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발트 삼국 중 가장 밑에 있는 나라가 리투아니아인데 그 수도는 빌뉴스이다. 라트비아 리가에서 리투아니아 빌뉴스행 버스를 탄 건 주말이 시작되는 금요일 오후였다. 버스는 만원이었고, 그간 발트 삼국 여행 중에서는 겪지 않았던 체증으로 빌뉴스 가는 길이 꽤 막혔었다.
아니나 다를까 빌뉴스에 도착하니 구시가 광장의 카페들마다 주말을 즐기러 온 젊은이들로 가득 찼고 밤거리가 흥청댔다. 우리는 숙소 예약을 안 하고 간 탓에, 올드타운 입구인 ‘새벽의 문’ 밖 호스텔에 간신히 잠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흥청거렸던 것도 토요일 밤까지고 고요해진 일요일 아침에는 구시가 곳곳 교회 종탑서 주일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실로 오랜만에 듣는 교회 종소리였다. 이윽고 호스텔 창밖으로 교회를 가는 중년 또는 노부부의 평화스러운 모습들이 눈에 띄었다.
빌뉴스에는 가톨릭 성당이 많고 더러 러시아 정교 성당도 있다. 내 어린 시절에는 비록 도시에서 살았을지언정, 인근의 성당과 교회의 종소리를 듣고 새벽잠서 깼던 기억이 있다. 언제부터는 그것이 차임벨 소리로 바뀌더니 요즘은 그나마 사라진 것 같다.
어느 재미교포 시인은 “한국의 도시들은 묘지처럼 십자가 불빛으로 가득하다.”라고 말했다. 빌뉴스의 올드타운서 주일의 평화로운 종소리를 들으니 한국 교회가 크게 성장한 것은 맞지만 그건 양적 성장이고 세상과의 관계나 질적 성장에는 실패한 것 같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2.
빌뉴스는 과거 종교적 색채가 강한 도시였다. 이곳 인구의 삼분의 일에 이르는 숫자가 유대인이었던 시절이 있다. 유럽 전역에서 반유대주의 운동이 일어나면서 그때마다 유대인들은 조금씩 발트해 쪽으로 밀려왔는데, 리투아니아는 유대인 게토화의 최종 지점이었다.
빌뉴스는 이러한 역사적 배경서 18~19세기에 걸쳐 유대문화와 교육의 중심지로 알려지고, 유명한 종교 지도자들의 산실이 된다. 이 도시는 발트의 예루살렘이었다. 이곳의 ‘스트라순’이라는 도서관은 과거 유럽서 가장 풍부한 축에 속한 유대교 장서를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2차 대전이 발발하고 독일이 소련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위해 빌뉴스를 점령하면서 이곳 유대인 중 90%가 학살된다. 게다가 게슈타포는 이 도시의 유대인 학자들을 체포하고 이곳의 수많은 유대교 장서들 대부분을 불태우고 일부는 프랑크푸르트 연구소로 가져간다.
‘타자의 윤리학’으로 유명한 유대인 철학자 레비나스는 리투아니아 출생이다. 그의 본격적 공부는 프랑스서 이뤄지나 이곳 유대주의의 배경 속에서 성장한다. 그는 전쟁 중 운 좋게 살아남지만 가족들은 홀로코스트로 희생되고 이러한 가족사가 그의 사상에 큰 영향을 미친다.
3.
문학 공부를 한 이가 레비나스의 철학을 정연하게 설명하긴 어렵고, 레비나스가 좋아했다는 도스토옙스키 문학 중, 『백치』(1869년)의 주인공 미쉬낀 공작이라는 인물을 통해 어렴풋이나마 그의 철학을 이야기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미쉬낀 공작은 간질병을 앓는 건강치 못한 자로, 어찌 보면 신의 실패작 같은 인간이다. 일상사에선 순진하다 못해 ‘백치’와도 같은 행동을 하는데, 가령 사리사욕이 없는 그는 늘 소설 속 인물들의 뜨거운 증오 앞에서 무력하고, 스스로가 그들의 증오에 이용당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의 무력함이 가장 아름다움으로 나타나는 것은,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다. 자신과 결혼하려 했으나 배신을 하고 떠난 후 살해당한 고혹적 여인 나스따시야의 시체 옆에 누워, 그녀를 소유하고자 살인까지 저지른 연적 로고진의 망가진 영혼을 함께 위로할 때다.
이는 레비나스가 말한 “근원적 무력함”으로, 자아의 주도성을 완전히 벗어나 어떤 능력도, 어떤 주도성도 없으나 나를 나로부터 떼어내 타자에게 전적으로 끌고 가는 에로스를 가리킨다. 미쉬낀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윤리적 이상은 능동적이라기보다는 수동적 이상이다.
미쉬낀은 스스로 다음과 같이 토로하기도 한다. “가끔은 바보스러워지는 편이 좋을 때도, 아니 오히려 더 나을 경우도 있어요. 그러면 서로에게 보다 빨리 용서를 구하고 화해할 수도 있으니까요.”
빌뉴스의 주일 아침 날, 한국 교회가 의로움을 앞세워 세상 사람들을 심판하는 강한 교회이기보다는, 미쉬낀 공작같이 결코 덕성이라 부를 수는 없는, 약하고, 결핍돼있고, 애통해하면서, 체념과 정신적 평화 속에 타인을 향해 가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