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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암서 길을 잃다

by 양문규

1.

대학신문사 지도교수를 할 때다. 6월 하순 종강이 되면서 학생들과 설악산으로 엠티를 갔었다. 백담사에서 출발해 수렴동 대피소에서 하룻밤 자고 다음날 봉정암으로 해서 중청 산장을 가 둘째 날 밤을 자고, 다음날 설악산 소공원으로 내려오는 이박삼일의 일정이었다.


중청 산장까지는 산행이 예정대로 이뤄졌다. 이제 마지막 날 하산하는 일만 남았는데 희운각 대피소서 잠시 쉰 후 일을 그만 그르쳤다. 그곳서 하산하는 길은 내리막이 아니라 잠시 오르막길로 갔다 내려가는 건데, 학생들이나 나나 산에는 초짜라 그냥 내리막길로 들어섰다.


뭔가 잘못됐다 싶으면 빨리 돌아서야 하는데 역시 초짜들은 그런 판단을 못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길도 등산로이기는 하지만 비가 오든지 하면 끊어지는 길이었다. 길은 어둑해지고 비는 억수로 내리고 결국은 불어난 계곡의 물로 길이 사라져 오도 가도 못하게 됐다.


6월 하순이지만 산속인 데다 해가 떨어지고 비를 쫄딱 맞고 보니 실제로 이빨이 부딪치며 소리가 날 정도로 몸이 떨렸다. 산에서 조난당하는 일이 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는 휴대폰도 없던 시절이었고 여학생들은 다 울상이 됐다.


다행히 근처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고, 개와 함께 산중 약초꾼이 나타났다. 그이는, 우리가 강릉에서 온 대학생들이라니 어떻게 지도 한 장 안 들고 산을 다니며, 산에 대해 이리도 무지할 수 있냐면서 한껏 비웃었다. 나는 학생들 틈에 숨어서 선생임을 내색도 못했다.


여학생들은 약초꾼이 머무는 동굴에서 묵고, 나와 남학생들은 그의 도움으로 불도 피우고 텐트를 쳐 하룻밤을 더 산에서 머물러야 했다. 우리 일행은 그날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가던 셈이었는데, 덕분(?)에 백담사의 또 하나의 말사인 오세암 밑에서 하룻밤을 더 자게 되었다.


금강산은 아름다우나 장엄함이 없고, 지리산은 장엄하지만 아름답지 않은데, 설악산은 아름다우면서도 장엄하다고 한다. 다음날 오세암으로 올라 멀리 공룡능선(당시 폐쇄돼있었다.)을 보면서 마등령을 넘는데 비록 고생은 했지만 설악산이 아름답고 웅장하다는 말을 실감했다.


2.

이러한 설악산의 위용이 선승이자, 시인이며, 혁명가인 한용운을 탄생시켰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한용운은 18세에 오세암에 들어가(1897년) 그곳에서 불목하니 일을 한 것이 인연이 되어 불교 공부를 시작한다.


26세에 출가를 단행해(1905년) 정식 백담사의 중이 되는데 이후 오세암에서 88편의 연작시로 이뤄진 <님의 침묵>을 쓰기 시작해, 1925년 역시 설악산 신흥사에서 탈고를 하게 된다. 그의 나이 46세일 때였는데 <님의 침묵>은 그의 첫 시집이자 마지막 시집이 됐다.


설악산은 <님의 침묵>의 산실인 셈이고, 그것이 그의 문학박물관을 강원도 인제에 있게 한 이유이기도 하다. 세간에 알려지기론 한용운이 설악산의 절로 출가를 하게 된 이유가, 그의 집안이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했다가 풍비박산이 됐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실제 그의 아버지는 동학군이 아니라 오히려 하급 무관으로 토벌대에 참여했고 동학군을 잔인하게 다뤘다는 설도 있다. 이에 소년 한용운은 충격을 받아 입산했다는 것이다. 어쩌면 한용운은 평생을 죄의식에 사로잡혀 살았을지도 모른다.


아버지의 세계를 인정하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농민군을 지지하지도 못하는 상황서 세상을 등지고 출가를 선택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시는 혁명가 시인 치고는 늘 버림받은 여성이 연시를 쓰는 형식으로 이뤄져 있다. 그래서 신파의 느낌도 난다.


“아아, 잊히지 않는 생각보다/잊고자 하는 생각이 더욱 괴롭습니다.” (「사랑의 측량」), "정말로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 사람을 미워하겠습니다. 그 사람을 미워하는 것은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의 한 부분입니다.”(「행복」) 연애편지에 써도 될 듯싶게 간지럽다.


그러나 그의 시가 연시로만 끝나지 않는 것은 선승으로서의 내공과 혁명가로서의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인생이란 도덕, 윤리가 가르치는 올바른 방향으로만 진행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삶은 절망적 상황과 부닥칠 때도 많은데 여기서 문학은 역설을 만들어낸다.


「당신을 보았습니다」에서 당신이 곁에 있을 때는 당신을 정작 볼 수 없었다. 그런데 당신이 떠나고 난 뒤에야 비로소 당신을 보게 되는 역설적 상황을 체험한다. 당신이 떠나고 난 후, 가난과 고통의 깊은 밑바닥으로 떨어져, 쏟아지는 슬픔 속에서 당신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설악산 백담사 담장 길을 걸어가노라면 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뒤를 돌아보면, “푸른 산 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는 만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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