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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박경리가 사랑한 <토지>의 그 남자

by 양문규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는 방대한 분량의 소설인 만큼, 작품 속에는 무려 육칠백 명에 이르는 크고 작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토지>의 주인공은 잘 알다시피 최참판 집 딸 서희와, 최참판 집의 종으로 서희와 결혼하는 길상 내외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주인공 문제를 떠나, 작가 박경리가 이 작품 속에서 가장 사랑하고 관심을 가졌던 이, 아니 작가이기에 앞서 한 여인으로서 사랑하고 싶었던 남자는, 혹시 이용(李龍)이라는 인물이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해본다. 이용은 작품 안에서는 ‘용이 아재’라고 불리는 인물이다.


용이는 선대 때부터 최참판 집안서 소작 일을 해온 지극히 평범한 농민이다. 그러나 일본의 침탈로 나라가 망하자, 의병이나 독립운동에 나서는 이들을 보고 가슴 뜨거워하기도 하고 한때 그들을 쫓아가고자 했으나, 끝내 선산이 있는 고향산천을 떠나지 못한다.


용이는 열사도 아니고 우국지사도 아닌, 한갓 농부에 지나지 않았던 사나이다. 단지 그는 인간의 도리를 중시 여기고,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존엄성을 허물지 않으려고 애썼던 인물이다. 작가가 용이를 사랑했다면 오로지 그러한 점 때문이었을까?


용이에겐 세 명의 여인이 있다. 첫 번째 여인은 어려서부터 사랑을 키워온 무당의 딸 월선이다. 용이 부모는 둘의 혼인을 완강히 반대한다. 용이네는 참판 집 작인이기는 하나 엄연한 상민 신분이다. 이에 비해 월선의 애비라는 자는 알 수도 없는 떠돌이고 어미는 무당이다.


월선어미는 아예 딸을 다리병신 남자에게 멀리 시집을 보낸다. 그 후 용이는 부모가 정해준 여인과 혼인하는데, 그녀가 그의 두 번째 여인 강청댁이다. 어진 성격의 용이는 강청댁에 대한 사랑은 없지만 연민으로 어루만지고 우스갯소리도 던지며 떠난 월선을 잊고 살고자 했다.


그러나 월선이 시집간 지 한 십여 년 되었을까, 죽었는지 살았는지 소식조차 없던 그녀가 남편을 여의고 가랑잎같이 마을로 굴러 들어왔다. 이를 알게 된 최참판 집에서 얼마간의 돈을 해줘 월선은 읍내 삼거리에 주막을 차렸다.


그 뒤 용이는 장날이면 오가며 얼굴이나 바라보던 중, 어느 날 밤 그렇게 수줍고 도덕심 굳었던 용이는 월선과 살을 섞는다. 용이는 이제는 월선을 데리고 어디든 도망을 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조상 멧상 들 조강지처를 박대하지 말라는 부모의 유언을 저버릴 수 없었다. 이는 부모에 대한 효성도 효성이지만 한번 아울러 이뤄진 인연은 지켜 나가야 한다는 것이 자신의 생각 때문이었다. 용이는 저 때문에 또다시 흐르게 될 여인의 눈물이 싫고 두려웠다.


그러나 강청댁의 어쩔 수 없는 강짜는 날로 심해지고 결국 그녀의 패악으로 욕심 없고 염치 바른 월선은 상처를 입고 또다시 고향을 등지고 떠나야 했다. 용이는 월선이 다시 종적을 감춘 후 줄이 끊겨 허공에 뜬 연처럼 이태의 세월을 보냈다.


그때 용이는 절망적 욕정으로 세 번째 여인인 임이네를 범한다. 임이네의 남편은 용이의 상전인 최참판 집 아들 살인에 공모해 처형당한 자다. 임이네는 그러한 남편의 죄로, 마을서 개처럼 쫓겨났으나 굶주림에 시달리며 아이 셋을 앞세우고 마을로 다시 돌아왔다.


용이는 처음엔 굶주리고 있는 그녀가 가여워 아내 몰래 겉보리 한 말을, 어떤 때는 감자를 갖다 주기도 한다. 임이네의 처지가 너무도 안 되었기에…. 그러나 용이는 임이네를 범한 뒤 강청댁과 임이네 두 여자를 향한 욕정의 광풍으로 지옥의 밑바닥을 본다.


한편 간도로 가 국밥 장사를 하여 돈을 얼마간 손에 쥔 월선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고향에 와보니 용이의 초취인 강청댁은 호열자 통에 죽었지만 자식 없던 용이는 임이네로부터 아들을 얻은 뒤였다. 월선은 고난에 이지러진 사내 앞에 숙명처럼 다시 나타난 것이다.


이후 간도로 이주한 용이네 식구는 월선의 국밥집에 매달려 산다. 우직하고 보수적인 농민의 습성이 뼛속까지 스며있는 남도의 사내, 안으로 수줍어하고 섬세하지만 오기가 또한 대단했던 용이는 월선에게 빌붙어 살아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비뚤어지기 시작했다.


결국 용이는 임이네에게서 낳은 아들을 월선에게 맡긴 후, 간도서 다시 농사를 짓기 시작한다. 비록 삶은 가난하고 고통스럽지만 월선에게 얹혀살던 자신과 작별하고 자기 자리로 돌아가면서 용이는 자존감을 찾는다.


가엾은 월선은 고국으로 돌아가게 되었을 때, 그만 간도에서 숨을 거둔다. 용이에게 월선 은, “불에 단 쇠를 두 손으로 꽉 쥐는 것 같은 아픔, 가시덤불 속에 몸을 굴리고 싶었던 안타까움이었다.”


그렇지만 임이네 역시 용이에게는 한 가닥 아픔으로 남는다. 임이네의 업화(業火)와도 같은 질투와 아집, 월선의 재산을 넘보는 상사병과도 같은 물욕! 용이는 그녀를 한 마리의 뱀으로 치부하며 증오하고 저주하며 그녀와의 인연을 원망했다.


그럼에도 용이는 다른 이들이 살인자의 아내라는 과거사를 드러내 그녀를 천대하는 것만은 용납하지 않았다. 전 남편의 전과로 등에 붙은 혹처럼 험한 이력을 짊어져야 한 임이네를 전신으로, 온 심장으로 가려주고 싶은 증오와 연민이 격렬하게 갈등하는 숙명적인 감정도 있다.


박경리가 용이를 사랑했다면, 그건 그가 불쌍한 사람을 내치지 못하는 아름다운 정인(情人)이기 때문이리라. 용이는 첫사랑의 여인, 부모가 정해준 여인, 자신의 아들을 낳아준 여인 그 누구도 내치 지를 못했다. 그 때문에 빚어질 그들의 눈물이 싫고 그들의 눈물이 두려웠다.


“자기 자신을 슬퍼할 줄 모르고 불쌍하게 생기는 마음 없이 남을 위해 슬퍼하겠습니까. 아파본 사람만이 아픔을 알듯이 말입니다. 배고파 본 사람만이 배고픈 것을 알듯이 말입니다. 아무리 남에게 좋게 보여도 정이 없는 자는 거짓말쟁이입니다.”


이 말은 서희의 남편 길상이 용이에게 건넨 말이다. 연민은 단순히 시혜의 마음이나 행위가 아니다. 여기엔 대상뿐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측은지심도 들어 있다. 이는 비슷한 처지에 있는 존재들과 깊이 공명하고 간절히 느낄 수 있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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