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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마와 숙녀」, 애송시 하나 남기는 게 시인의 꿈!?

by 양문규

국립대학에 재직한 관계로 지역 방송통신대학서 실시하는 출석 수업에 협력 강사로 출강한 적이 많았다. 일반 대학과 달리 방송대 학생들 구성원은 다양한 이력과 직업들을 가지고 있는데 수업 열의가 일반 대학 학생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대단했다.


물론 그러한 열의가 수업을 잘 이해하고 있는지와 꼭 비례하지는 않았다. 수업시간에 강의에 대한 리액션(?)이 워낙 좋아 강의 내용을 잘 이해하는 줄 알았는데, 답안지는 신통치 않을 때도 많았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했으나 어쨌든 학생들의 공부 열의는 인정할 만했다.


언젠가 방송대 강의 당시 출석을 부르다 보니 지역뿐 아니라 중앙 문단에서도 굉장히 이름이 나있는 시인의 이름이 눈에 띄었다. 동명이인이려니 생각했고 그 이가 뭐가 아쉬워 이 수업을 듣나 했는데, 그 양반 나름 대학 졸업장이 필요한 상황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당시 방송대에서 강의를 의뢰한 내용은 1950년대 시와 시인들이고, 교재에는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1955년)도 실려 있었다. 「목마와 숙녀」는 내가 대학 다니던 시절 여대생들에게 대단히 인기가 있었던 시였다.


특히 모 대중가수가 이 시를 낭송한 낭송 테이프가 인기를 끌었는데, 미팅 나가서 내가 국문과 학생임을 알리면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시가 「목마와 숙녀」라고 말하는 여학생들이 있는가 하면, 개중에는 그 시를 전부 외워 낭송을 해서 깜짝 놀란 적도 있다.


나는 「목마와 숙녀」 시를 꽤 부정적으로 본다. 물론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볍게 부서진다.” 따위의 참신한 표현의 구절도 있으나, 막상 이 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무슨 말을 하는지 해석이 잘 안 되는 부분이 많고 뭣보다도 잔뜩 멋을 부린 시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시의 화자는 술을 마시며 버지니아 울프와 소녀의 두 죽음의 의미를 생각한다고 하지만, 한편으론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거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적이라며 인생에 대해 초탈한 자세를 보여 오히려 죽음이라는 극한 상황을 ‘겉멋’을 부리며 즐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박인환의 친구인 시인 김수영은 박인환의 이러한 겉멋을 아주 싫어했다. 김수영은, 박인환이 자신이 가장 경멸한 이들 중 한 사람이라고 했는데 그 이유는 그처럼 경박하고 값싼 유행의 숭배자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목마와 숙녀」를 박인환의 가장 근사한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김수영 자신의 눈에는 ‘목마’나 ‘숙녀’도 낡은 말이며 박인환이 이것을 쓰기 20년 전에 무수히 써먹은 낡은 말들이라고 비웃는다.


나는 김수영의 생각에 동의하며 박인환을 비판적으로 이야기하던 중, 문득 그 시인 학생이 눈에 들어왔다. 그 시인은 눈초리가 매섭고 수업 시간에 표정 변화도 없어 사실 조심스러웠던 차라, 잠시 주춤하며 나의 박인환 비판에 대한 그의 의견을 물었다.


그는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 눈치였지만 그래도 명색이 자기는 학생이고 나는 선생이니 마지못해 답변을 한 것 같았다. 그는 「목마와 숙녀」라는 시의 내용이 어떠냐를 떠나 시인들은 일단은 그렇게 많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애송시 하나를 남기는 것이 평생의 꿈이라 했다.


그 시인의 대답은 어찌 보면 우문현답이었는지도 모른다. 학부 시절 비평론 수업 시간에 교수님이 작가나 시인이 되려다 실패한 이가 비평가가 되고, 비평가가 되려다 실패한 이가 문학 선생이 된다 했는데, 그런 점에서 나는 시인이나 작가들에게 늘 콤플렉스를 갖고 있다.


18세기 영국시인 알렉산더 포프는, “멍청이 시인 하나가 멍청이 산문가 열 명을 낳는다.”라고 말했다. 못난 시인 하나를 놓고 열 명이나 되는 이른바 평론가들이 제각기 지껄여 대는 것을 꼬집은 것인데, 문학 선생인 나도 그런 멍청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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