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체코에 있는 온천지 중 가장 유명한 온천 도시가 카를로비바리다. 이 도시는 18세기 후반부터 온천도시로 명성을 떨쳤는데, 지금도 이 도시에 가면 프라하 뺨칠 정도로 호화찬란한 궁전풍의 건물과 보석 가게, 명품 브랜드 등의 옷 가게가 즐비하게 있다.
칸이나 베네치아 같이 관광지로서의 명성에 힘입어, 이곳에서도 유명한 국제영화제가 열리는데 우리나라의 <박하사탕>은 카를로비바리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기도 했다. 내가 관광할 때는 라일락꽃이 활짝 핀 궁전 풍의 건물 뜰에 마련된 세트장에서 영화 촬영이 이뤄지고도 있었다.
과거 이곳으로 유럽의 저명한 인사들이 많이 방문했다. 그중에는 왕후와 귀족들도 있었지만 베토벤, 브람스, 쇼팽, 푸시킨, 실러 같은 예술가들도 있었다. 사회주의 사상가이자 혁명가였던 칼 마르크스도 이곳에서 요양 차 머물렀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이가 이곳을 수차례 방문했던 괴테다. 괴테는 피부병, 심장병 등의 지병으로 이곳을 정기적으로 방문하기도 했거니와, 그의 삶과 문학에서 중요한 방점을 찍는 이탈리아 여행도 이곳에서 생일 축하연을 치른 후 새벽에 몰래 여기를 빠져나가면서부터 시작된다.
괴테가 이곳 카를스바트(카를로비바리의 독일 이름)와 인근의 테플리츠 온천지를 중심으로 베토벤과 예술적 교류를 가졌던 일은, 로맹 롤랑의 <괴테와 베토벤>이라는 책에서 잘 그려지고 있다. 괴테는 이곳에서 유명한(?) 스캔들을 일으키기도 했는데, 74살의 그가 19살 소녀 울리케와의 사랑에 빠져 청혼을 한 것이다.
물론 소녀 어머니의 완곡한 거절로 그의 구애는 실패로 끝나지만, 보헤미아 산맥자락에 둘러싸인 아름다운 풍광과 함께 들떠 있는 온천장 분위기가 다소 주책없어 보이긴 하지만 괴테 같은 노인네에게도 그런 춘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옛날에는 카를로비바리에 괴테의 기념비도 있었나 보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체코가 공산주의 국가가 되고 이곳에 살던 많은 독일인들이 추방되면서, 그의 동상도 사라졌다고 한다. 지금은 그의 흉상만이 남아 있다.
2.
온천장에는 욕탕이 있고 이를 중심으로 숙박업소도 발달하며 자연스럽게 레저의 중심지가 된다. 룰렛 게임 등의 도박이나 매춘이 이뤄지면서 온천은 “색정가들의 휴양지”라는 좋지 않은 명성도 얻는다.
식민지 시기 우리 작가들의 소설에서도 온천장은 등장인물들의 로맨스가 이뤄지는, 아니 그보다는 불륜이나 외도를 저지르는 무대로 자주 등장한다. 천재 작가 이상은 결핵 치료 차 황해도 백천 온천을 갔다가 기생 금홍을 만난다. 이후 서울로 올라와 금홍과의 동거와 이별을 다룬 소설이 <날개> 삼부작이다.
<메밀꽃 필 무렵>의 작가 이효석은 함경북도 변방 경성(鏡城)의 농업학교에서 영어교사로 근무한 적이 있다. 그는 당시 인근에 있던 주을 온천을 자주 찾는다. 이효석은 피서도 바다로 가기보다는 온천으로 가서 탕을 하며 쉬었다.
욕실에서 홀로 몸을 쉬면서 진한 녹차와 라듐 과자(온천의 라듐 성분이 든 과자인데 당시 만병통치약으로 선전됐다고 한다.)를 즐기곤 했다. 그는 가을에 주을 온천을 가서는, 파리는 가보지도 않았을 터인데, 그곳이 파리의 가을과 베를렌의 시 「가을의 노래」를 생각나게 한다고도 했다.
이효석은 주을 온천을 무대로 실화인지 소설인지 잘 분간이 안 되는 <이등변 삼각형의 경우>(1934)라는 작품을 썼다. 제목에도 암시되듯이 온천 여관서 시중을 드는 두 여급과 주인공 사이에 일어났던 삼각관계가 그려진다. 남성의 성적 판타지를 자극하는 작품이라고나 할까?
이 작품에서 주인공은 호색한 돈·판과도 같이 온천을 찾은 백계 러시아 여인의 자태를 흥미롭게 훔쳐보는 장면도 나온다. 또 다른 작품에서는 목욕을 하는 러시아 여인의 나신을 상상하기도 한다.
3.
괴테나 이효석 문학에는 남주인공의 여성 편력이 소재로 자주 등장한다. 괴테의 작품에는 미뇽이라는 12살 남짓 소녀의 열병과도 같은 사랑이 그려지기도 하고, 외삼촌이 조카와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도 등장한다.
괴테의 로맨스는 우리 같은 유교적 사회에서는 잘 이해가 안 가지만, 이성, 규율과 대립되는 질풍노도와도 같은 낭만적 감성의 원천으로서 사랑을 강조코자 한 것 같다. 이에 반해 이효석 문학의 여성은, 열정적 사랑의 주체라기보다는 거개가 남성의 희롱의 대상으로 타자화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