다. 평소에는 읽을 생각도 않다가, 중간 또는 기말시험을 앞두고 불현듯이 독서열이 솟는다고 한다. 그래서 이번만큼은 시험이 끝나고 나면 꼭 읽으리라 다짐하지만 막상 그때가 되면 어디 놀러 갈 궁리를 하느라고 또 흐지부지 된다나. 그럼에도 방학 때 모처럼 맘먹고 『임꺽정』을 빌리러 도서관에 가면 꼭 1권이 대출되어 있어(사계절 간, 전체 10권) 그냥 포기해버린단다. 그러나 『임꺽정』은 작품 구조 상 중간 어디서부터 읽어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내가 우리 역사소설을 읽기 시작한 건 중학교 때부터인데, 이광수, 김동인, 박종화 등의 것을 주로 읽었다. 특히 우리나라 TV 사극의 전범이 되는 박종화의 역사소설을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임꺽정』을 읽고 나서는 이런 소설들이 다소 유치해 보이고, 사극은 더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닌 게 아니라 박종화는 홍명희의 임꺽정을 탐독하면서 그 영향을 절대적으로 받았다고 술회한다. 그러나 영향을 제대로 잘 받은 것 같지는 않다.


『임꺽정』에서 사약 도사가 사약을 내리는 장면이 나온다. 사약에 독한 술을 타서 약기운을 금방 퍼지게 한다. 그래도 쉽게 죽지 않아 약사발을 연거푸 안기다 진력이 나면 수건, 말고삐, 활시위 같은 물건으로 목을 졸라 죽인다. 반면 TV 사극을 보면 사약받은 자가 곧바로 피를 토하며 고꾸라져 죽는다. 사극이 고증을 게을리했다기보다는 시청자들에게 극적 효과를 노려 그리 꾸며낸 것이리라. 『임꺽정』과 비슷한 성향의 작품으로 황석영의 걸작 역사소설 『장길산』이 있다. 『장길산』 역시 흥미진진한 소설임에 틀림없지만, 『임꺽정』 같이 “볼수록 아름답고 신기하지”는 않다.


『임꺽정』 은 『조선일보』에 1928년부터 시작, 13년의 세월에 걸쳐 연재했음에도, 결국은 미완으로 끝났다. 원고지 1만 3천 매 이상의 분량이고, 미완성 부분을 전체의 십 분의 일 정도라고 추정해볼 때, 완성을 했다면 조정래의 대하 역사소설 『태백산맥』의 분량과 엇비슷하지 않았을까 싶다.


『임꺽정』은 뭐 때문에 그렇게 볼수록 아름답고 신기한 작품일까? 이에 대한 답변이 솔직히 나로서는 역부족이다. 그냥 읽어 보는 게 정답이라 말하고 싶은데, 홍명희와 『임꺽정』을 평생 연구한 강영주 교수의 저작도 함께 참고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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