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단상, 헝가리 풍의 또는 헝가리 주제의 …

by 양문규

헝가리를 여행했다고 해봐야 남들보다 부다페스트를 한 번 더 갔다 와본 정도이다. 그럼에도 헝가리와 관련돼 알고 있던 사전 정보나 지식에 힘입어, 이 나라를 여행할 당시 헝가리가 유럽의 여느 나라들과 비교할 때, 여러 가지로 다른 분위기를 가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여행할 때면 그 나라 인사말 등 몇 개를 외우고 다닌다. 그래서 그곳 사람들을 만날 때면 이를 써먹기도 한다. 그러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법 재미있어한다. 그러나 헝가리 말은 유럽의 어느 나라 말과도 비슷한 구석이 없어 외워서 써먹기가 어려웠다.


헝가리 말은 대부분의 유럽의 언어들이 속한 인도유럽어족이 아니라, 우랄 알타이어족에 속해 있다고 한다. 입에 잘 붙지도 않는 단어에다 발음도 서툴러 현지 사람들에게 헝가리어를 사용하면 대부분의 헝가리 사람들은 유럽의 다른 나라 사람들과 달리 무뚝뚝하게 반응했다.


사람들 생김새도 유럽 쪽 사람들과는 좀 다르다. 유럽인종들은 이젠 섞일 대로 섞여 서로를 구분하기가 힘들다. 단 헝가리인들 중엔 검은색 머리에, 눈이 좀 가늘고 까만 눈동자를 가진 여자들이 있다. 남자들도 간혹은 어깨가 떠억 벌어져 오스만터키 쪽 사람들이 연상된다.


여행객들이 많이 알고 있는 음식이기도 한데, 고추 같은 얼큰한 파프리카 가루를 풀어 걸쭉하고 시뻘건 국물에 감자나 당근, 쇠고기를 넣고 끓인 전통 스튜 클라쉬(구야시)는 우리 육개장 맛과 흡사하다. 유목민 전통을 가진 헝가리 사람들의 음식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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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kaoTalk_20150303_055255397.jpg 부다페스트 바치 거리의 식당(위), 클라쉬(구야시)


식당 입구 처마에는 마늘과 고추를 한 줄로 엮어 주렁주렁 걸어 놓아 신기했다. 물론 고추가 아니고 우리의 태양초처럼 햇볕에 바삭하게 말린 파프리카였다. TV에서 방영되는 여행 프로그램을 보면 헝가리 시골 초원에는 유목민족으로서의 마자르족 풍속들이 많이 남아 있다.


요컨대 동양인인 나조차도 헝가리는 유럽의 다른 나라들과 좀 색다르게 느껴진다. 20세기 이전 유럽 사람들에게도 헝가리는 역시 이국적인 곳이었나 보다. 서양 고전음악 작품에는 ‘헝가리 풍의∼’ 또는 ‘헝가리 주제의∼’라는 이름 등이 붙은 곡들이 꽤 된다.


함부르크 출신의 독일 작곡가 브람스의 유명한 <헝가리 무곡>이 있지 않은가!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에는 센티멘털한 곡들이 많다. 그중 <헝가리언 멜로디>라는 곡명이 붙은 피아노곡은 그러한 감상성에 헝가리 풍의 곡조가 덧붙여져 방랑자의 애수를 느끼게도 한다.


헝가리 출신의 작곡가 리스트나 바로토크 등도 자신들 나라의 민속음악을 예술적으로 가공해 놓았다. 브람스, 슈베르트, 베를리오즈, 베버 등의 외국 작곡가들은 헝가리 민속음악의 리듬이나 곡조를 유럽 고전음악의 언어 속에 스며들게 해 더 예술적 흥취를 느끼게 했다.


문화는 상호 혼성이나 혼융을 통해, 서로 간의 변형 또는 자기 변형이 이뤄질 때 좀 더 다양하며 풍요롭고 아름다운 예술이 탄생하는 것 같다. 비교에 적합한 건지 모르나,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들 중에서, 터키 풍이 들어간 ‘터키 행진곡’이 대중들에게 널리 사랑받지 않는가.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은 정확히 얘기하자면 헝가리 그중에서도 헝가리 집시의 선율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유럽의 고전음악이라는 세련된 상층문화가 유럽 변방의 민속 음악과 같은 기층문화와 결합할 때 그 예술적 감흥이 더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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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28_123745.png 부다페스트의 중앙시장(상), 민속의상(중), 도자기(하)


우리나라 식민지 시대 시인들 중, 최근 학자나 문인들에 의해 가장 많이 연구되는 시인이 백석이다. 백석은, 서구 모더니즘을 우리나라에 최초로 수용했던 정지용의 적자라 불리기도 한다. 단 백석은 이 모더니즘을 우리 전통과 민속의 세계와 결합해 상호 변형을 이뤄낸다.


정지용이나 백석이 서구의 모더니즘을 그대로 따랐으면 그다지 시적 호소력이 없었으리라. 그런데 이 둘은 서구 모더니즘이 강조하는 이미지를 한국적인 경험의 표현으로 녹여냈다는 점에서 당시 일반의 모더니즘 시인과는 다른 성취를 보여준다.


별 많은 밤

하누바람(서풍)이 불어서

푸른 감이 떨어진다 개가 즞(짖)는다 (백석, 「靑柿(청시)」)


지금 바순으로 연주되는 베버의 ‘안단테와 헝가리 풍의 론도’를 듣고 있다. 부다페스트에서 슬로바키아로 향하는 열차를 탔을 때 곯아떨어져 자느라고 헝가리의 시골 풍경을 놓쳤었다. 베버의 선율을 음미하면서 못다 한 헝가리 여행을 다시 상상해 본다.


KakaoTalk_20150303_051802362.jpg 부다페스트의 중앙역(캘러티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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