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외국 여행을 다니면서 주로 주머니 사정에 맞춰 음식점을 이용하다 보면 감자를 재료로 한 음식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하다못해 전 세계 어디에나 있는 맥도널드를 가면 감자튀김(프렌치프라이)이 있지 않은가?
감자튀김이라고 다 똑같은 건 아닌가 보다. 여행 책자를 보면 모스크바의 유명 관광지 아르바트 골목에 있는 맥도널드의 감자튀김이 유명하다고 한다. 내 또래의 사람들은 패스트푸드를 근본적으로 백안시하기에 다 그게 그것이지 싶어 아예 눈도 안 둔다.
그럼에도 대학생 딸과 벨기에를 여행할 때는 그 나라 감자튀김이 프렌치프라이의 원조라면서 하도 염불을 외기에 먹어봤다. 먹고 난 후 솔직한 나의 감상은, 거기까지 가서 그걸 왜 먹는지 하는 것이다. 알고 보니 그 원조 설도 분명한 것은 아니었다.
영국이나 캐나다 같은 나라에서는 대중적 음식인 피시 앤 칩스를 먹게 되면 생선과 함께 나오는 엄청난 양의 감자 칩들을 늘 힘겹게 먹어야 했다.
서유럽 나라들에서도 감자 음식이 많지만, 역시 감자는 독일을 비롯해서 중동부 유럽이 단연 강세다. 독일 음식은 조금 과장을 보탠다면 감자와 돼지고기라는 이분법으로 설명될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독일에도 감자는 샐러드, 수프, 으깬 감자, 튀긴 감자 등 여러 종류로 요리되기는 한다. 그중 독일과 바로 그 이웃나라인 체코에서는 고기 수육이나 돼지 바비큐(콜레뇨)에 곁들여서 나오는 감자 덤플링이 좀 특이하다면 특이할 만한 감자 요리다.
감자 덤플링은 동유럽 나라에서는 자주 만나게 되는 음식인데 감자를 으깨 다른 재료와 섞어 만두 모양으로 빚은 음식이다. 그 덤플링은, 고기와 함께 먹기도 하지만 때로는 염소젖으로 만든 페타 치즈 등과 함께 간단하게 먹기도 한다.
유럽을 여행하면서 먹었던 감자 음식들 중 그 맛이 기억에 남는 것은 특별히 없다. 한마디로 맛이 별로였다는 얘기일 게다. 스위스에서 뢰스티라는 우리의 바삭한 감자전과 비슷한 음식이 있긴 한데 그것은 독일보다는 프랑스 쪽에서 온 요리가 아닌지 싶다.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이라는 그림도 있거니와, 18~19세기 감자를 주식으로 했던 아일랜드에서 감자 흉년으로 빚어진 수차례 비극적인 대기근의 역사를 생각하면, 감자라는 음식은 어쩐지 신산한 인간 삶과 가난을 떠올리게 한다.
2.
김동인의 단편소설 <감자>(1925)는 제목이 아예 ‘감자’다. 그런데 이 소설에 등장하는 감자는 실제 감자가 아니라 고구마라는 주장이 있다. 우선, 감자라는 말이 과거에는 지방에 따라 고구마를 의미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뭣보다도 김동인 스스로가 소설 <감자>를 “내 작품 고구마”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작품 안에도 고구마라는 강력한 증거가 있다. “빈민굴 여인들은 가을이 되면 지나(중국)인 밭에 감자며 배추를 도적질 하러 간다.”라는 구절이 바로 그것이다. 배추와 고구마의 수확 시기는 10월이지만 감자는 6월이다. 작품 속 복녀가 훔친 건 고구마인 것이다.
‘복녀’가 만일 감자가 아닌 고구마를 훔치다가 왕 서방에게 몸을 팔았다면, 그녀의 행동이 과연 절박한 가난의 상황에서 빚어진 것이냐는 점에 의문을 갖게 된다. 감자가 구황작물로서의 상징성이 더 크기 때문이다. 아닌 말로 이 작품의 제목이 <고구마>이었으면 작품의 인상이 확 달라졌을 것이다.
그래서 소설 <감자>는 가난보다는 성적으로 방탕한 복녀의 타락을 그리는 데 초점을 맞춘 작품이 아니냐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어쨌든 김동인의 <감자>는 여러모로 찝찝한 느낌이 나는 작품이다.
3.
강원도가 감자의 주요 산지라서 그렇기도 하지만, 강원도 사람들을 얕잡아 ‘감자바위’라고 부르기도 한다. 나는 강원도 직장에서 평생을 보내다 퇴직을 하여 강원도 출신 작가들이 쓴 작품은 아무래도 한 번을 더 보게 된다.
김별아의 <대관령>(1996)은 1987년 6월 항쟁 이후 일어난 민주화 과정에서 강릉 지역 젊은이들이 겪었던 열망과 좌절을 그린다. 정치적 격동기 속에 세상을 떠난 친구의 기일을 맞아 서울 살던 젊은이들은 그리운 고향 강릉을 찾아 돌아온다.
고향의 감자 꽃이 다시금 흐드러져, 계절은 어느덧 봄이었다. 그들은 뒷마당에서 부글부글 거품을 물고 썩어가던 감자 독들을 생각한다. 고약스러운 냄새를 풍기며 썩어들던 애감자들이 따끈하고 맛난 감자떡으로 빚어진다는 사실은 신기하기만 했다,
시커멓게 썩은 감자들을 고운 채에 거르고 또 걸러 하얗고 뽀얀 감자가루를 만들던 어머니의 세월은 오래 거르고 삭인 감자가루처럼 끈기 진 것이었다. 회색빛 감자떡은 고와 보이지는 않지만, 떡소가 비칠 듯이 반질반질한 떡 피와 찰진 끈기에서 오는 묘한 단맛이 있다.
나는 강원도에서 태어난 사람은 아니지만 인생의 절반을 그곳에서 보냈기에 감자떡, 감자옹심이, 감자전 등에서 나름의 추억과 이야기들을 떠올리고 더불어 그 음식의 맛을 기억하고 있다.
유럽에서 먹었던 감자 음식이 맛이 없었던 게 아닐 것이다. 그 음식들 역시 그곳을 사는 사람들의 추억과 사연이 담겨있을 터, 이를 알지도 못하고 먹는 사람에게 그것이 어떻게 매력적인 맛으로 다가올 수 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