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장편소설이라 부르는 이광수가 쓴 <무정>(1917년)의 주제는 모두 다 잘 알다시피 ‘자유연애’이다. 그런데 이 ‘자유’와 ‘연애’라는 말은 과거 조선 시대에는 없었던 말이다. 당연히 자유와 연애의 합성어인 ‘자유연애’라는 말도 없었다.
<춘향전> 원전에서 이도령과 춘향이 ‘사랑’을 나눴다는 말은 있을 수 있어도, ‘연애’를 했다는 말은 있을 수 없다. 이들 단어는 이광수가 작가 활동을 시작한 1910년대 즈음 등장한 말이다. 그것도 우리나라에서 자생한 말은 아니고 일본에서 수입된 일종의 외래어였다.
일본에서도 이 단어들은 메이지 유신 이후 서양어를 번역하는 과정서 탄생한다. 과거 일본에는 ‘love’에 해당하는 말로 ‘戀(연)’과 ‘愛(애)’라는 단어가 있었다. 그런데 전자는 남녀 간 상열지사를 의미했고, 후자는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을 의미하는 단어였다.
개화기 시대 일본의 지식인 특히 기독교 계통의 지식인들은, 봉건시대 사무라이와 게이샤가 벌이는 사랑(戀) 따위를 불결한 것으로 치부하고, 학생이나 새로운 지식인 계급 남녀 사이에 이뤄지는 플라토닉(정신적)한 사랑을 가리키기 위해 ‘연애’라는 말을 만들어낸다.
그래서인지 <무정>은 자유연애를 내세우지만, 작품 속 청춘남녀들이 벌이는 사랑은 사랑이라는 말을 붙이기 민망할 정도로 썰렁하다. 이 연애라는 단어가 애초 탄생하는 과정에서 사랑의 육체적 성격을 제거하고 정신적인 요소만을 강조하는 데서 빚어진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고급한(?) 성격의 ‘자유연애’는 새로운 지식인들이 하는 사랑이다. <무정>서 기생 박영채는 중학교 영어 교사 리형식을 만나러 가기 위해 기생 옷차림을 벗고 여학생 복장으로 바꿔 입는다. ‘자유연애’는 학생, 지식인들 사이서 이뤄진 일종의 문화적 유행 같은 것이었다.
<무정>만 놓고 보면, 식민지조선 지식인들의 중차대한 문제는, 구습애서 벗어나 자유연애를 실현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광수 스스로가 <무정> 집필 당시 신여성과 연애하며 조강지처와의 이혼문제로 엄청 고민 중이었다. 그러나 딴 이들도 자유연애가 그리 중요한 문제였을까?
김소월의 <옷과 밥과 자유>(1925년)라는 시가 있다. 소월은 주로 순수한 우리말을 시어로 사용했다. 그런데 이 시 제목에는 옷과 밥이라는 우리말과는 어울리지 않게 앞서 얘기했듯이 일본서 들어온 외래어 ‘자유’가 같이 배치돼 있다.
소월의 시는 대부분 이별의 한을 그리고 있어, 사람들은 그가 살면서 상당한 실연의 경험을 겪었던 것 아닌가 하는 짐작을 한다. 그래서 김용제의 소설 <소월 방랑기>(1959년)는 소월의 실연을 중심으로 그의 생애를 그리지만 이는 다 근거가 없는 이야기다.
그러면 도대체 소월 시는, 끊임없이 누구와 헤어진 데서, 또는 무엇을 상실한 데서 오는 절망과 비애를 노래하는 것일까? 어느 누구도 정답을 얘기할 수는 없지만 ‘동아일보’에 연달아 발표한 <나무리벌 노래>와 <옷과 밥과 자유>는 그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변을 주는 시다.
이 두 시는 1925년 가을 황해도 재령에 있는 동양척식주식회사 농장의 일본인 지주와 소작투쟁을 벌인 400여 명의 조선인 소작농민들이 쟁의에 실패하면서, 그중 370명이 고향을 떠나 만주로 이주해갈 수밖에 없었던 비극적 현실을 소재로 하고 있다.
<옷과 밥과 자유>는 마태복음 6장의 성경 말씀을 인용해 비유하는 데서 시작한다. 공중에 나는 새들조차 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먹이고 입히시는데, 왜 새들보다 더 귀한 사람들은 먹고 입을 게 없어서 고향산천과 이별하고 떠나야 되느냐는 서글픈 질문이다.
밭에는 밭곡식이 그득하고 논에는 물벼가 눌하게 익어서 수그러져 있는데. 그것을 누리지 못하고 고향 땅을 잃고 떠돌아야 되는 이들의 고통스럽고 서글픈 운명을 그리면서 소월은 사회적 모순을 고발하고 있다.
근데 시 제목은 왜 ‘옷과 밥과 자유’일까? 소월은 옷과 밥이라는 즉 입고 먹는 것과 같은 기본적인 삶의 조건이 실현되지 않는 상황에서, 당시 지식인들 사이에서 유행한 ‘자유’라는 말이 얼마나 허황되고 추상적인가를 비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광수의 ‘자유연애’라는 게 민중의 생활정서와는 얼마나 동떨어진 것인가! 일본서 들어온 말 ‘자유’는 liberty 또는 freedom의 번역어였다. 소월이 보기에 경제적으로 불평등한 자유는 공허한 개념이다. 현재도 ‘자유민주주의’라는 말은 수상쩍은 구석이 많은 말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