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홋카이도(북해도)에서 생산되는 농축산물은 일본 안에서도 그 품질을 최고로 친다는 예기를 들었다. 우유는 아주 고소했는데 옛날 초등학교 시절 집으로 배달되던 병 유유의 맛이 떠올랐다. 우유 맛이 인상 깊어 홋카이도를 떠날 때는 삿포로 농업학교에서 만들었다는 우유 쿠키를 여행 선물로 사 오기도 했다.
식당서 나오는 찐 호박과 감자도 달았다. 일본산 감자는 통상 5월부터 9월까지 수확된다고 하는데 80%가 홋카이도에서 생산된다고 한다. 감자의 질이 좋은 건지, ‘오코노미야키’라는 전분이 많이 섞인 감자를 빚어 부쳐놓은 일본식 빈대떡도 맛있었다.
홋카이도는 자연이 풍부하기에 일본의 식량 공급지로서의 중심 역할을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이곳을 여행하다 보면 어디를 가나 광활한 밭이 펼쳐진다. 내륙으로 가면 쌀농사 짓는 넓은 평야가 펼쳐지는가 하면 사과 밭과 차 밭 등이 있고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패치워크 식의 거대한 꽃밭들도 전개된다.
홋카이도가 일본 농산물의 중심지로 개발되기 시작하는 것은 불과 19세기 말 이후부터라고 한다. 메이지 시대 홋카이도 개척을 주도한 이들은 에도 시대가 끝난 뒤 직업을 잃고 개별적으로 활로를 찾아 나서야 했던 사무라이(무사) 계급들이었다.
이들은 바다를 건너 홋카이도로 가서 신천지를 건설했는데, 무사들은 이 미개척지에서 칼 대신 괭이질을 하며 홋카이도의 광활한 농지를 개간한다. 북해도 쓰가루 지역의 아오모리 사과도 원래는 무사들이 심은 것이라고 한다.
무사들은 서양 선교사들에 의해 전래된 사과를 재배했다. 지금까지는 전혀 보지도 못한 식물재배였다. 그러나 무사들은 여러 차례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마침내 사과 재배 방법을 터득한다. 현재 아오모리 사과 산지의 기초는 이들이 닦은 것이다.
내 개인적으로 홋카이도 농산물 중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추운 북해도에 걸맞지 않은 지중해성 과일 멜론이다. 관광객을 유치하는 상업적인 멜론 농장도 곳곳에 있었다. 이름 하여 ‘멜론 하우스’라는 곳에서는 멜론은 물론 아이스크림에 멜론을 얹어 파는 등 각종 멜론에 관련된 상품들을 판매했다.
그러나 정작 그곳에서는 멜론을 사지도 먹지도 않았다. 차를 몰고 가다 노지 밭에서 멜론을 내다 파는 할머니를 발견했다. “기쁨과 멜론은 철을 기다려야 한다.”는 이탈리아 속담도 있듯이 밭에서 아주 잘 익어 신선한 멜론 한 개를 일천 엔에 구입했다.
호텔로 가져와 먹었는데 프런트에다 과일 자를 칼을 부탁했더니 주방에서 썰어 예쁜 접시에 가져다줬다. 그 멜론은, 멜론의 향과 맛이란 무엇인지를 가르쳐주겠다는 멜론이었는데, 작가 이상이 죽어가면서 왜 멜론이 먹고 싶다고 얘기했는지 이해가 갈 정도였다.
2.
이상은 일본의 동경제대 부속병원에서 사망했다. 고은이 쓴 <이상 평전>을 읽으면 이상은 죽기 전에 “레몬 향기가 맡고 싶소. 참 레몬을 사다 주면 좋겠소마는…”라고 하면서, 유학생 누군가가 사다 준 레몬 한 개를 손으로 만지고 코에 대다가 죽었다고 한다.
그런데 임종 시 그 자리에 있었던 이상의 아내 변동림에 따르면 이상이 먹고 싶었던 것은 레몬이 아니라 ‘셈비까야의 메롱’ 즉 멜론이었다고 한다. 센비키야는 일본의 과일 전문 가게로 지금도 있는데, 변동림은 실제 멜론을 사러 갔었다고 한다.
변동림의 말이 맞는다면 사람들은 멜론을 레몬으로 혼동한 셈이다. 레몬으로 와전돼 얘기가 전해졌을 법도 한 게.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서 미뇽이라는 소녀가 부르는 노래 중, “당신은 아시나요, 저 레몬 꽃 피는 나라?/그늘진 잎 속에서 금빛 오렌지 빛나고” 하는 구절이 있어, 레몬은 이상적이고 낭만적인 남국의 세계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북해도의 멜론을 먹어보니 폐병으로 고통 속에 죽어간 이상이 마지막에 이 멜론의 시원하고 달콤한 맛이 절실
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멜론은 이미 1930년대 일본에서는 인기 있는 과일로 유행했던 듯싶다. 일본 멜론의 역사는 긴 셈이다.
그러고 저러고 이상은 몸도 시원치 않은데 일본에는 왜 갔고 더욱이나 가서는 무슨 일이 있었기에 엉뚱하게도 사상 혐의로 일본 경찰에 피체됐던가!? 이후 그는 병보석으로 출감하나 결국은 병상에서 멜론을 찾으며 죽음에 이르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