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 고향 인천엔 자유공원이 있다. 그곳에 맥아더 장군 동상이 있어 맥아더 공원이라고도 불렀다. 맥아더가 죽은 이후에는 이 공원서 인천 교회들이 연합으로 추모예배를 가지기도 했다. 그러나 해방 전 태어났던 부모님 세대는 원래 이 공원을 서공원 또는 만국공원이라고 불렀다.
서공원이야 당연히 서해를 바라보는 공원이라 그랬을 것이고, 만국공원은 인천이 개항을 하면서 이 지역에 외국인들이 머무는 조계지가 생기고, 세계 여러 나라의 외교관이 일하는 관련 시설들이 있었기 때문에 ‘만국’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때부터는 당연히 자유공원이라 불렸다. 한국전쟁 중 공원 바로 앞에 보이는 월미도를 통해 맥아더 장군이 지휘하는 그 유명한 인천 상륙작전이 이뤄졌기에 하마터면 잃어버렸을 뻔한 대한의 자유를 되찾았음을 기려 자유공원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맥아더 장군은 태평양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한국을 위기에서 구한 전쟁영웅이지만, 한편으론 인천 상륙작전 이후 삼팔선을 뚫고 북진하던 중 개마고원과 장진호 일대에 매복하고 있던 중공군의 포위망 안으로 유인돼 미군 역사상 최악의 패전을 당하기도 한다.
2.
우화소설 『금수회의록』(1908)으로 유명한 안국선이 번역‧소개한 역사소설 『비율빈 전사』(1907)가 있다. ‘비율빈’은 현재의 필리핀을 가리킨다. 이 책은 19세기 말 스페인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벌였던 필리핀인들의 민족해방운동의 역사를 그린다.
당시 필리핀은 스페인에 대항하기 위해 미국의 도움을 받지만, 막상 필리핀이 독립을 얻게 되자 미국은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 작품은 이에 필리핀이 다시 미국에 맹렬히 저항하고 미국이 이를 모질게 탄압하여 필리핀 사람 수십 만 명이 목숨을 잃는 과정을 그린다.
미국이 당시 필리핀에 집착한 것은 해양 제국으로의 발돋움을 위해서 태평양 상의 교두보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태평양으로 나오려는 러시아를 막고 일본의 조선 점령을 인정하는 대신 미국의 필리핀 점령을 인정하는 가스라-테프트 조약은 이러한 사정 아래 이뤄진 것이다.
개화기 지식인 안국선이 『비율빈 전사』를 번역한 것은, 당시로선 머나먼 나라 필리핀 사태가 우리와 무관한 일이 아니었음을 알았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당시 필리핀에서 미군을 이끌며 필리핀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진압한 이가 더글러스 맥아더의 아버지 아서 맥아더 장군이다.
이후 미국은, 태평양 전쟁 당시 진주만을 기습하면서 초전에 승승장구했던 일본에게 필리핀을 빼앗긴다. 당시 아버지를 이어 필리핀을 통치하던 맥아더는 일본에 쫓겨 필리핀을 떠나면서 꼭 그곳으로 다시 돌아오겠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고 결국 태평양 전쟁을 승리로 이끈다.
맥아더는 필리핀을 탈환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일본 점령군 총사령관이 돼 일본 땅을 밟는다. 맥아더 장군 가문의 대를 걸친 필리핀-일본-한국으로 이어지는 끈질긴 인연은 어쩌면 미국이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걸쳐 시작된 제국으로 가는 필연의 길이기도 했다.
3.
맥아더는 점령기 일본에서 일본을 패전시킨 적국의 장군이지만 ‘백인 천황’으로 불리며, 일왕 이상의 권위를 가졌다고 한다. 일본의 점쟁이들이나 무당들 가운데 맥아더를 몸주신으로 받아들인 자들이 많았다고 하니 거의 신적 존재로까지 여겨진 셈이다.
일본 민중들이 점령군 수장인 맥아더를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짐작케 하는데, 심지어 부녀자들이 맥아더에게 보낸 편지들 가운데에는 ‘당신의 자식을 낳고 싶다’는 편지가 수다하게 발견된다고 한다.
그런데 그건 비단 일본에만 국한된 일은 아니었다. 한국에서도 옛날부터 중국의 관우나 우리나라의 최영, 임경업 장군을 신령으로 모시는 무당들이 있었지만, 한국전쟁 이후에는 급기야 맥아더 장군을 신령으로 모시는 무당들도 등장한다.
김소진 소설 『장석조네 사람들』(1995)에는 한 무당이 등장해, “나는 저 대동아전쟁 때 광막한 태평양을 한 손에 주름잡으면서 연합군 총사령관을 지내셔 전 세계를 악귀의 손에서 구출해내신 맥아더 장군을 신령으로 모신다.”라며 자신의 영검을 뽐내기도 한다.
요즘 집회에서 성조기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이들 무당이 연상되기도 한다. 맥아더 장군이 우리를 구해준 은인일 수도 있겠지만, 이에 앞서 맥아더 가문의 행적은 세계의 패권국가로 나가기 위한 미국 자신의 철저한 이해관계 안에 놓여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