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척의 슬픔, 쓰라림

정지용, 박완서, 그리고 나의 학부형

by 양문규

1.

정지용의 시 「유리창Ⅰ」은 시인이 자신의 어린 아들을 잃고 난 후의 슬픈 심정을 노래한 시라고 한다. 정지용 자신이 이러한 말을 한 적은 없고 그의 문우였던 박용철이 1935년 출간된 정지용 시집을 리뷰하면서 밝힌 내용이다.


박용철은 유리창 시에 나타난 아름답고도 슬픈 형상은, 어린 자식의 영혼이 가있을 곳을 얻지 못해 공중을 떠돌다가 그 모양을 얻어 다시 태어난 것이라고 했다. 이런 관점에서 이 시를 읽으면 좀 더 쉽게 공감할 수도 있을 듯싶다.


밤에 잠이 도대체 오지를 않아 유리 창가로 섰다. 창에는 차고 슬픈 성에가 어렸다. 입을 창에 갖다 대니 성에는 녹으면서 언 날개를 파닥거리는 새의 모양이 된다. 창으로는 물먹은 별이 보석처럼 와 박힌다. 죽은 애는 산새처럼 날아갔고 아이의 영혼은 별이 되어 돌아왔다.


죽은 자식을 그리워하면서 외롭기 한이 없으나, 유리창에서 그 자식을 황홀한 영상으로 만나게 되는 것이다. 시인은 슬픈 감정을 그대로 쏟아내는 대신, 그 감정을 최대한으로 절제하여 이를 아름다운 형상으로 만들어낸다.


2.

자식이 부모 앞서 죽는 일을 참척이라고 한다. 소설가 박완서는 참척의 쓰라림을 『한 말씀만 하소서』(1994)라는 작품에서 일기의 형식으로 그려낸다. 작가의 아들은 유수의 의과대학을 나와 수련의 과정을 밟던 기간 중 갑자기 세상을 떠난다.


당시는 마침 88 올림픽이 열리던 해였나 보다. 우리나라가 메달을 땄다고 사람들이 텔레비전 앞에서 환호하는 소리를 들으며 작가는 “내 아들이 없는데 축제가 있고 환호와 열광이 있는 세상과 내가 어찌 화해할 수 있을까”라며 세상을 원망한다.


수녀원으로 가 얼마간 정양을 하면서 조금씩 밥맛을 찾기 시작한다. 작가는 자신의 마음과는 별개로 끼니때마다 먹고살고 싶어 하는 육신에 대해 하염없는 슬픔과 배신감을 느낀다. 심지어는 사람이 짐승과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하는 자괴감마저 밀려온다.


그 후 작가는 조금씩 다시 글쓰기를 시작했다. 작가는 이를 아들이 없는 세상이지만 다시 세상을 사랑하게 됐다는 증거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작가는 주님이 다시 이 세상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심을 감사하나 너무 집착하게는 말아 달라고 간구한다.


3.

남자 고등학교에서 교편생활을 잠깐 한 적이 있다. 학생 중엔 얌전하고 공부도 잘하나 성격이 다소 소극적인 K라는 학생이 있었다. K의 아버지는 개업의였는데 저 남녘서 잘 되던 병원을 정리하고 서울로 병원을 옮겨 이사할 정도로 자식에 대한 교육열이 높은 양반이었다.


언젠가는 K가 시험 성적이 잘 나와 그 아버지가 선생님들을 식사 자리에 초대했다. K의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당시 같은 학교를 다녔던 K의 형인 큰 아들은 사회성이 뛰어나 어떤 전공을 해도 괜찮지만 K는 그렇지 못해 의사라는 전문직을 택했으면 하는 바람을 얘기했다.


그 후 나는 대학 직장을 얻어 강릉으로 오고 K에 대한 생각도 흐지부지 잊어버렸다. 어느 날 K에게 연락이 왔는데, 그는 아버지 희망대로 의대를 진학했고 방학을 이용해 내 집을 놀러 오겠다고 했다.


터덜터덜 대고 찾아 온 K를 하룻밤 재워주고 밥도 먹여 주고 바닷가에도 데리고 나갔다. 그 녀석 선생님 집을 방문하면서 아무리 학생 신분이라도 그렇지 주스 한 상자 들고 오지 않아, 말이 대학생이지 아직 철부지이구나 하는 생각도 했었다.


그러고선 또 소식이 끊어졌었다. 이번에는 뜻밖에도 K의 아버지한테 연락이 왔다. K의 안부를 물었더니 K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청천벽력의 소식을 들었다. 군의관 후보생으로 입대하여 수류탄 투척 훈련을 하던 중 사고를 당했고 그 후 대전의 국립묘지에 묻혔다고 한다.


그만 말문이 막혀 버렸는데, 아버지는 강릉으로 우정 나를 찾아와서 만나고 싶다고 했다. 아버지는 죽은 아들의 일기를 정리하던 중 강릉의 선생님 집을 찾아갔다는 내용을 봤고, 그러고 보니 자기도 과거에 아들에게 그런 얘기를 얼핏 들었던 것이 기억이 났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 때문에 강릉까지 나를 만나러 오는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아주 잠깐의 만남을 가졌는데 아버지는 죽은 아들이 그렇게 보고 싶다고 했다. 너무나 그리운 나머지 잠이 들면 꿈속에서라도 만날까 싶은데 어쩌면 그리 무정하게도 한 번도 나타나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아들을 알고 있는 나를 만나서 함께 아들 얘기라도 나누면, 혹시 아들을 만나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어 왔다고 한다. 너무도 애절한 얘기이지만 그 때문에 대관령 넘어 강릉까지 나를 찾아왔다는 것이 나로서는 안타깝기 짝이 없었다.


그 후 나는 K의 아버지에게 연락 한 번 한다 해놓고 결국은 못 했다. 시인과 작가는 시로 또는 글쓰기로 참척의 슬픔을 넘어섰는데, K의 아버지는 어떻게 넘어섰는지 알 길이 없다. 그런 슬픔에 작은 위로조차 한번 제대로 못한 나의 공감 능력의 부족함이 새삼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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