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물가는 전 세계 2위다. 여행 당시 햄버거 메뉴 하나가 12,000원을 넘었으니, 한국의 두 배인 셈이다. 오슬로서 호텔 등의 숙소는 엄두도 못 내고 가격이 싼 에어비엔비 숙소를 구했다. 에어비엔비와 비슷한 가격대의 호스텔도 알아봤는데 그곳은 타월 값을 따로 받았다.
숙소가 있는 동네는 공항버스가 닿는 기차역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슬럼가는 아니지만 좀 어수선해 보였다. 그곳은 이민자 동네였다. 백인 동네와 달리 거리에 사람들이 웅기중기 나와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들은 파키스탄, 소말리아, 베트남 등지서 온 사람들이다.
오슬로는 뜻밖에도 도시 인구의 20%가 비(非) 노르웨이 출생자다. 특히 근자 노르웨이에 이주한 사람들의 절반은 비유럽국가 출신이다. 그들 중에는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사례가 많다. 오슬로는 꽤 다문화적인 도시로 내가 머문 동네도 그런 지역 중 하나인 셈이었다.
노르웨이에 이렇게 이민자들이 많은 것을 보니, 이 나라가 타 인종에 대한 관용성과 수용성이 높은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으로부터 입양아들도 많이 받아들인다고 한다. 참고로 대한민국은 타 인종에 대한 관용성이 가장 낮은 국가 중 하나로 분석된다.
노르웨이는 국가의 재정도 건전할 뿐 아니라, 난민 또는 이주민들 역시 노르웨이 사회에서 안정적으로 정착하고 있다. 아닌 게 아니라 나 같은 관광객도 우연찮게 이민자들이 사는 동네에서 숙소를 구했지만 이곳에 있었던 것이 여러모로 득이 되었다.
노르웨이는 세계 최대의 연어 생산국이자 수출국이다. 그렇다고 연어 가격이 결코 싼 건 아니었다. 식당에서 연어 요리는 언감생심 꿈도 못 꾸고, 도심의 관광지 인근 수산시장에서의 연어 값도 한국보다 비쌌다.
그런데 숙소가 있는 이민자 동네에는 주민들을 위한 식료품점이 있고 그곳서 판매되는 연어 가격은 쌌다. 한국보다 싼 유일한 식품이 연어가 아니었나 싶었다. 몇 번 이용하니 파키스탄 출신의 어물전 주인이 마늘과 허브 소우스로 양념된 연어도 추천해 줬다.
우리는 연어와 보리새우, 태국 라면을 샀다. 숙소에 비치된 그릴을 사용해 연어 스테이크를 요리하고, 브룩쿨리와 새우를 넣은 라면을 끓여 성찬(?)을 했다. 단 숙소는 엉성해서 싱크대 하수구가 고장이 나 막혀 있기도 했다. 취사와 설거지를 화장실에서 해야 했다.
잠시 들렀다 가는 우리 같은 관광객에겐 오슬로는 숙박비를 비롯해 물가가 터무니없이 비싼 도시다. 그러나 유입된 상당수의 이민자들은 그 사회에 잘 적응하여 산다. 이를 보면 일반 시민들을 위한 사회복지 체계 같은 것은 잘 작동되고 있지 않나 싶다.
다시 말해 노르웨이는 난민 수용에 대한 자신감과 긍정적인 여론이 형성돼 있는 사회 같이 보였다. 그러나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2011년 한 극우 극단주의자가 오슬로 등지에서 반(反) 이민, 반(反) 무슬림의 폭탄 테러를 벌여 수 백 명의 사상자를 낸 사건도 있었다.
우연의 일이겠으나 나 역시 오슬로 말고 노르웨이의 다른 지방도시를 여행하다가 자전거를 타고 가던 젊은 백인이 우리에게 보낸 성난 시선을 잊기 어렵다. 자신의 공동체 안에 낯선 사람이나 외부인이 들어와 살면 그들에 대해 생기는 경계심은 인간의 본능일 수 있다.
특히 이민자 비율이 높은 지역에선 저임금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일자리가 언제든 빼앗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익 선동가들은 이러한 대중의 경계심을 이용, 이민자들을 쫓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기만한다. 사회는 그보다 훨씬 복잡한 문제를 안고 있음에도…
히틀러는 그런 방식으로 유대인들을 배척하며 정권을 잡는다. 노르웨이는 2차 대전 중 독일에 점령을 당한다. 당시 나치에 저항한 세력도 있지만 많은 이들이 나치에 협력한다. 그중엔 노르웨이에서 가장 유명한 문학가로 1920년 노벨상을 수상한 크누트 함순이 있다.
그는 나치정권의 부역자 노릇도 하고, 히틀러를 소련 공산주의를 막을 수 있는 ‘최고의 개혁가’라 칭한다. 심지어 히틀러가 죽자 노르웨이의 유명 신문에 부고기사를 썼다. 부고기사가 실렸던 그 유명 신문은 현재도 노르웨이서 구독자가 제일 많은 일간지라고 한다.
노르웨이 극우의 전통도 만만치는 않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도 일제 말 친일부역 신문이었던 조선‧동아일보 양대 일간지는 여전히 살아남아 지금도 제반 문제에서 일본을 편들며 대중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