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처럼 날씨가 변화무쌍한 곳도 없다. 날씨가 개였는가 하면 비가 내리고, 비가 내렸나 보면 또 곧 갠다. 그뿐이 아니다. 하루에 사계절의 날씨가 다 있어 7월 하순 글래스고를 찾았을 때 시내에는 반팔을 입은 남자들이 있는가 하면 모피코트를 입은 여인도 있었다.
글래스고 시내 관광을 시작하자마자 비가 내리기 시작하여 비를 긋기 위해 무작정 버스를 타고 시내에서 얼마큼 가야 하는 글래스고 대학을 찾았다. 아마 이 대학이 버스의 종점이었던 듯싶었는데, 대학을 도착하니 다행히도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날이 갰다.
글래스고 대학은 500년이 넘은 영국 전체에서는 네 번째, 스코틀랜드에서는 두 번째로 오래된 대학이다. 스코틀랜드 특유의 박공지붕과 이끼 낀 고색창연한 건물, 아름드리의 나무들, 이런 모든 것들은 오랜 세월이 아니면 만들어낼 수 없는 풍경들이었다.
1.
한가로우면서도 한편으론 설레는 마음을 갖고 캠퍼스 이곳저곳 건물을 기웃거리던 중 미처 알고 갔던 건 아닌데, 고딕의 아치 양식 회랑으로 수도원의 분위기를 자아내는 아담 스미스 기념관을 발견했다.
건물에 아담 스미스를 알리는 특별한 표지는 없었는데,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그의 동상이 있었다. 아담 스미스는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나 글래스고 대학과 옥스퍼드대에서 공부한 뒤 글래스고 대학에서 논리학, 도덕철학을 가르치고 훗날 이 대학의 학장도 지냈다. 지금도 이곳 사회과학대에 아담 스미스 연구기금이 조성돼 그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아담 스미스는 <국부론>(1776)에서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다. 국가가 누구나 잘 살고 싶어 하는 인간의 본능적 욕구를 억누르면, 국가는 오히려 빈곤해질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차라리 각자의 이기심을 자연스럽게 놔둬야 사회 전체의 부가 늘어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아담 스미스의 이러한 자유방임주의 사상은 19세기 들어 영국 정부의 정책에 적극적으로 반영되면서 산업혁명은 가속 페달을 밟아 영국 근대 자본주의의 성취를 이루게 한다. 엥겔스 같은 이는 아담 스미스 등의 학설이 기본적으로 영국 국민을 죽이는 사유재산 제도 배후에 있는 탐욕스러운 동기를 위선적으로 합리화하는 것이라면서 맹공을 가했다.
2.
고색창연한 글래스고 대학의 건물과는 달리 아주 모던한 모습을 한 대학본부 건물로 향하니 그 중심에 헌터리언 박물관이 있었다. 일층은 홀로 돼있고 이층은 홀을 내려다보는 난간 회랑으로 이뤄져 있는데 그다지 큰 박물관은 아니었다.
글래스고 대학 의학 교수였던 윌리엄 헌터의 이름을 딴 박물관으로, 그가 운영한 해부학 교실의 소장품이 주요 전시물이었다. 영국의 탐험가로 호주와 뉴질랜드 등을 발견한 제임스 쿡 선장이 태평양 항해에서 수집해온 인류학적 소장품 등도 있었다.
역시 뜻하지 않게 그 박물관에서는 제임스 와트의 발명품들을 볼 수 있었다. 와트는 글래스고 대학의 교수는 아니었고 이 대학에서 실험기구를 수리하는 기술 장인으로 일을 했다.
그는 이 일을 하면서 대학의 탁월한 과학자들을 만나게 되고 이들에게 증기의 물리학을 배운다. 그는 증기기관을 범용으로 소형화해 이를 모든 기계와 접목시킨다. 와트가 발명한 증기기관의 보급은 새로운 에너지인 화석연료의 시대가 시작되게 한다.
영국 산업혁명이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작업기보다 그 작업기를 지속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든 증기기관과 값싼 석탄이었다는 주장도 있듯이, 와트는 영국의 공업화를 도약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글래스고는 산업혁명의 발상지이며 대영제국 시기에는 런던 다음으로 큰 도시였다. 토인비는 스미스의 <국부론>과 와트의 증기기관이 인류로 하여금 구세계를 마감하고 신세계로 나아가게 했다고 한다. 글래스고 도처에 써 붙여진 “People make Glasgow”라는 캐치 프레이즈가 실감이 났다.
3.
글래스고 대학에서 이 두 사람을 만나고 대학 바깥으로 나오니, 맞은편에 스페인 풍의 바로크 건물로 된 캘빈 그로브 미술관과 박물관이 있어 가봤다. 글래스고 대학은 검정과 회색의 건물이었는데, 캘빈 그로브 박물관은 붉은색의 건물이라 둘이 대조적이었다.
이 건물 이름은 역시 글래스고 대학의 물리학 교수였던 켈빈 경(본명은 윌리엄 톰슨)의 이름에서 따왔다. 켈빈은 절대온도 K의 발명자라 하는데 나로선 그게 뭔지 요령부득이다. 과학사의 설명을 들어보았다. 산업혁명 이후 공업화가 진행되면서 과학자들의 중요한 관심은 새로운 에너지원의 발견과 그것으로 대량의 기술적 성과를 이루는 것이었다.
산업혁명 이전까지 에너지원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주로 불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자연의 힘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보이지 않으면서도 효능을 발휘하는 힘, 사람들이 상상도 못 한 여러 가지 기능과 작용을 하는 힘을 획득하게 된다.
값싼 에너지원을 획득할 통로가 충분치 않을 때 사회는 발전의 병목현상이란 위험에 직면한다. 인구 증가를 따라잡아야 할 새로운 이용 가능한 에너지원의 증가가 긴급히 요구된 것이다. 켈빈의 전자기학, 열역학 등은 이러한 새로운 에너지원을 찾아가는 실마리였다.
글래스고 여행에서 우연히 만난 세 사람은 영국이 산업혁명과 공업화를 거쳐 근대 자본주의를 성취하는데 사회과학, 기술과학, 자연과학 각각의 분야에서 활약한 이들이다. 인문학을 공부한 나로선 더 이상 구체적인 건 알 수 없으나 여행을 통해 나름 많은 공부를 한 셈이다.
새로운 에너지와 동력기관으로 무장한 유럽은 비서구의 세계를 향해 돌진을 한다. 서구의 문화영웅들은 더 이상 무위도식하는 명상가나 과묵한 학자가 아니라 새로운 에너지를 갖추고 정력적이고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실천가, 피로를 모르는 정복자, 독재적이고 오만한 기업 경영자다.
이들은 가는 곳마다 개인적 패기와 활력을 통해 서방세계 힘의 본질을 보여줘 찬탄과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서구의 전형적인 특징은 새로운 에너지로 무장하여 ‘젊다는 것’이지만 비유럽 세계 자신의 전통과 통치자는 ‘늙고’, 수동적이며 무기력하다는 인식을 갖는다.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들 역시 나라를 부강하게 하려면 잠자는 에너지를 깨우는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한 임무라고 생각한다. 육당 최남선은 자신이 창간한 잡지의 제목을 ‘소년’에 이어 ‘청춘’이라고 이름 붙인다. 동경 유학생들이 창간한 잡지 이름은 ‘학지광(學之光)’이다. 光(빛)은 어둠을 이기는 새로운 전기 에너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