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구에서는 19세기에 성숙했고 한국에서는 192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사실주의(리얼리즘) 소설은 현실비판을 중요한 특징으로 한다. 사실주의 소설은 현실의 문제점을 잘 드러내는 사회적 위치(계급)에 놓인 사람들을 주요한 인물로 삼는다.
이들 인물은 크게 둘로 나뉘는데, 그 하나는 도시빈민 또는 가난한 농민‧노동자들이다. 「운수 좋은 날」(현진건)은, 가난한 인력거꾼 ‘김 첨지’가 어떠한 노력을 해도 운수가 좋을 수 없음을 보여주면서, 그의 불행은 결코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구조의 문제임을 고발한다.
또 다른 하나는 소시민 또는 지식인 계급의 인물이다. 「만세전」(염상섭)의 동경 유학생 주인공은 식민지 현실에 대한 불만과 비판적 태도를 가졌음에도, 현실의 변화를 위한 구체적 실천은 하지 않고 방관적 태도를 보여주면서 현실이 가진 여러 복잡한 문제들을 드러낸다.
내 개인적으로는 「운수 좋은 날」의 도시 빈민보다는, 「만세전」 등에 등장하는 소시민 또는 소시민 지식인이 아무래도 나의 처지와 심정을 보다 잘 반영하는 것 같아 이에 좀 더 공감을 하는 경우가 많다.
2.
내가 대학으로 전임 발령을 받고 간 때는 1987년 6월 민주화 운동 직후의 시기였다. 오랜 기간의 독재정권이 종식되고 사회 각 분야에서 민주화의 요구가 거세게 일어나고 있었다. 그중의 하나로 1989년 전교조를 결성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당국은 전교조를 불법단체로 규정하고 그에 가입하는 교사들에 대한 강력한 법적 제재 조치를 예고했다. 그리하여 전교조가 창립되기 전부터 이미 교육 현장에선 대단히 혼란스러운 사태가 발생하고 있었다.
나는 대학에 가자마자 ‘민주화를 위한 전국 교수협의회’(민교협)에 가입한 상태였다. 민교협 본부는, 초중등 교원들이 전교조 문제로 신분상의 불이익을 받을 상황에 처하자, 이들을 지지하는 성명서도 내고 전교조 옵서버 자격으로 참여해 그들과 행동을 같이 하자는 결정을 내렸다.
지금은 대학 교수들이 성명서를 내봐야 당국에서는 눈 하나 깜짝 안 할 정도로 별 의미가 없지만, 당시만 해도 그러한 정치적 성격을 띠고 있는 성명서를 작성하고 주도하는 것은 물론, 이에 동조, 서명하는 것조차 잘못될 경우 신분상의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다.
이윽고 우리 학교 민교협 선생도 전교조 문제로 서명을 받고자 나를 찾아왔다. 나는 아주 곤혹스러운 마음으로 이를 거절했다. 전임강사 신분이었던 나는 바로 다음 학기 교육부로부터 조교수로의 승진 및 재임용 심사를 받아야 할 처지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그런 사정을 구차히 얘기하면서 양해를 구했는데, 그 선생은 나한테 적잖이 실망했다고 했다. 내가 지역 언론에 기고한 글을 보면서 ‘정의로운’(?)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겁도 많을 뿐 아니라, 직접 대놓고 말은 안 했으나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 위인이라는 투였다.
그때 내 심정은 순간의 치욕이 장차 겪을 큰 곤경보다는 차라리 낫다는 거였다. 결국 우리 학교 민교협 선생 20여 명 중 2명만 서명했다. 나 말고 다른 선생들도 가지각색의 명분으로 거절했는데, 그중 하나는 전교조 취지에는 동의하나 조직 활동은 성향에 안 맞는다는 거였다.
역시 당국은 강경하게 나갔다. 교육부 장관은 전교조에 가입한 대학교수 명단을 수합해 이를 각 대학에 통보하면서 해당 대학 총장에게 이들을 징계하여 교육부에 그 결과 보고를 제출하라고 했다.
우리 민교협 선생들은 그 두 명 선생의 안위가 너무 걱정이 되었다. 특히 우리들은 비겁하게 빠져 버렸는데 그
들이 당할 불이익을 생각하니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어 몇 명의 선생과 함께 총장을 만나러 갔다.
총장에게 교육부의 징계 요청을 거부하고 두 분을 보호해달라는 부탁을 했다. 그런 행동으로나마 조금만치 양심의 가책을 덜고 싶었다. 총장은 뜻하지 않게 빙긋이 웃었다. 총장 왈, 선생님들 걱정하지 말라며 교육부로부터 우리 학교에는 해당자가 없다는 통고를 받았다는 거였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당장 안도의 한숨으로 가슴을 쓸어내리긴 했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는 알 수 없었고 이후 그 두 분의 선생에게 그와 관련된 질문을 캐묻지 못했다. 마치 그것은 바로 나 자신이 답변을 해야 하는 아주 곤란하고 부끄러운 질문 같이 생각돼서…
3.
이후 전교조 선생들이 겪었던 고통과 수난의 역사는 여기서 더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우리 학교 민교협 선생들은 한국 사회와 정치의 민주화란 이름을 걸고 모였지만, 그 생각이나 행동은 각자 다르기도 했고 한편으론 넓게 보면 비슷한 범주 안에 놓여 있기도 한 셈이었다.
사실주의 소설은 그 사회의 가장 고통받는 계층을 통해 현실을 비판, 고발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소시민 지식인들의 여러 모습을 통해 사회를 개혁하는 데서 나타나는 지난한 과정들을 보여주면서 우리 자신과 사회를 비판적으로 성찰하게 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1987년 6월 민주화 운동 이후 30년을 훨씬 넘어가고 있지만, 민주주의로의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우리 사실주의 소설의 명장면을 읽을 때마다, 우리 사회가 결국은 민주주의를 향한 도정에 놓여 있다는 기대와 믿음을 갖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