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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작가 이상을 만났습니다

by 양문규

1.

뉴욕은 유명한 미술관 천지다. 그중 구겐하임 미술관은 다른 미술관들과 비교해 겉모습부터가 좀 특이하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파리의 루브르 풍의 건물이라면, 모마나 휘트니 미술관은 맨해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던 또는 포스트모던 한 건물이다.


구겐하임은 물론 고전적인 유럽의 건물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꼭 모더니즘의 건물이라고 얘기하기도 어렵다. 넓은 의미에서는 모더니즘 범주에 들어가겠지만 달팽이를 연상시키는 건물이, 그 건물 자체로 특이한 하나의 작품임을 보여준다.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이 미술관이 고대 바빌로니아의 사원인 지구라트를 모방했다고 한다. 지구라트 사원은 피라미드처럼 산의 형세와 비슷해 상층부로 갈수록 점점 뾰족해지는 신전이다. 사람들은 성경에 등장하는 바벨탑이 이랬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그리니치1.jpg 미술관보다 미술관 앞의 아이스크림 차량을 찍느라고 그만 ㅋ


구겐하임은 외양도 특이하지만 그 내부의 관람도 나선형의 경사로를 타고 내려오면서 이뤄져 특이하다. 컬렉션도 나름 특이한 게, 칸딘스키가 없는 구겐하임은 무의미하다고 할 정도로 러시아 출신 추상화가 칸딘스키 컬렉션이 독보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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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렉션.jpg 구겐하임의 전시장, 사진 초점이 안 맞았다 (위), 구겐하임의 칸딘스키 컬렉션


내가 구겐하임을 방문했던 2016년 7월에는 ‘모홀리 나기’(1895~1946)의 회고전이 열리고 있었다. 모홀리 나기는 헝가리 출신 화가다. 원래 독일의 조형 학교인 바우하우스의 교수로 있으면서 산업과 예술의 결합을 주창하여 현대 산업디자인 예술을 선도해나갔던 이다.


유대인이었던 모홀리 나기는 히틀러의 탄압으로 미국으로 이주하여 시카고에서 뉴 바우하우스를 설립한다. 그는 문자 디자인 등의 작업을 통해 현대 잡지와 광고 이미지 등 그래픽 작업에 영향을 주는 등 미국 디자인 발전에 크게 기여한다.


사진 영역에서도 포토그램, 포토몽타주 등 다양한 실험을 계속해, 기록성이 우선시 되던 사진이라는 매체를 새로운 미학적 표현매체로 인정받게 한다. 내가 구겐하임을 방문했을 때는 그의 사진 작품뿐만 아니라, 그가 창시한 움직이는 조각인 키네틱 조각이 전시되고 있었다.


모홀리 나기의 이 작품은 미술과 기술을 결합하여 실내공간에서 빛을 조정해 생기는 키네틱 조각의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문 대통령의 아들이 한다는 미디어아트라는 것도 거슬러 올라가면 이런 데서 연유한 것이리라.


구겐하임 미술관은 모홀리 나기의 자료 도서실도 갖추고 있는 등 그를 아주 중요한 현대 예술가로 떠받들고 있었다. 한국문학 전공자로서 이런 분야에는 문외한일 수밖에 없는 내가 모홀리 나기를 알고 있는 것은 식민지 시대 우리의 아방가르드 작가 이상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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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실.jpg 모홀리 나기의 키네틱 조각(상)과 그의 자료실


2.

「오감도」·「날개」의 작가 이상은 경성고공 건축과를 나왔다. 자신의 학년에선 유일한 조선인이었던 그는 일본인 동급생들을 제치고 수석으로 졸업, 총독부 내무국 건설과에서도 일했다. 이상은 당시 일본어로 발간되는 『조선과 건축』 표지 디자인 공모전에 응모해 당선되기도 했다.


이상은 이 잡지 매호마다 일본어로 권두언을 써서 싣기도 하는데, 그 글 중의 하나에서 모홀리 나기를 소개하고 있다. 이상은 모홀리 나기를 단순히 지식 전달의 차원에서 소개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문학작품에서 그와 관련된 구체적인 작업을 해나간다.


이상은, 신문‧잡지 등에 게재된 박태원 소설과 자신의 소설 「날개」 등의 삽화를 손수 그린다. 삽화는 다소 추상적 형태의 그림인데 이를 판화의 형식으로 표현해낸다. 이상은 한국 근대 디자인 역사에서 일러스트레이션에 판화를 매체로 사용한 최초의 인물인 셈이다.


이상은 죽기 직전엔 보성 고등학교 1년 후배였던 김기림의 최초 시집 『기상도』(1936) 책을 디자인하기도 한다. 장시의 형식을 빌린 『기상도』는 현대 자본주의 문명을 이색적인 소재와 기발한 착상으로 풍자한 시다.


나는 이 시집 『기상도』를 영인본으로만 확인했기 때문에 이 책의 온전한 모습을 알고 있지는 못하다. 단 미국 워싱턴 주립대학 도서관의 한국인 사서가 이 시집 원본을 직접 보고 이야기한 내용을 듣고 어림잡아 짐작할 뿐이다.


그 사서는 이 시집은 한마디로 세련과 ‘시크’함이 물씬 풍기는데, 한국 북 아트 계보에 윗자리를 차지할 만하다고 했다. 책 표지와 속지의 색감과 디자인에서 받은 현대적 감각에 반해서 보고 또 보았다고 한다.


내가 그나마 영인본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표제지의 책 제목의 활자 크기가 장을 넘기면서 예컨대 圖象氣 〈 圖象氣 하면서 커지는 방식이다. 활자 크기를 변화시켜 리듬감을 느끼게 한 것이다.


이는 정지된 리듬이 아닌 활동적 리듬이 현대 예술의 중요한 요소라고 선언한 모홀리 나기를 생각하게 한다. 김기림은, 정지용이 한국 최초의 모더니스트라면 이상은 ‘최후의 모더니스트’라고 했다. 이상은 모더니즘 너머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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