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체코 올로모우츠의 천문시계탑

by 양문규

프라하 여행 시 관광객이 반드시 두르는 곳 중의 하나가 구시가 광장에 있는 천문시계탑이다. 15세기에 만들어졌다는 이 천문시계는 매시정각이면 시계 상단부에 있는 해골인형이 종을 치는 것과 동시에 창문 2개가 열린다. 이를 보려고 관광객들은 그 주위로 바글바글 몰려든다.


그리고 창문으론 그리스도의 열 두 제자를 뜻하는 인형들이 차례로 얼굴을 내밀곤 사라진다. 마지막엔 닭이 등장해서 우는 것으로 퍼포먼스가 끝난다. 끝나고 나면 좀 싱겁긴 해도, 오래전 시계탑에서 옛날부터 그런 기계적 시계가 작동 돼왔다는 사실이 신기할 따름이다.


20220727_192814.png


20220727_211344.png 프라하 구시가 광장의 천문시계탑


유럽을 여행하다 보면 프라하 말고 다른 곳에서도 이런 종류의 천문시계를 만나보게 된다. 체코의 올로모우츠라는 도시를 가면 역시 이러한 천문시계탑이 있다. 프라하가 옛날 보헤미아 왕국의 중심도시라면, 올로모우츠는 모라비아 왕국의 중심도시다.


이 도시도 유네스코 지정 유산 도시이다. 체코의 관광책자에는 프라하의 붐비는 관광객을 피해 중세의 도시를 유유자적하게 관광하고 싶다면 이곳을 찾아보라고 소개돼 있다. 이곳의 천문 시계탑은 프라하의 것과 유사하면서도 또 다른 나름의 특색을 갖고 있다.


20140923_164608.jpg 올로모우츠 시내 골목에서


이 시계는 올로모우츠 시청사 벽에 결려있는데, 역시 15세기경에 제작됐다고 한다. 단 프라하 것에 비해 아주 말짱한 모습을 하고 있다. 19세기말에 한번 리모델링됐을 뿐 아니라, 그 후에도 2차 대전 중 파괴됐다가 전쟁이 끝난 후 복구됐기 때문이다.


당연히 역사적 가치는 떨어지나, 이 시계는 공산 체코시절에 복구되면서 흥미로운 변형을 거친다. 가령 프라하 시계가 종교와 관련된 인형들이 퍼포먼스를 벌이는데 비해, 올로모우츠 것은 광부, 공장 노동자 등 소위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대표하는 인형들이 이를 대신한다.

시계의 천체장치엔 스탈린의 생일이 표기돼 있다. 한때 거기서 인터내셔널가가 연주되기도 했다고 한다. 지금은 이를 체코 민요로 바꾸긴 했다. 어쨌든 유럽의 도시들은 15세기 무렵부터 이러한 기계식 시계들을 경쟁적으로 제작해서 도시 광장의 시청 건물 등에 설치했다.


419.jpg
427.jpg 올로모우츠 시청의 천문시계탑


15세기는 유럽의 신대륙으로의 대항해가 싹트는 시기다. 이러한 기계식 시계의 발전은 향후 유럽의 산업혁명과 과학혁명을 이끄는데 중요한 구실을 한다. 그리고 결국 서양이 동양을 압도하는 근대를 만드는 동력이 된다.


물론 이런 유럽의 기계식 시계는 중국으로 건너가기도 했다. 그러나 그 시계는 중국의 왕실에서 정교한 장난감으로 관심을 끌었을 뿐 중국판 산업혁명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이에 반해 서구의 시계는 근대자본주의의 발전을 추동한다.


다 알다시피 근대적 시간관념을 형성하는데 철도는 시계와 함께 지대한 역할을 한다. 열차가 출발하고 통과하고 도착하는 시간이 각 지역마다 할당되면서 먼저 시간이 잘게 분할되고 이를 통해 공간의 시간적 분할이 가능해진다.

에밀 졸라는 철도원의 세계를 시계라는 존재에 얽매여 돌아가는 것으로 본다. 일본영화 <철도원>서 시간엄수는 철도종사원들의 종교와도 같다. 산업혁명으로 최초의 철도가 개통된 게 리버풀-맨체스터 구간이다. 우연은 아니겠고 리버풀은 당시 시계제조업의 중심지다.


개화기 학교의 풍경을 보여주는 교실의 벽에는 벽걸이 시계가 걸려있고, 개화기 신사의 상징은 회중시계였다. 이광수 <무정>(1917년)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소설이다. 이 소설에 나타난 자유연애, 신교육, 문명개화사상은 이 작품의 근대적 성격을 설명하는 중요한 예들이다.


이에 앞서 <무정>의 서두에는 이전의 소설에선 찾아보기 어려운 장면이 나온다. 주인공인 경성학교 영어교사 ‘이형식’은 “오후 2시”에 영어 수업을 마치고, “오후 3시”에 약속된 김 장로 딸의 개인 가정교사 수업을 위해 학교 밖을 나와 바삐 서둘러 간다.


<무정>의 주인공은 오후 2시니, 3시니 하며 세분화된 시간 속에서 움직인다. 그래서 <무정>은 바로 앞에 등장했던 신소설과는 달리 진짜 근대소설 같은 느낌을 준다. 이후 현대사회가 진행되면서 근대적 시간은 점차로 인간의 행위를 강요하고 지배하는 것으로 변모해 간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주와 시장의 힘은 엄격한 시간 관리와 노동시간의 연장 등을 강제한다. 가령 윤석열 정부는 주 52시간 근무제에 대해 비판적 견해를 가진다. 필요한 경우 주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한 뒤 쉴 수 있는 예외 조항을 둬야 한다는 주장에도 이른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프랑크푸르트 괴테 생가 박물관서, 괴테와 베토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