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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의 ‘스탈린 케이크’, 그리고 사회주의 리얼리즘

by 양문규

모스크바 여행을 할 당시 시내의 숙소가 러시아 외무성 근처에 있었다. 외무성 앞길은 모스크바 중심지의 차로가 대부분 그러하듯이 8차선 정도가 되는 대로였다. 시원시원한 넓은 길도 인상적이었지만 그 길에 우뚝 서있던 웅장한 외무성 건물은 보는 사람을 절로 압도케 했다.


흥미로운 건 이후 모스크바 여기저기를 다니면서 이 외무성 건물과 비슷한 건물들을 볼 수 있었는데, 대표적으로 모스크바 국립대학 건물도 바로 그러한 건물 중 하나였다. 멀리서 보면 모스크바 대학이나 외무성 건물이나 똑같은 건물이 아닌가 하고 착각을 할 정도였다.


이는 비단 모스크바를 여행할 때만이 아니라, 동구권의 다른 국가들을 여행할 때도 경험했다. 폴란드 바르샤바의 문화과학 궁전 건물이 그랬고, 과거엔 소비에트 연방국가 중 하나로 발트삼국 중 한 나라인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에 갔을 때도 이러한 식의 건물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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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25_202628.png 모스크바 대학(상), 바르샤바 문화과학궁전(중), 라트비아 리가의 바자르 풍 시장 사이로 보이는 스탈린 케이크 건물


이 건물들은 사회주의 러시아 시기, 특히 그중에서도 1950년대 스탈린 시기에 건설된 공공건물의 전형적 양식이다. 생일 케이크 모양의 이 건축물은 네오고딕, 바로크, 스탈린식 키치가 결합된 갖가지 양식의 혼합물인데 이들이 한때는 모스크바의 지평선을 수놓았었다.


라트비아 사람들은 소련의 지배를 받고 있을 당시, 이 건물을 ‘스탈린의 생일 케이크’라고 비꼬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깨끗하고 위엄을 갖추고 있으며 화려하면서도 견고한 모습으로 지어진 이 건물은 소련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한편 모스크바서 여행객들을 놀라게 하는 또 하나의 건축물로 지하철역사가 있다. 지하철 승강장까지는 가파르게 내리 꽂힌 에스컬레이터로 깊이 내려가는데, 에스컬레이터 꼭대기서 보면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이다. 승강장은 넓고 곧으며, 그 길이가 150미터를 넘기도 한다.


거의 모든 승강장의 천장은 돔 형식으로 돼있고. 바닥은 대리석, 벽은 궁전의 회랑을 걷는 듯 조각, 부조. 벽화 등의 예술 장식품으로 가득 차 있다. 심지어 천장에 샹들리에까지 달려 있어 마치 차르의 무도회장에 온 분위기라 기차를 타는 게 황송하기까지 할 정도였다.


이 지하철역사 역시 스탈린 시대의 소련이 착수한 큰 예술적 기획의 하나였다. 아름답고 화려한 지하철 역사는, 개인의 사치를 허용하지 않는 공산주의 사회에서 집단적 대중이 공공으로 누릴 수 있는 사치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듯싶었다.


대중교통 지하철의 운행 간격은 매우 짧고(승강장에서 다음 기차를 1~2분 이상을 기다려본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빠른 속력과 함께 무서운 굉음이 났다. 이는 마치 노동 현장에서 속도와 효율을 강조했던 사회주의 리얼리즘 소설의 한 장면을 연상케도 했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넘어 새로운 사회(가령 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하고자 하는 창조적 정열을 고취한다. 그리고 새로운 사회에 대한 전망을 갖고 승리의 확신에 차서 전진하는 혁명적 낙관주의 또는 낭만주의를 그 특징으로 한다.


특히 사회주의 리얼리즘 소설에서는 어떤 갈등도 없고, 설사 갈등이 있어도 사소하게 그려지며, 역사적인 대사건의 핵심에서 움직이는 영웅적 주인공의 형상이 그려진다. 이른바 ‘스탈린 케이크’의 건물은 그러한 영웅적 주인공의 모습을 방불케도 한다.


사회주의 리얼리즘 예술이 고상하고 웅혼하다는 점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판에 박힌 즉 도식적인 특성이 반복되는 게 큰 흠이다. 처음에는 외무성 건물과 또 모스크바 국립대학의 건물에 놀라워하지만, 그것이 기계적으로 반복되면서 갖는 식상함 역시 부인할 수 없다.


나는 소비에트 러시아의 대표적 작곡가 쇼스타코비치의 <피아노, 트럼펫, 현을 위한 협주곡 Op.35>를 특별히 좋아한다. 역동적이고 리드미컬하고 화려한 트럼펫 연주, 비장하면서도 낙관에 찬 멜로디는 사회주의 리얼리즘 예술이 어떤 것인가 하는 점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쇼스타코비치는 재즈 풍의 악곡형식을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끌어들이기도 하고 여러 다양하고 실험적인 형식을 시도하고 있어, 스탈린 시대를 살아가면서 예술가로서 아슬아슬한 곡예도 하고 정치적으로 여러 시련을 겪기도 한다.


노벨상 수상작가 숄로호프의 <고요한 돈강>도 러시아 내부서는 위대한 사회주의 리얼리즘 소설로 떠받드나, 도식적인 사회주의 리얼리즘 소설과는 결이 다르다. 위대한 사회주의 리얼리즘 예술은 역설적으로 늘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배반하려는 아슬아슬한 긴장선상에 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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